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고용노동부가 마련한 가이드라인은 강제성이 없고 마스크 지급 의무를 규정한 현행법은 '경보' 상황에만 적용된다. 그렇다고 노동자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일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 근무시간 단축 등 실효성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야쿠르트 배달원 A씨는 "영업장에서 마스크를 주면서 필요할 때 쓰라고 했다"며 "미세먼지 수치를 알려주거나 따로 착용하라고 지시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고객과 대화할 때마다 마스크를 쓰고 벗기 불편할 뿐만 아니라 답답하고 화장도 지워지기 때문에 마스크를 계속 쓰기가 어렵다"고 A씨는 말했다.
먼지가 많이 발생하는 건설 현장에서도 마스크는 외면받았다.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야외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5명 중 1명꼴로 마스크를 착용했다.
현장 담당자 홍찬기 KCC건설 과장은 "현재 골조 공사와 토목공사 등 먼지가 많이 나는 작업은 끝냈기 때문에 조업 단축이나 휴식시간 추가 제공 등 계획은 없다"며 "아침에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교육했는데 답답하다는 이유로 안 쓰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서울 종로구청 소속 청소노동자 B씨는 "목과 호흡기가 답답하지만 안경을 낀 상태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면 습기가 껴서 불편하다"고 하소연했다. B씨는 추위를 막기 위해 양쪽 귀만 가렸을 뿐 코와 입은 모두 내놓은 채 청소를 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달 초 미세먼지 수치가 높은 날 근무시간 조정, 휴식시간 추가 제공 등 근로지침을 만들어 사업장에 배포했다. 하지만 지침에 불과해 현장 적용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은 미세먼지가 심한 상황에서 노동자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단계별로 취해야 하는 조치를 정리한 것"이라며 "따로 처벌 규정이 없고 자율적으로 이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마스크 지급도 미세먼지 '경보' 상황에만 적용된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미세먼지 '경보'시 옥외(야외) 근로자에게 의무적으로 마스크 등 보호구를 지급해야 한다.
한국환경공단 기준 14일 서울의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오전 10시 119㎍/㎥, 오후 3시 148㎍/㎥였다. 초미세먼지 경보 기준은 150㎍/㎥ 이상 2시간 지속으로 14일 수치보다 기준이 높다. 실제로 미세먼지 경보가 발령되는 날은 매우 드물어 시민 체감과는 차이가 크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전국에서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경보가 발령된 날은 각각 11일과 1일에 그쳤다. 결국 체감과 다르게 노동자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평소처럼 일하더라도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는 셈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주의보나 경보는 극한 상황을 가정해서 내리는 것"이라며 "주의보와 경보기준을 낮추기보다는, 마스크 지급기준을 완화하거나 미세먼지 수치에 따라 지급하는 등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창훈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 야외에 오래 있으면 폐 질환이나 호흡기 질환이 악화될 수 있다"며 "노동부 가이드라인이 제대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작업량 축소나 근무시간 단축에 대한 보상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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