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요? 그냥 '서른'이에요"
1990년에 태어난 청년들은 이제 막 '아홉수'를 넘겼다. 아홉수는 9, 19, 29와 같이 '아홉'(9)이 든 수를 말한다. 예부터 동양에서는 아홉수를 불길하다고 여겨 이 나이에는 결혼이나 이사와 같은 대소사를 꺼렸다.
아홉수를 '미신'이라 여기기도 한다. 근거 없는 관습 중 하나라는 주장이다. 한 역술가는 "나이 뒷자리에 9가 붙는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는 건 논리에 맞지 않는다. 인간의 길흉화복은 숫자 하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9살을 막 지난 이들은 지난해가 '혹독했다'고 입을 모은다. 직장인 김승재씨(30)는 "90년 말띠들은 작년 아홉수에 삼재까지 겹쳤다"며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이직 준비하면서는 합격 통보받은 다음날 입사 취소도 당해봤다. 이래저래 힘든 한 해를 보냈다"고 말했다.
아홉수를 졸업해도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해를 거듭할수록 신입사원의 나이가 많아지고, 초혼 연령이 늦춰지고 있지만 서른에 대한 사회의 기대치는 달라지지 않아서다. 막막한 '취업'부터 남 이야기 같은 '결혼'까지, 서른살의 고민이 상당한 상황이다.
서른이 되자 미래에 대한 압박감도 커졌다. 직장인 최민국씨(30)는 "2년 전 입사해 안정적인 수입이 생겼지만 이렇게 벌어서 언제 집을 살 수 있을까 걱정된다"고 전했다. 직장인 정보라씨(30)는 "어쩌다 보니 벌써 서른"이라면서 "경제·사회적인 부분들에 있어서 전보다 어른스러워져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며 한숨을 쉬었다.
후회와 아쉬움을 드러내는 이들도 많다. 직장인 이주현씨(30·가명)는 "왜 더 부지런히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적당히 하자는 생각에 정말 적당히만 했더니 발전이 없었다. 적당히 보낸 내 20대가 후회된다"고 털어놨다.
◇손꼽아 기다린 '서른'…"새로운 출발이자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기"
직장인 이정은씨(30·가명)는 "서른이 됐지만 아무 느낌이 없다"며 "남들이 '서른부터는 하루하루 얼굴이 달라진다'고 해서 관리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은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서른을 기다린 이들도 적지 않다. 대학원생 김나영씨(30)는 "서른만 기다렸다"며 "스무살 때 '10년 후엔 하고 싶은 거 선택해서 잘살고 있길'하는 바랐다. 목표한 걸 이룬 30살이 참 좋다"고 전했다. 직장인 백경현씨(30)는 "주변에서 모두 '곧 서른이네'라고 해서 스트레스 받았다. 그래서 차라리 빨리 서른이 됐으면 했다"며 "서른을 맞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느낌으로 살 생각이다"며 포부를 밝혔다.
아홉수를 이겨낸 기쁨을 만끽하기도 한다. 직장인 임정연씨(30·가명)는 20대를 끝낸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임씨는 "2018년 1월 1일부터 크게 아팠다. 직장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새벽에 심장이 아파 잠에서 깬 후 4년 넘게 다니던 첫 회사를 때려치웠다"며 "퇴직금으로 여행도 가고 운동도 하며 활력을 찾았다. 그러다 지난 가을에 새로운 회사에 입사했다. 연봉도 2000만원 넘게 올랐다. 이제부터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생각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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