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일하고 대우받는 시대 지났다"

머니투데이 김주현 기자 | 2019.01.17 04:00

[영리더 20인 인터뷰]수공예 오픈마켓 '아이디어스' 대표 김동환씨

편집자주 | 2019년.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해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대한민국은 100년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됐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한 덕분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역사적 변곡점마다 젊은 리더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이 나라의 운명을 바꿨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새로운 100년을 시작한다. 그 어느 때보다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올해 창사 20주년을 맞는 머니투데이가 우리 사회 각 분야 ‘영 리더’(Young Leader) 20인을 선정, 이들이 얘기하는 미래 대한민국 얘기를 들어봤다.

김동환 백패커 대표


“역설적이지만 나이가 젊다고 ‘영 리더’인가요? 오래 일했다고 대우받던 시대도 지났죠. 끊임없이 배우고 경청하는 ‘깨어있는’ 리더가 진짜 ‘영리더’ 아닐까요.”

수공예 오픈 마켓 아이디어스를 운영하는 백패커 대표 김동환씨(38)가 말하는 영 리더의 조건이다. 김 대표가 운영하는 아이디어스는 출시 약 4년 만에 누적 거래액이 1000억원에 달하는 거대 오픈마켓으로 성장했다. 수공예 전문 온라인 마켓이다. 지난해엔 월 매출 1억원을 올린 수제구두 작가도 배출했다.

김 대표가 창업전선에 나선 건 만 31세 때다. 20대 때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기획과 마케팅 업무 경험을 쌓았다. 이어 직전 직장인 스타트업 인사이트미디어로 자리를 옮겨 모바일 앱을 기획했다.2012년 자본금 100만원으로 백패커를 창업했다. 창업 초기엔 수면앱, 이모티콘앱, 영어단어앱 등 40개에 달하는 각종 유료앱을 개발했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만든 ‘아이디어스’가 대박을 쳤다. 그는 당시 도예과를 전공한 사촌동생과 자취생활 을 했다. 사촌동생이 직접 만든 도자기를 판매하는 데 어려움을 지켜보며 수공예 오픈 마켓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 “불법 가판을 전전하며 ‘세상에 하나뿐인 수공예품’을 파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더라”며 “판매 창구만 생긴다면 수요도 공급도 확실한 사업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수공예품을 만들지만 정작 판매창구가 없어 불법 가판을 전전했던 젊은 작가들에게 ‘아이디어스’는 사막의 오아시스나 다름없었다. 지금은 입점 작가수만 6000명이 넘는 서비스로 거듭났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어느새 회사 직원 수도 50명을 넘어섰다.

김 대표는 서번트 리더(servant leader)를 꿈꾼다. 롤 모델로는 김봉진 배달의민족 대표를 꼽는다. 구성원의 행복까지도 세심하게 신경 쓰는 리더가 되고 싶다고 했다. 회의 때는 ‘리더가 누군지 몰라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아직까지도 종종 회사 탕비실에 간식을 스스로 채워둔다. 김 대표에게 이 시대 젊은 리더의 조건에 대해 들어봤다.

-‘아이디어스’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
▶자본금 100만원으로 시작한 사업이다. 월세 30만원짜리 고시원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창업하고 첫 1년이 정말 두려웠다. 당시엔 먹고 사는 문제가 급급해서 수면앱, 영어단어앱, 벨소리 제조앱, 이모티콘앱 등 2년 동안 자금 마련을 위해 유료앱을 40개 정도 개발했다. 그러다 같이 살던 사촌 동생에게 아이디어를 얻어 ‘아이디어스’를 시작하게 됐다. 그 친구가 도예과 출신이었다. 홍대 앞에 작업실도 차렸지만 도자기를 만들어도 판매하는 창구가 없어 힘들어했다. 홍대입구역이나 합정역 근처에 불법 가판을 만들어 팔기도 했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었다. 그 친구를 보면서 ‘사려는 수요도 있고, 판매하려는 젊은 창작자도 많은데 창구가 없구나. 플랫폼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창업 후 어려움도 있었을 텐데, 나만의 극복 노하우를 소개한다면.
▶사업을 하면서 관련 경험이 없어 무시 당한 경험이 많다. 나이가 젊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편견과 선입견 없이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절대적인 경험치는 부족하다. 나이가 젊은 데다 관련 경험이 없으니 VC(벤처캐피탈)들과의 미팅에서 투자 요청을 거절당하기도 했다. 이커머스는 전문분야니까, 이전에 하던 기획과는 전혀 달랐다. 그렇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압축적인 성장을 하려고 노력했다. 업무적으로는 절대적인 시간을 투자했고, 간접적으로라도 많은 경험을 쌓기 위해 책도 많이 읽었다. ‘연륜’이란 것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앞서간 리더들에게 조언과 도움도 많이 구했고 열린 자세로 받아들였다.

-리더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개인적으로 카리스마 있는 리더는 아니다. 일만 잘한다고 리더가 되는 것도 아니고 열정과 실력을 두루 갖춰야 한다. 주변에서 ‘리더’라고 인정 받아야 하고 그에 맞는 훌륭한 성품도 있어야 한다. 막상 하나를 갖추기도 쉽지 않다. 계속해서 내가 과연 이런 자질을 갖췄는 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스스로를 냉정하게 돌아보며 부족한 부분들 채워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대를 넘어 리더가 갖는 조건, 그리고 영리더만의 전략이 있다면.
▶동료로서 같이 뛰어주고 함께 고민할 수 있다는 것. 리더로서가 아니라 동료로서 리더가 되어줄 수 있는 점이 영리더의 틈새 전략이자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리더는 말로 이끄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뒤에서 지시할 것이 아니라 앞에서 이끌어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나이가 영리더의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의식이 깨어있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영리더’라고 불릴 수 있다. ‘젊은 꼰대’라는 말도 있지 않나. 나이와 상관없이 계속 배우려고 하는 자세와 경청하는 모습이 리더의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 리더 중 롤 모델을 꼽는다면.
▶김봉진 배달의 민족 대표다. 서번트리더십을 발휘하면서 기업문화뿐 아니라 구성원들의 행복까지도 세심하게 신경 쓰는 리더다. 더 나아가 사회적 영향까지고 고민하고 끊임없이 배우려는 자세도 있다. 밑에서부터 인정받는 리더십을 추구하며 전형적인 서번트리더십을 갖추고 있다.

-평소에 생각하는 영리더 대표주자를 누가 있을까.
▶윤자영 스타일쉐어 대표를 꼽는다. 실제로 포브스아시아가 뽑은 30세 이하 영향력 있는 젊은 리더 3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윤 대표는 나이가 어리고, 또 여성이다. 한국 사회의 두가지 큰 편견 속에서도 성공했다. 사업을 일찍 시작해 경험도 풍부하고 훨씬 더 큰 회사도 인수하는 등 쉽지 않은 사업을 해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 리더로서 많은 편견과 싸워왔을 텐데 대규모 투자도 이끌어내고, 매년 규모있는 오프라인 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도 여성 창업자들은 투자받기가 힘들다고 들었다. 그런 점에서 본인과 회사를 함께 성장시키는 모습이 영리더로서도, 경영자로서도 존경할 만하다.

-한국사회에서 영리더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지금까지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리더들이 많았다고 본다면 앞으로는 좋은 철학을 가지고 건강한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영리더들이 사람들을 감화시키고 영감을 줘야 한다. 세대교체라는 것이 쉽지는 않다. 스타트업에서 먼저 보여줘야한다. 전통적으로는 오래 일한 사람을 대우하는 문화가 있었지만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워낙 빠르다. 이전의 방식이 통하지 않을 때가 온다. 작은 회사, 젊은 리더들이 나이·선입견 없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기가 오고 있다.

-학창시절은 특별했나.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워낙 개방적인 분들이었다. 고등학교 땐 주말마다 춤을 추러 다녔는데 ‘공부는 언제 할거냐’고 한마디 하신 적이 없다. 도리어 춤 잘 춘다고 칭찬해주셨다. 대학교에 가서도 댄스 동아리랍시고 귀도 뚫고 머리도 장발로 다녔는데, 항상 모든 행동을 지지해주셨고 응원해주시던 부모님이었다. 언제 한 번 여쭤본 적이 있다. 힙합바지 입고 친구들과 몰려다니는 아들이 불안하지 않았느냐고. 부모님은 아들을 믿었기 때문에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셨는데, 일을 그만 두고 나서는 어머니와 치킨집, 커피전문점 등 자영업을 해오셨다. 지금까지도 추석·설날 당일 오전만 쉬고 출근하신다. 부모님으로부터 자연스럽게 근면 성실함을 배웠다.

-30년 후의 모습은 어떨까.
▶3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봐도 생각지도 못한 큰 변화가 있었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점점 더 빨리지는데 30년 후를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그때도 여전히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면 부디 그 흐름과 변화에 잘 적응해 있길 바랄 뿐이다. 나이는 70대일지라도 의식은 깨어있는 영리더이고 싶다. 또 지금 준비하고 있는 국내 작가들의 해외 진출이 성공적으로 안착돼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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