차학연, 자신을 믿는다는 것

박희아 ize 기자 | 2019.01.16 09:15
“골치 아픈 일이 생기면 절대 나서지 말고 무조건 튀어라. 경찰은 부모 없는 고아에, 배우지 못하고 번듯한 직업도 없는 날 제일 먼저 의심할 테니까.” MBC ‘붉은 달 푸른 해’ 속의 이은호(차학연)는 자신을 살인범이라고 의심하는 형사 강지헌(이이경)에게 조사를 받으면서 점차 격앙되는 감정을 드러낸다. 언제나 미소를 띠며 다정하게 사람들을 대하던 착한 청년은 자신이 사실 아이들을 학대하는 부모들에게 총을 겨눈 살인범이었다고 자백한다. 그리고는 끝까지 주장한다. “난 살인자가 아니라, 아이들을 구해낸 거”라고.

‘붉은 달 푸른 해’에서 고아였던 이은호는 보육원 원장의 폭력 아래에서 살아남아 스스로 살인자가 되기를 자처한다. 그는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을 처단하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tvN ‘아는 와이프’에서 차학연은 발랄하지만 철없는 신입 은행원 김환을 연기했다. 도둑에게 “돈은 저기 금고에 있다”고 알려주거나, 일을 제대로 처리했는지 확인하는 상사에게 대충 대답한 뒤에 ‘고객님’을 ‘고객놈’으로 잘못 쓰는 사고를 저지를 정도로 김환은 가볍고, 제멋대로 구는 사람이었다. 고스펙자 김환이 자기가 가장 잘났다고 믿는 개인주의자라면, 이은호는 정반대로 가진 것도, 배운 것도 하나도 없기 때문에 오로지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증오만이 옳다고 믿는 사람이다. 마냥 착하기만 해 보였던 청년이 살인자로 밝혀지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수많은 드라마에서 다뤘던 반전의 공식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른들의 폭력 앞에 저항하지 못하면서도, 간간이 드러내는 서늘한 눈빛과 아이들이 사라진 후에 지독하게 쓸쓸해 보이는 그의 마른 몸을 통해 차학연은 이은호라는 인물이 스스로의 믿음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득한다. “이렇게 예쁜 곳에 아이를 버려두고, 엄마는 어디를 갔을까요?”라며 울먹이는 그의 연약한 모습은 상처받은 소년의 과거를 어느새 이야기의 중심에 놓는다. 결국 ‘아는 와이프’의 김환이 좋아하는 여성이 생기고, 주변인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개인주의를 깨고 나온 사람이라면, 이은호는 그가 지닌 믿음을 그대로 안고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적인 인물인 셈이다. 전혀 일관성이 없어보이는 드라마 두 편에서 차학연은 비슷한 성향을 공유하는 두 명의 사람이 각자 다른 선택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두 개의 결말은 그가 배우로서 다채로운 캐릭터에 도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드러낸다.

어쩌면 김환이나 이은호처럼 강력한 믿음을 지닌 역할을 연기할 수 있는 힘은 그가 8년 동안 빅스의 리더 엔(N)으로서 보여준 모습에서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너네는 하고 싶은 선택을 해. 난 어떻게든 멤버들을 모을게.” 네이버 V라이브 방송에서 그는 “과거로 돌아가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그에게는 지나온 시간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있다. 그리고 최근에 그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 이 채널에는 그가 아이돌로서 보여주지 않았던 평범한 청년 차학연의 모습이 담겨있다. 어디서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다니면서 도전하는 그에게는 드라마 속 이은호의 죽음에 슬퍼할 겨를도 없다. 가수 엔에게, 배우 혹은 신생 유튜버 차학연에게는 또 새로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스스로에 대한 단단한 믿음에서 비롯된 기분 좋은 미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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