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들을 인터뷰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 2018.12.29 06:10

올해를 움직인 건, 평범한 일상을 보낸 모든 이들…누구나 삶의 '주인공', 그 이야길 듣고 싶었다

편집자주 |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보이지 않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매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구본홍씨(26)는 올해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의경 복무 도중 짬짬이 자기 계발을 하고 도전한 덕분이다.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포즈를 취했달라고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평범하고, 재미 없는 이야기일까봐 걱정되더라고요."

그러면서 구본홍씨(26)는 수줍게 웃었다. 인터뷰를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런 얘길 듣고 싶었던 거라고 재차 안심시켰다. "이런 게 기사가 될 지 모르겠다"고 몇 번이나 더 망설였다. 그런 뒤에야 그는 올해 있었던 일들을 들려줬다.

구씨는 '의무경찰(이하 의경)'이었다. 과거형이 됐다는 건, 지금은 아니란 얘기. 지난달 제대하면서 '국방의 의무'를 다했다. 서울 종로경찰서 근무라, 집회에 투입되는 게 일이었다. 하루 종일 서 있을 땐 다리가 아프면서도 '집회 나온 분들도 힘들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생각이 한층 의젓해졌다. 남들보다 입대가 늦었다던 그는 "이젠 군필자라고 생각하니,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뿌듯하다"고 했다.

지난해 12월31일, 구씨는 늘 품고 다니는 조그마한 노트에 이렇게 썼다. '이전의 것들과 결별하자.' 게을리 보낸 1년을 후회하는 얘기였다.

올해는 달라지려고 애썼다. 일단 시급한 게 '진로 탐색'이었다. 제대하면 4학년이라 맘이 무거웠다. 그래서 뭐든 해보기로 했다. 의경에게 주어지는 '정기 외출'을 잘 활용했다. 행정고시 1차 시험도, 자격증 시험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학적성시험도 봤다. 지난해까진 집에 가서 쉬거나 친구들을 만나며 보낸 시간이었다.

덕분에 구씨는 가고 싶은 길을 찾았다. 법조계에 도전하기로 했다. "사회를 깊이 있게 보려면, 법(法)을 아는 게 필요할 것 같았다"며 이유를 들려줬다. 그리고 '소명(개인·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찾아 헌신하는 것)'이 뭘지 찾아보고 있다. 한 직업을 오래할 수 있는 원동력은, '소명'에서 나오는 것 같다며.
광화문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시민들, 오가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이야길 들어보고 싶었다. 어떤 한해를 보냈는 지, 올해 마지막 길목에서./사진=뉴스1

'평범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길에서 흔히 만나는 이들이 사는 이야기를. 그동안 언론 인터뷰는 저명인사나,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경우에만 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기삿거리'가 안된다며 다루지 않았다. 예컨대, 문재인 대통령 한 마디는 모두 뉴스지만, 옆집 아저씨가 보낸 하루는 뉴스가 아녔다. 그런 것에 갈증을 느꼈다. 아침에 눈 떠서 이불을 박차고(큰 용기 필요), 학교·직장에 가거나 집에 있거나 집안일을 하거나 애들을 돌보고, 커피를 마셔가며 졸음을 쫓고, 쉬는 날엔 이불 속에서 뒹굴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그런 소소한 것들이 궁금했다.

이런 삶 속에 '진짜 사는 이야기'가 있을 거라 믿었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대단한 인재(人材)들이 아니라, 매일 고단한 하루와 싸우는 모든 이들이니까. 또 누구나 다 자기 삶에서는 '주인공'이니까. 그래서 올해 마지막 체헐리즘은 '평범한 사람들 인터뷰'로 정했다. 1년 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을 들려달라고 했다. 26일부터 27일까진 거리 인터뷰를 했고, 독자들에게 메일로 인터뷰 요청을 하기도 했다. 다음은 그 이야기를 모은 것들이다. 분량이 꽤 되니(스크롤 압박), 며칠에 걸쳐 나눠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눈물이 나네요, 바람이 불어서"




광화문 사거리서 광고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장모씨(66). 얼굴은 피켓으로 가리겠다고 했다. 복장이 찬바람을 막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다. 인터뷰를 하는 짧은 시간 동안, 찬바람이 강하게 불어 얼굴이 터질 뻔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27일 오전 11시20분 광화문 사거리. 영하 8도에 바람까지 불어 눈 뜨기도 힘든 추위 속에 장모씨(66)가 서 있었다. '12월 한정 이벤트'라 써 있는, 헬스장 광고 피켓을 든 채였다. 그리 두껍지 않은 패딩에, 모자에, 장갑을 썼지만 한파를 막긴 힘든듯 했다. 바들바들 떨며 장씨는 이렇게 말했다. "너무 춥고 바람이 불어서 눈물이 나네요, 오늘은 힘드네요." 그렇게 낮 1시까지 서 있어야 한다고 했다. 끝나면 또 다른 곳에 일하러 간단다. '3시간 일하면 3시간 시급 추가 증정'이어야 하지 않나. 피켓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장씨가 전단지 나눠주는 일을 시작한 건 5개월 전. 그 전엔 집안일을 했는데, 급격히 사정이 나빠져 뭐라도 보탬이 되려 하게 됐단다. 시급은 일마다 다르지만 통상 1만원에서 1만5000원 남짓. "교통비(지하철)를 빼면 별로 남는 것도 없다"고 했다. 중개하는 곳에선 여기서 수수료를 또 뗀다고. 65세 이상인데 '지하철비 무료'가 아니냐 했더니, 출생신고를 늦게 해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전단지 일을 해보니 잘 받아주는 사람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안 받아주는 것도 이해한다고 했다. "이렇게 추운 날 주는데, 손 시렵고 빨리 집에 가고 싶은데, 짜증날 것 같아요. 주는 것도 어떻게 보면 잘못됐죠." 그리고 그에게 내년 소망이 뭔지 물었다. 소박한 답이 돌아왔다. "지금 하는 일, 그냥 이렇게 열심히 잘해야지요."



택배 끝나면 대리기사…'아이 셋 아빠'는 뛴다




낮엔 택배기사, 밤엔 대리기사. 세 자녀를 부양하느라 투잡(two job)을 뛰는 변승문씨(28). 햇살이 내리쬐는 뒷모습이 커보였다./사진=남형도 기자
27일 낮 12시 서울시청 인근 한 도로, 변승문씨(28)는 점심 먹는 것도 잊은 채 강추위 속에서 택배상자를 부지런히 옮기고 있었다. "올해 어떻게 보냈냐"는 물음에 변씨는 웃으며 "그냥 일했다"고 했다.

대답은 짧았지만 애환은 깊었다. 그의 주(主) 직업은 택배기사. 그렇게 표현한 이유는, 직업이 하나 더 있기 때문이다. 변씨는 "세 달 전부터 대리운전 기사를 같이 하고 있다"고 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 뒤, 잔업·특근이 사라져 수입이 줄어서란다.

저녁 6시에 택배 업무가 끝나면, 집에 가서 잠시 쉰 뒤 저녁 8시에 대리운전 일을 하러 나온다고 했다. 일이 모두 끝나면 새벽 2시쯤. 고단한 몸으로 퇴근을 하고, 4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다시 택배 업무를 하러 새벽 6시30분까지 출근한다고 했다.

가족이 있느냐 했더니 변씨는 "아내, 그리고 자녀가 셋"이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며 환히 웃었다. 추위를 뚫는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힘들겠다는 말에 그는 "괜찮다"며 기운차게 택배 상자를 들었다. 그리고는 발걸음을 다시 힘차게 옮겼다.



두 달 뒤 '아빠'가 됩니다




두 달 뒤, 아들이 태어나면 최정민씨(30)는 어엿한 아버지가 된다. 추워도 "괜찮다"고 얘기하는 그는 이미 듬직한 모습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큰 회사 건물 입구 앞을 우뚝 지키고 있던 경비원 최정민씨(30). 맹추위 속에서도 지나가던 이들에게 "안녕하세요"하며 서글서글한 인사를 건넸다. 날씨가 많이 춥지 않냐고 안부를 묻자 그는 "추워도 괜찮다"고 웃으며 답했다.

경비 업무를 시작한 건 1년 남짓. "딱히 기억 나는 일이 없다"고 하면서도 "취직한 것에 만족하고 다니고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두 달 뒤, 내년 2월이면 최씨는 생전 처음으로 '아빠'가 된다. 아들이란다. 그리고 소박하지만, 가장 중요한 바람을 전했다. "아기가 건강하게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들 다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다른 건 더 바라는 게 없습니다."



'고양이 탈' 쓴 청년, "올해 알바만 60곳 떨어져"




명동 한복판서 '고양이 옷'을 입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전용훈씨(25). 올해 아르바이트만 60군데나 떨어졌다고 했다. 사진을 요청했더니 손으로 브이(v)를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서울 중구 명동 거리서 '고양이 탈'을 쓰고 전단지를 나눠주던 전용훈씨(25). 다가가 명함을 건네자, 전씨는 고양이 탈을 벗으려고 했다. "그냥 쓰고 해도 괜찮다"고 하자 "네, 알겠습니다"하는 굵직한 남성 목소리가 들려왔다. 올 한 해 소회를 묻자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취미 생활을 하면서, 무난하게 잘 보냈다"고 했다.

다만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도 쉽진 않았단다. 전씨는 "9월 정도에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갔었는데, 홍대 같은 곳은 경쟁률이 100대1 가까이 됐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떨어지고 또 지원하고 해서 올해만 총 60군데를 떨어졌다고 했다. 다행히 고양이 탈 아르바이트는 운 좋게 붙었단다.

내년 1월부터 전씨는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한다. 그는 "공익근무요원 판정도 까다로워서 2년 넘게 기다렸는데, 다행히 할 수 있게 됐다"며 "만약 이번에 안 됐으면 1년 동안 또 뭘 해야 할 지 모르는 불안함이 컸을 것 같다"고 했다. 청춘(靑春)의 고뇌가 느껴졌다.



다이어트 5kg 성공, "시계줄 한 코 줄였어요"




"살을 뺀 증거예요"라며 시계줄 한코가 줄어든 걸 보여줬다./사진=김선영씨 제공

20대 직장인 김선영씨는 20년 넘게 '다이어트' 중이었다(기자는 30년째). 맛있는 음식 앞에서 "오늘까지만, 내일부터"라고 외치며 무너졌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지난 26일, 체중계에 올라서니 빠진 체중이 5kg대로 접어 들었다. 팔목이 가늘어져, 시계줄 한 코가 줄었다. 김씨는 "회사에 어마어마한 감량의 산 증인이 있어, 그 분을 어찌저찌 잘 따라가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내년 여름엔 허리 라인이 들어간 짧은 상의를 예쁘게 입겠다"고 다짐을 했다.

올해 기억에 남는 일은 'F1 그랑프리' 경기를 직접 보러간 것이다. 평소 좋아하는 드라이버의 은퇴 시기가 가까워져 큰 맘 먹고 결정했다. 일본과 싱가포르까지 원정을 떠났건만 경기 결과는 2승2패. 김씨는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깨닫게 됐다"고 했다. 내년 3월에 개막전이 있는데, 또 보러 간단다. 설마 또 지겠냐는 심정으로.

연말엔 들뜬 마음에 평소 못했던 일들을 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귀 뚫기'. 예전에 양 귓볼에 하나씩 뚫었다가 염증이 나서 실패한 뒤, 그냥 잊고 살았었다. 그러다 크리스마스 이브였던 24일, 귀한 연차를 써가며 다시 도전했다. 그것도 무려 네 군데나. 결과는 성공이었다. 김씨는 "평소 거울을 보면 슬펐었는데, 귀걸이 한 걸 보니 예뻐서 거울을 못 놓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두 군데 더 뚫을 예정이다.



수술 날 아침, 남편 붙잡고 '엉엉' 울었다





수술 날 아침이었다. 잠은 한숨도 못 잤다. 걱정되고 무서웠다. 병실 침실에서, 엉엉 울면서 남편에게 "집에 가자"고 했다. "잘될테니까 걱정말라"며 힘나게 해줬던 남편도, 그 모습에 표정이 묵직해졌다. "대신 수술 받았음 좋겠다"고도 했다. 수술 담당 의사가 병실에 와서 인사하자 정말 실감이 났다. 끌려가는 기분으로 수술실 앞에 왔다. 이제 남편과 헤어진다고 생각하자 결국 눈물이 터졌다. 펑펑 울면서 침대에 누웠다. '차갑다'는 생각이 들 무렵, 의식이 사라졌다.

직장인 김모씨(34)는 지난 여름, 큰 수술을 받았던 때를 이렇게 떠올렸다. 35도에 육박하는, 사상 최악의 폭염이 덮친 때였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다. 눈을 떴을 땐, 병실로 다시 가는 중이었다. 남편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통주사가 들어갔지만, 첫날은 통증이 너무 심했다. 15분에 한 번씩 누르라고 한 무통주사 버튼을 두고, 남편에게 "계속 눌러달라, 누른 것 맞느냐"며 재촉했다. 아무 것도 못하고,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둘째 날이 돼서야 통증이 가라 앉았고, 걸어다닐 수 있었다. 운동을 시작한 첫날, 방귀도 '뽕' 나왔다. 남편에겐 "부끄러우니 나가 있으라"고 했었다. 남편은 "방귀가 나왔다"며 뛸듯이 기뻐했다. 평소엔 대수롭지 않았던 방귀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미음을 먹다, 죽을 먹다, 이윽고 밥도 먹었다. 편의점에서 때우던 남편도, 그제서야 밥을 제대로 먹었다. 다행이었다. 그렇게 건강이 회복돼 갔고, 그 소중함도 알았다.

퇴원한 뒤, 경과도 좋아 회사에도 무사히 잘 복귀했다. 그는 "옆에서 괜찮다고, 줄곧 발을 주물러주고 안아주며 지극 정성으로 간병해 준 남편 덕분에 다행히 지금은 잘 회복했다"며 "참으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올해,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19개월 된 딸에게 손수 지은 옷 '선물'




장현정씨(33)가 만든 옷을 입고 활짝 웃는 권하엘양(19개월)./사진=독자 제공

경기도 안양시에 사는 장현정씨(33)가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육아'다. 7개월이었던 딸 권하엘양을 19개월(현재)까지 건강하게, 예쁘게, 쑥쑥 잘 키워냈다.

특별했던 건 장씨의 '로망(roman: 낭만, 꿈·소망)'을 이룬 것. 아이 낳기 전부터 "직접 만든 옷을 입히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그리고 올해는 그 꿈을 마침내 이뤘다. 여러가지 옷을 만들어 입혔다.

최근엔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크리스마스 트리요정' 컨셉으로 옷을 만들었다. 초록색 멜빵바지에, 붉은색 후드 상의, 붉은 양말을 신겼다. 그리고 아이보다 조금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 옆에서 사진을 찍어줬다. 아이가 큰 뒤에도 언제든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도록. 장씨는 "사랑 가득 담긴 엄마의 일상이 기사에 도움이 됐길 바란다"며 마음을 전해왔다.



올해 정말 행복했다, '퇴사'해서




"퇴사를 정말 권하고 싶어요, 단 저처럼 주변 상황에 대한 책임에 여유가 있다면요." 임종권씨(28)의 말이다./사진=독자 제공
"올해는 정말 행복한 한 해였습니다. 왜냐하면 2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거든요."

임종권씨(28) 말처럼 그의 표정에선 '행복'이 느껴졌다. 주말에나 볼 법한 웃음에, 피로감이 없는 모습이었다. 임씨는 퇴사한 뒤 야간 대학원을 다니면서, 학교 조교 일을 하고 있다. 벌어둔 돈이 있고, 부모님과 함께 사는 덕분에 '마이너스(적자)'는 면하고 있다.

임씨는 퇴사 후 하고 싶었던 일을 했다. '롤드컵'이라 불리는, 전 세계적인 게임 대회를 직접 보러 다녔다. 서울서 예선, 부산서 8강, 광주서 4강, 인천서 결승. 회사에 다녔다면 꿈도 못 꿨을 일이었다. 임씨는 "제 자신에게 너무 뿌듯하고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퇴사는 만병통치약(藥)"이라며 "주변 상황에 대한 책임에 여유가 있다면 꼭 해봤으면 한다"고 권했다.



미국 유학 생활, 책상 위 '귀여운 아이들'




양모씨 책상에 귀여운 물건들이 가득한 건, 머리와 마음이 차가운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한 작은 노력이다./사진=독자 제공
30대 양모씨의 연구실 책상엔 '귀여운 물건'들이 잔뜩 놓여 있다. 곰돌이 휴지통, 토끼 필통, 라마 머리가 달린 컵이 있고, 벽엔 버섯 모양 부직포와 영어 이름(Sophie)을 붙였다. 미국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자리에 앉아 귀여운 아이들을 보면 기분이 엄청 좋아진다"고 했다.

공부한답시고 머리와 마음이 차가운 사람이 되고 싶진 않은, 양씨가 스스로를 지키는 '작은 노력'이기도 하다. "10대 때 천진난만하고 미성숙하고 순수한 것들을, 여전히 좋아한다는 걸 제 자신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건 '라마 머리가 달린 컵'이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같이 공부하는 동기가 양씨를 자신의 집에 초대한 뒤 선물했다. 양씨는 "서로 안 지 3개월 밖에 안됐을 때인데도, '한국에서 온 제가 뭘 좋아하는지 아는구나'란 생각에 정말 고마웠다"고 했다.

스스로 원하는 게 아닌, 사회가 추구하는 것에 맞춰 살고 있진 않나 생각에 고민도 많다. 그럼에도 양씨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명확하다. 바람을 느끼는 것, 귀여운 인형을 보는 것, 강아지나 고양이를 만지고 함께 노는 것, 예쁜 옷을 입는 것,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이런 소소한 것들.



마포대교 '노을'을 보며, 직장인을 꿈꾼다




내년에 마포대교를 건널 땐, 사회인이 되어 있기를./사진=취업준비생 이모씨 제공
취업준비생 이모씨(30)는 매일 아침, 서울 신촌에 있는 학교 도서관에 간다. 그렇게 저녁까지 공부를 한다. 집에 돌아갈 땐 운동 삼아 여의도 환승센터까지 5km 거리를 걷는다. 그러면 마포대교를 지나곤 한다. 붉게 물든 노을이 한강에 비치는 풍경은 '선물'이다. 버스를 탈 땐 미처 몰랐었다. 이씨는 "마치 하루 내내 고생한 나를 위로라도 하는 것 같다"며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했다.

올해도 이씨는 수많은 시험장을 다녔다. 그럴 때면 떨리는 와중에도 늘, 사진을 남기곤 한다. '제발 이 사진 한 장이 취업에 성공한 뒤 추억이 됐으면'하는 마음에서다. 하지만 아직은 쓰디쓴 추억만 남았다. 운 좋게 한 회사에서 최종 면접을 봤지만,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올해 퇴직하는 아버지 바톤을 잇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게 됐다.

이씨는 "마포대교 하늘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며, 올해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며 "매번 다리를 건너며 취업이란 문턱을 건넜을 땐 어떤 희열이 다가올 지 생각한다"고 했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까운 법이란 걸 믿고 있다. 내년엔 주변인이 아닌, 당당한 사회인이 되길 바라며, 오늘도 그는 마포대교를 건넌다.




에O팟과 로봇청소기(필동이)와 어머니



직장인 송대욱씨(31)는 좋아하는 여성(썸녀)이 있었다. 지난 9월, 한 소셜커머스에서 무선 이어폰 '에O팟(20만원 상당)' 할인 행사를 했다. 썸녀가 이를 갖고 싶다고 했다. '기회다!'라고 생각한 송씨는 물불 안 가렸다. 앱도 깔고, 휴대전화 결제한도도 30만원으로 높였다. 하지만 실패했다.

좌절한 송씨는 그냥 다른 소셜커머스에서 '에O팟'을 주문해 썸녀의 집에 배달했다. 썸녀는 매우 기뻐했다. 친구들이 "넌 O구야"라고 욕했지만 신경 안 썼다. 하지만 한 달 뒤인 10월, 썸녀와는 결국 연락이 끊겼다. 같이 게임을 하는데, 너무 못한다고 2~3시간 동안 면박을 줬고(정말 못하긴 했단다), 이를 계기로 맘을 접었다.

그리고 11월, 송씨가 집에서 밥 먹고 있을 때였다. 그의 어머니가 바닥을 손걸레로 닦고 있었다. 이게 새삼 눈에 띄었다. 맘에 걸렸던 송씨는 '로봇청소기'를 알아봤고, 그중 20만원대 제품을 사기로 했다. 그런데 순간 고민이 들었다. '이번달 카드 값이 장난이 아닌데, 다음 달에 사드릴까.'

그때, 썸녀에게 에O팟을 사줬던 순간의 상(像)이 겹쳤다. 당시엔 1초도 고민하지 않았던 그였다. 송씨는 "날 사랑하고 항상 잘해주는 어머니에게 쓰는 돈은 왜 이렇게 고민할까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자신이 밉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그는 그냥 결제했다. 어머니는 무척 기뻐했고, 그 모습을 보며 송씨도 행복했다. 로봇청소기엔 이름도 붙었다. '필동이'라고.



100만원짜리 구두도 씹은 '방아', "꽃길만 걷길"




인천국제공항서 4개월 간 정든 '방아'를 꼭 안고 있는 박선우씨.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사진=독자 제공
박선우씨 부부는 유기견 '방아(푸들)'와 인연을 맺은, 4개월의 시간이 올해 가장 큰 '행복'이었다.

방아는 독일로 입양가기로 돼 있었는데, 그 전까지 '임시 보호'가 필요했다. 박씨는 SNS서 우연히 이 글을 보고 데려오기로 맘 먹었다. 이미 집에서 키우고 있던 강아지(까만 푸들, 쫄보)와 잘 지낼지 궁금하기도 했다.

방아는 어리고 호기심이 (지나치게) 많았다. 입에 가져가 씹을 수 있는 건 죄다 씹었다. 목줄도, 가슴줄도, 침대도, 신발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다. "어릴 때 버림 받아 욕구를 충족 못 시켜서 그래"하고 남편과 얘기하며, 허허 웃으며 넘겼다. 그 마음을 알았는지, 어느 날엔 결혼기념일에 선물한 구O 지갑(100만원 상당)도 냠냠 했다. 속상해서 울다, 어이 없어 웃었다.

그러는 새 헤어질 날이 다가왔다. 2개월만 보호해달라던 방아가 4개월 넘게 있었지만, 그 또한 시간이 빨랐다. 보내기 전날, 박씨는 방아를 데리고 도망칠까, 잃어버렸다고 하고 키울까, 별 생각을 다 했다. 그러다 좋은 곳에 가서 평생 행복하길 바라는 맘에 보내주자 다짐했다.

방아가 떠나는 날, 박씨 부부는 펑펑 울었다. 방아도 켄넬이 낯선듯, 그들을 보고 낑낑대며 짖고 울었다. 방아를 그렇게 보낸 뒤에도, 10월 내내 보고 싶어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잘 지내는 모습을 보니 맘이 좋았다. 박씨는 "내년 여름엔 저희 강아지도 함께, 방아를 보러 독일로 가기로 했다"며 "버림 받은 기억은 잊고, 앞으로 꽃길만 걸었음 좋겠다"고 했다.



기름공장에 들어온 '고양이'


"냐옹". 6년 만에 정유공장에 들어온 고양이가 직원들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사진=강예찬씨 제공

강예찬씨(24)에게 올해는 '보너스' 같은 해였다. 지난해 4월 입대한 강씨는 만기전역 예정일보다 일찍 전역을 했다. 이런저런 사정이 있었다. 그래서 올 상반기엔 아르바이트를 하며 휴학생으로 지냈다. 돈도 벌고, 저축도 하고, 종종 야구장에 가기도 했다. 개강이 가까워오자, 강씨는 '아예 자퇴를 할까'도 고민했다. 대학을 왜 다니는지, 고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반기엔 그렇게 '복학생'으로 지냈다.

종강 후에는 인천의 한 정유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비상대기'를 하는 게 주요 업무다. 그런데 26일, 갑자기 또 '연말 보너스' 같은 행복이 찾아왔다. 공장 휴게실에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온 것. 갈색빛 바탕에 검은털이 섞였다. 강씨는 "동물이 휴게실에 들어온 건 아르바이트를 했던 6년 동안 처음 있던 일"이라며 "지루한 일과 중에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아이"라고 했다.



둘째는 '아픈 손가락'…뒷모습 보며 묵묵히 응원



아들의 뒷모습만 봐야 하는 아버지 마음, 다 도와주고 싶어도 그러면 안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사진=정우철씨 제공

경기도 광주에 사는 40대 중반 정우철씨에겐 아들이 둘 있다. 첫째 아들은 9살, 둘째 아들은 7살. 그중 막둥이는 더 아픈 손가락이다. 몸이 좀 불편해서다. 일찍 태어나서 아직 걷질 못한다. 그래서 뭘 보고 싶을 땐 아빠를 찾는다. "엄마는 힘드니까, 아빠가 안아서 보여달라고." 그래도 말도 잘하고, 의사 표현도 또박또박. 가장 큰 응원을 해주는 친구 같은 아들이다. 첫째에겐 미안한 마음 뿐이다. 둘째에게 맘을 더 쓰게 되서다.

정씨는 지난 여름, 휴가로 해외여행을 갔다. "둘째 때문에 국내여행이 여의치 않을 때가 많아서"라고 했다. 둘째와 처음으로 모래사장에서 같이 놀아줬다. 아이는 모래를 엄청 좋아했다. 정씨는 "7년 만에 이 사실을 안 게 미안하면서도,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라고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엔 약속도 하나 했다. 내년에도 모래사장 있는 곳에서 같이 수영하자고. 둘째 아들은 정말 기뻐서, 벌써 병원 선생님들이며,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닌다고 했다.

이런 아들들을 보며 그는 올해부터 운동도 시작했다. "둘째가 점점 크는데, 안고 세수를 시키려니 갑자기 두려워졌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도, 든든히 책임질 수 있도록, 체력을 기르겠단 마음이었다. 정씨는 오늘도 아들의 뒷모습만 보며 말없이 응원한다. 당장 달려가, 모든 걸 다 해주고 싶지만, 그러면 안된다는 걸 잘 알기에.



올해 처음, '네일아트'를 해봤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평소 하고 싶었던 네일아트를 못했었던 서준하씨(26). 그래서 취직에 성공하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네일아트'였다./사진=서준하씨 제공
서준하씨(26)는 평소 꿈꾸던 '네일아트'를 올해 처음 해봤다. 남들은 할 수 있는 걸 그동안 못했던 이유가 있었다. 대학 시절 내내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기 때문. 요식업에서 근무하는 터라, 네일아트는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드디어 받을 수 있게 됐다, 그것도 스스로 번 돈으로. 그렇다. 대학을 졸업하고, 올해 취직에 성공했다는 의미다. 그것도 목표하던 사회복지재단에. 꿈에 그리던 순간이었다. 과정이 쉽진 않았다. 서씨는 "인턴 3번에 수많은 이력서 탈락, 실망감과 무력감을 이기고 성공한 거라 무척 뿌듯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는 세상을 더 배우고 스스로 성장하게 해주는 기회가 됐다. 물론 장시간 근무로 살이 6kg이나 쪘지만. 후원자 중에선 폐지를 주워 기부하는 할머니도, 어느 회사 대표도 있다. 서씨는 "평소 나눔은 경제적으로 풍족한 사람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의 여유가 중요한 걸 알았다"고 했다. 그런 어른이 되기 위해, 그도 주말에 봉사활동을 하며 더 노력하고 있다.

"아직은 세상이 아름답다"는 서씨는, '성선설(性善說: 인간은 본래 선하다 믿는 학설)'도 믿는단다. 그러면서 올해 기억나는 일 중 하나로 "지갑을 3번이나 주워서 경찰서에 가져다 준 일"이라고 했다. 그 중 한 번은 현금이 5만원 넘게 들어 있었고, 하필 주운 곳 옆에서 붕어빵도 팔고 있어 심히 고민도 했다. 하지만 현금 한 푼 챙기지 않고, 그대로 찾아줬다. 고맙다고 하는 여학생에게, 서씨는 괜찮다고 하며 "다른 사람 지갑을 주우면, 저처럼 행동해달라"고 일렀다. '나비효과(작은 사건이 추후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이론)'를 기대하면서.



전교생 80명, '산골학교' 선생님



경기 양평에 사는 옥중기씨는 초등학교 교사다. 아내와는 원래 주말 부부였다가, 올해 옥씨가 직장을 옮기면서 오랜만에 함께 살게 됐다.

그동안 도시에서만 교사를 했던 그는 애들을 상대하는 게 쉽잖았다. 특히 지난해엔 학급 내 따돌림, 거짓소문 내는 아이, 이를 감싸는 학부모 때문에 무너진 교권만 확인해야 했다. 그러다 올해 전교생이 80명인 산골학교로 왔다. 행복한 시간이 됐다. 옥씨는 "천사 같이 순수한 아이들과 함께 많은 활동을 하며 지내니 참 좋다"고 했다.

개인적으론 좋아하는 일들을 맘껏 했다. 여행을 좋아해 사하라 사막이 있는 모로코를 다녀왔고, 크래프트 맥주 공장이 세계서 제일 많은 미국 포틀랜드도 다녀왔다. 성악 레슨을 받고 있는데, 올해 처음 콩쿠르에 출전해보기도 했다. 2주에 한 번씩, 선생님들끼리 모여 연구회도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수업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위해.



내게 가장 기뻤던 일, 엄마도 가장 기뻤던 일



이유신씨(26)는 엄마에게 "올해 가장 기뻤던 일이 뭐냐"고 물었다. 무뚝뚝한 터라, 평소 같으면 "그런 것 없다"고 했을텐데 올해는 달랐다. "네가 그 회사 들어간 게 가장 기쁘다"고 했다. 그래서 더 뭉클했다. 이는 이씨에게도 올해 가장 행복했던 일이었다. 기존에 다니던 회사에서, 더 큰 회사로 이직한 것. 1차 합격, 3개월 수습 기간을 거쳐 10월부터 정직원이 됐다.

감회가 남다른 것은,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이씨가 스무살, 재수를 하던 때, 아빠가 큰 사기를 당했다. 대학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녔고, 당장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빚을 갚아야 했다.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중국어를 할 수 있던 게 장점이 돼 면세점에 취직했다. 남들은 운 좋다 여길 수도 있지만, 사실 우여곡절 끝에 이뤄낸 이직이었다. 이씨는 "집안 얘길 거의 안하는 엄마가, 회사 동료에게 은근슬쩍 딸 자랑을 하는 걸 보고 사실 좀 귀여웠다"고 했다.

올해 슬펐던 일은 평생 갈 거라 여겼던 친구와 연락이 끊긴 것. 평소 서운한 일은 그때 그때 풀곤 했는데, 갑자기 태도가 달라진 것 같았다. 이유를 물어봐도 "그런 것 없다"고만 했다. 그렇게 소원해졌다. 이씨는 "연락을 하고 싶다가도 싸늘한 친구 반응에 또 상처 받을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성숙해지는 과정이려니 하고 있다. '가는 인연이 있으면, 오는 인연도 있다'고.



축복 받을 가족이 없는, 소중한 생명에게




바느질을 한땀 한땀해서 만든 딸랑이, 축복을 못 받은 어느 아기에게로 가 있겠지./사진=고미숙씨 제공
경기도에 사는 고미숙씨(33)는 지난달 조카가 생겼다. 다른 아기들보다 일찍 태어나 우려도 있었지만, 다행히 건강하게 태어났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조카에게 '베개'를 선물했다.

그러다 서랍 한 켠에 넣어뒀었던,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베이비키트'가 생각났다. 아기모자나 딸랑이 등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들어있는데, 이를 만들어 보내면 무연고 아기에게 전달해준다고 했다. 딸랑이를, 한 땀 한 땀 바느질해 보냈다. 고씨는 "마땅히 축복 받아야 하지만 그럴 가족이 없는 아기에게, 태어나줘서 고맙고 앞으로 씩씩하게 자라달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했다.

지금쯤 딸랑이는 어느 아기에게 전달돼 있을 것이다. 그리고 웃고 있을 것이다. 고씨는 "바느질을 하며 굉장히 행복하고 따뜻한 마음을 느꼈다"며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 하는 건 참 좋은 일인 것 같다"고 했다.



배 위에서 보내는, 마지막 12월



국제 여객선 선박 기관사인 A씨(32)는 올해 12월28일, 바다 위에 있었다. '내년 이맘 때쯤엔 배 위에 없겠구나'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동안 보낸 매일매일이 뜻깊었구나 새삼 느꼈다. 그래서 그 광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처음에 이 분야를 선택한 건 금전적인 이유가 컸다. 어려운 가정 환경 때문에, 늘 '돈을 많이 벌어 엄마를 건강하게 해주고 멋진 집도 사고 빚도 갚아야지' 생각 뿐이었다. 내년 말이면, 목표 저축액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아 그만두기로 맘 먹었다. 만만 찮은 선상 생활과 적성이 안 맞는단 것들이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설레기만 한 건 아녔다. A씨는 "가끔 시간이 나서 갑판에 나가 바라보는 노을이나 일출이 장관인데 조금 아쉬울 것 같다"고 했다.

올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엄마와 여행갔던 일. 상하이 한 호텔에서 밤에, 맥주를 마시며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면서 그는 "엄마와 어른으로서의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에, 함께 늙어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고 했다.



"전세금 안 준다"고 해 맘고생…이사가는 날, 참 맑았다




집 때문에 맘 고생했던 한해, 그와 달리 이삿날은 참 맑았다./사진=최유미씨 제공

"이사 가는 날, 제 마음과 달리 날씨가 참 맑더라고요."

공무원 최유미씨(33)는 집 때문에 올해 맘 고생이 많았다. 원래 살던 남양주 전셋집을 빼고, 올 9월 서울 동대문구로 이사를 갈 참이었다. 2년 간 서울로 출퇴근을 하느라 1시간30분씩 걸렸었다.

그런데 전세 만기인 8월, 집주인이 "전세가격이 낮아져, 전세금을 못 주겠다"며 버텼다. 집을 옮긴다고 3개월 전 고지하고, 내용 증명을 보내도 수신을 거부했다. 빠져 나갈 길을 아는 거였다. "피를 말리는 하루하루였다"고 최씨는 회상했다. 법이 얼마나 기댈 곳이 못 되는 지도 깨달았다. 각종 무료 법률 상담과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를 쫓아다니며 대책을 찾아야 했다.

이삿날 못 준다던 집주인에게, 결과적으로 돈을 받았다. 전세금을 받으러 간 최씨 어머니에게 집주인은, "똑똑한 따님 두셔서 좋으시겠다"고 했단다. 황당한 이야기였다. 이사가던 날, 힘들었던 것에 비해 날씨가 화창했다. 최씨는 기념으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누군가 차려준 밥이, 가장 행복했다




남이 차려준 밥을, 혼자 먹을 때 가장 행복하다던 박주희씨(39). 아들을 챙기느라 제대로 된 점심을 못 먹었었다./사진=박주희씨 제공
박주희씨(39)는 올해 태어나 가장 바쁜 한 해를 보냈다. 몇 년째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그는, 수업이 부쩍 늘어나 정신이 없었다. 또 지난 3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신경 쓸 일이 많아졌다. 강의가 끝나면,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가느라 제대로 된 점심식사도 못했다.

그래서 가장 즐거웠던 날은 월요일이었다. 아들이 방과 후 수업을 하는 날이다. 학교 식당에서 입맛에 맞는 점심을 줄 때, 가장 행복했다. 박씨는 "주부들은 남이 차려준 밥을 먹을 때 좋다고 하는데, 거기다 혼자 먹을 때 정말 행복했다"고 했다. 아이가 먹을 국이 뜨거운지, 고기 조각이 너무 큰 지, 반찬이 너무 매운지, 신경쓰지 않아도 돼서였다. 온전히 스스로와 밥과 휴대폰 속 드라마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주말 내내 기다렸다.

박씨는 "이제 저도 아이도 방학을 맞게 돼 당분간은 삼순이가 됐다"며 "올 봄과 가을, 저를 행복하게 해줬던 월요일 점심이 한동안 그리울 것 같다"고 했다.
체감 온도 영하 20도였던 27일, 길거리 인터뷰를 할 때 시민들에게 나눠줬던 핫팩과 손편지. 내용은 비밀이다. 이를 받은 이들에게, "너무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마음으로 핫팩을 품은듯 따뜻해졌다./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그리고 기자가 보낸 2018년.

서로 공감(共感) 했으면 하는 맘으로 '체헐리즘'을 시작했었다. 좋아하는 김연수 작가 말처럼, "누군가를 짐작하는 게 가장 인간적인 일"이라 믿었기에. 처음엔 단 한 명만이라도, 이런 맘이 통하면 족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분(分)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쏟아지는 격려와 응원에 몸둘 바를 몰랐었다. '첫 마음을 잃지말자'며, 괜히 더 채찍질했었다. 진심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새벽까지 고민하는 날들이 많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폐지를 주웠던 체험이다. 뇌경색을 앓아 장애가 남았던 최진철씨(55)와 동행했었다. 기사가 나가고, 그를 도와달라고 댓글에 썼었다. 치아가 엉망이라 제대로 못 먹는다고, 형편이 어려워 치료도 못 받는다고.

돕고 싶다는 메일이 쏟아졌다. 용돈에서 1만원이라도 나누고 싶다며, 얼마 못 도와 미안하단 학생도 있었다. 무료로 치과 진료를 받을 곳을 알려주는 이도, 직접 치료해주고 싶단 사람도 있었다. 이들에게 최씨의 계좌번호와 연락처를 알려줬다.

그리고 그에게 연락이 왔다. "너무 고맙습니다, 너무 고마워요"만 반복하며 울었다. "제가 한 게 별로 없다"고 답하는데, 눈시울이 같이 붉어졌다.

추운 겨울, 길거리 풍경을 좋아한다. 사람들 입김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계절이라서. 그걸 보며 '같이 살고 있구나' 느낄 수 있어서. 내년은 돼지띠(1983년생, 기자 나이)의 해다. 더 힘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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