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中 개혁개방 40년이 대한민국에 묻는다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진상현 특파원 | 2018.12.31 04:11
베이징에서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취재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정치적으로 통제된 사회로 민감 이슈에 대해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드물다. 사회적 영향력이 큰 정부 부처나 대기업은 더 몸을 사린다.

그런 면에서 중국 정부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진행하는 내외신 기자 초청 프로그램은 이런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평소 취재가 힘든 대기업이나 정부 관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점도 있다. 자신들이 알리고 싶은 내용 위주로 취재 일정이 짜여지는 탓이다. 그래서 정작 궁금한 내용은 취재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가끔씩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지난달 중순 광둥성 포산시 등이 진행한 내외신 기자 초청 프로그램에 참가했을 때다. 주제는 '중국 개혁개방 40주년의 성과'였다. 취재 일정 중 하나였던 중견기업 즈가오에어컨의 리싱하오 창업주 겸 회장의 기자간담회. 창업 후 가장 큰 어려움이 뭐였냐는 질문에 그는 "사생아(私生兒)였던 게 가장 힘들었다. 그것 말고는 어렵다고 할 건 없었다"고 말했다. '사생아'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국영기업에 비해 각종 관행과 제도에서 후순위일 수밖에 없었던 민영기업의 처지를 표현한 말로 들렸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면서 수출 민영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국진민퇴(국유기업 전진, 민영기업 후퇴)론이 다시 불거져 시진핑 국가 주석 등 지도부가 직접 나서 민영기업 다독이기에 나선 시점이었다. '사생아'라는 표현 자체가 민감할 수 있었다. 현장 통역도 어떻게 번역할지 몰라 잠시 당황하기도 했다. 리 회장이 민영기업의 어려움만 토로한 것은 아니다. 그는 "얼마전 시진핑 국가주석이 '민영기업과 민영기업인은 우리편이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공산당의 리더십과 개혁개방을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주된 요인으로 꼽기도 했다.

리 회장의 '솔직한' 인터뷰는 중국 개혁개방 40주년의 의미를 중국의 내부적인 관점에서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사회주의식 공유 경제와 자유 시장경제를 접목하는 실험의 여정이었다. '국진민퇴' 논란이 끊임없이 등장했던 것도 '공유 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사회주의 국가가 갖는 태생적인 한계와 맞물려 있다.


구조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중국은 지난 40년간 많은 것을 이뤄냈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미국의 견제를 받을 정도로 성장했고, 포춘 선정 세계 500대 기업 중 111개가 중국 기업(홍콩 포함)일 정도로 기업 강국이 됐다. 1978년 시작된 개혁개방 이후 흑묘백묘론(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인민만 잘 살게 하면 제일이라는 논리)으로 대표되는 경제 우선 기조가 유지됐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런 대원칙 속에서 국유기업뿐 아니라 리 회장과 같은 많은 민영기업인들도 자라날 수 있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자율주행차 등 미래 산업 육성에 국가적인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과도한 지원이 미국의 공격에 빌미가 됐을 정도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의 경제 우선주의 노정을 돌아보는 사이 시선은 자연스레 우리 경제로 옮겨갔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한 채 그나마 눈에 보이는 미래 산업들도 각종 규제와 집단 이기주의에 발목이 잡혀 있다. 택시업계의 파업에 막힌 카풀 서비스,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반대로 늦어지고 있는 원격 진료 등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흑묘백묘론은 중국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자유시장 경제를 택한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과연 국민을 먹여 살리는 일을 제일로 생각하고 있는가. 중국 개혁개방 40주년이 우리 대한민국에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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