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내 '각막·피부' 사람에 이식…무병장수 꿈 이루게 '돼지'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 2019.01.14 03:40

이종 '장기 이식' 연구 어디까지 왔나

편집자주 | “보급형과 고급형이 있는 데 어떤 것으로 해드릴까요.”(A씨) “글로벌 바이오닉스사 제품이 좋다고 들었어요.”(B씨), “보는 안목이 좀 있으시군요, 명품코너로 가서 설명드리죠.”(A씨) 두 사람이 나눈 대화 내용을 보면 일반 백화점 등에서 이뤄지는 상품거래처럼 보인다. 하지만 A씨는 의료 코디네이터, B씨는 의료관광을 온 외국인 환자다. 90세 B씨는 노인성 백내장에 합병증이 겹치면서 우측 시신경이 손상되자 새로운 각막으로 교체하기 위해 ‘바이오 인공장기 전문병원’을 찾았다. 지금은 SF(공상과학)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다. 하지만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시나리오다.


기해년(己亥年) 황금돼지해는 돼지와 인간의 특별한 교류(?)를 기대할 수 있을 전망이다. 최근까지 말기 질환 환자에게 사람의 장기 대신 돼지의 장기를 이식하는 이른바 ‘이종장기’ 관련 연구에서 획기적인 성과가 연이어 나온 데다 올해는 돼지각막·췌도(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세포)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임상시험이 국내에서 시도될 가능성이 높다. 육류의 대표적 공급원 정도였던 돼지가 100세 무병장수 시대의 꿈을 이루게 할 생명과학기술계의 게임체인저로 떠올랐다.

인체이식을 위한 장기는 동종장기, 이종장기, 인공장기로 나뉜다. 이중 이종장기는 특수하게 개발한 동물의 조직·장기를 사람 또는 다른 종의 조직·장기로 쓰는 것이다. 면역거부반응이 심해 아직 임상시험 단계에 머무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앞으로 3년 안에 실제로 환자에게 면역거부반응이 낮은 각막, 피부, 인대 등의 조직과 췌도 등의 내분비기관 일부를 이식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실제로 가천대길병원은 올해 처음으로 저혈당 수반 1형 당뇨환자를 대상으로 돼지 췌도를 이식하는 임상시험을 앞뒀다.

◇원숭이 아닌 돼지, 왜?=초기에 과학자들은 유전적으로 인간과 가까운 원숭이를 포함한 영장류의 장기를 이식에 활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한번에 태어나는 개체 수가 적고 성장속도도 느린 데다 장기 크기도 인간에게 이식하기엔 너무 작아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반면 일반돼지의 3분의1 크기로 개량한 미니돼지의 장기 크기는 인간의 장기와 비슷하다. 사람의 94% 정도다.

임신기간이 평균 114일로 짧고 한번에 5~12마리의 새끼를 낳아 장기 획득 측면에서 유리하다. 인간과 오랜 시간 같이 지낸 동물이어서 사람에게 치명적인 감염원을 보유할 가능성도 낮다.

이종장기 기술 중 돼지를 이용한 세포·조직이식은 전세계적으로 임상시험 단계며 장기의 경우 영장류에 이식하는 연구가 활발히 이뤄진다. 지난해 5월 국립축산과학원은 돼지의 각막을 원숭이에게 이식, 1년 이상 정상적인 눈 기능을 유지한다는 결과보고서를 내놓았다. 이에 따라 사람에게 다른 동물의 각막을 이식하는 임상이 시행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이밖에 면역거부반응을 최대한 낮춘 돼지의 신장을 이식한 원숭이는 32일 이상, 심장을 이식받은 원숭이는 50일 넘게 생존했다. 국립축산과학원 관계자는 “앞으로 돼지의 각막을 사람에게 이식하는 일이 지금의 라식수술처럼 일상적인 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면역거부반응·간염 위험’ 풀어야 할 숙제=이종장기의 최종 목표는 돼지의 심장·신장과 같은 고형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첨단 면역억제기술이 모두 동원된 형질전환 돼지의 탄생에도 불구하고 간·폐의 이종이식은 발전이 더디다. 항체 중심의 거부반응과 혈액 응고가 심한 장기의 특성을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다른 숙제는 이종간 감염병 우려를 극복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돼지의 장기를 인체에 이식하면 돼지들이 지닌 레트로바이러스를 옮길지도 모른다. 이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면 침팬지로부터 퍼진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처럼 인류를 위협하는 심각한 감염병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전자(DNA) 편집기술인 크리스퍼유전자가위에 희망을 걸고 있다.

◇중국 ‘돼지 각막’ 판매 허가…일본 ‘이종이식’ 허용=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지온마켓리서치에 따르면 2022년 이종장기 이식시장 규모는 약 452억달러(약 50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각국의 주도권 선점 경쟁이 치열하다. 지금껏 동물세포·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 일본은 최근 관련 법 개정을 통해 ‘허용’으로 돌아섰다. 중국은 2015년 돼지 각막 판매를 허가했다. 미국 식품의약국도 별다른 치료법이 없는 환자의 경우 이종장기이식을 예외적으로 허용했다.

한국은 신약, 정밀의료 등 바이오·헬스 R&D(연구·개발)을 혁신성장 1순위 전략분야로 꼽은 데다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실질적 규제개선”을 강조하면서 이종장기 관련 법·제도 기반이 곧 마련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진 상태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 측은 “정부가 돼지 각막·췌도를 세포치료제로 간주키로 방침을 세우면서 조만간 임상시험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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