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부탁해’ 나응식, 김명철 “언젠가는 고양이 마을도 만들고 싶다.”

서지연 ize 기자 | 2018.12.20 07:48
EBS ‘고양이를 부탁해’가 방송된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고양이는 ‘길들여지지 않는 동물’이라는 시선 때문에 오랫동안 반려동물로서 적합하지 않은 존재로 여겨져왔다. ‘고양이를 부탁해’의 등장은 이러한 편견이 깨질 때가 됐음을 시사한다. 이미 고양이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고, 충분히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냐옹신’ 나응식, ‘김미야옹철’ 김명철 수의사를 만났다.
‘고양이를 부탁해’ 섭외가 들어왔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
김명철: 일단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먼저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PD님과 작가님이 ‘똑같은 포맷으로 고양이가 가능할지’ 의견을 물어보셨다. 사실 나도 이게 될까 궁금했다. (웃음) 그런데 해외에는 2년 전쯤에 이미 고양이의 문제 행동을 교정하는 프로그램이 방송됐었다. 그리고 방송을 하면 할수록 고양이는 고양이 맞춤형 솔루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응식: 처음 섭외가 들어왔을 때 필요한 프로그램이긴 한데 알맞은 포맷인가에 대한 고민은 있었다. 사실 고양이나 개나 하루 교정을 한다고 단번에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서는 트레이닝에 중점을 뒀는데, 동물 행동학이라는 게 환경, 놀이, 교육, 치료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런 면에서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보며 아쉬웠던 점은 치료에 대한 부분이 빠져있었다는 거다. 동물의 문제 행동이 심리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신체적인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람도 몸이 아프면 짜증부터 나지 않나. 그런 부분에서 수의사로서 좀 더 전문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고양이가 훈련이 될까?’라고 의심한다.
나응식: 나는 오히려 고양이의 집중력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훈련의 원리 자체는 같지만 고양이와 강아지의 성향 자체가 다른데, 강아지는 보호자를 우선순위로 두지만 고양이는 자기가 원하는 것이 우선이다. 육식동물이기 때문에 보상에 대한 반응 자체가 훨씬 빠르고. 늘 강아지에 비해 고양이에 대한 선입견이 많은 것이 안타까웠다. 고양이는 외로움을 안 탄다? 키워보면 알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밖에 안 나가서 편할 것 같다고? 고양이에게는 집과 주인이 전부기 때문에 더 신경 써야 한다는 뜻이다. 고양이는 잠만 잔다? 놀아주지 않아서 무기력해진 것뿐이다. 이런 편견들이 고양이의 문제 행동을 만든다.

고양이를 처음 만날 때 굉장히 조심스러워 보인다.
김명철: 고양이의 특성을 알면 그럴 수밖에 없다. 사람들에게 “고양이를 처음 만나면 사랑스러워하지 마세요”라고 한다. 가만히 있으면 고양이가 먼저 다가오는데 굳이 관심을 보이고 만지려고 하면 아이는 경계하기 마련이다. 가만히 있다가 고양이가 근처에 오면 손가락 하나를 내밀어 코인사를 하는 정도가 좋다. 아이가 안전하다고 느끼면 편하게 냄새를 맡고 뺨을 비빌 것이다. 첫인사의 주도권을 고양이에게 주는 것이 기본적인 에티켓이다.
나응식: 고양이는 특히 소리에 민감하다. 강아지가 후각, 청각, 시각 순이라면 고양이는 청각, 후각, 시각 순으로 자극을 느낀다. 안 그래도 낯선 사람이 불편한데 큰 소리를 내면 고양이는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고양이를 위하는 행동을 하려 하기 보다는 싫어하는 행동을 안 하는 게 중요하다.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면 사람들이 고양이를 정말 사랑하지만, 자신의 고양이를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응식: 사람과의 관계와 똑같다. 내가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다 안다고는 할 수 없지 않은가. 물론 고양이를 지나치게 의인화하는 건 위험하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는 정도는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고양이도 각자 취향이 있는데 그걸 다 안다고 생각하거나 내 위주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
김명철: 특히 고양이는 환경이 중요한데, 사람 기준에서 집을 꾸미다보면 고양이 입장에서 굉장히 불편한 공간이 된다. 필요요소가 다 있더라도 고양이의 습성과 동선을 고려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나응식: 늘 강조하는 화장실 같은 경우도 요즘엔 ‘N+1’이라는 공식을 알고 있는 집사들이 많지만, 막상 집에 가보면 화장실이 모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 청소하기가 편하니까. 또 고양이의 습성 때문에 오픈형을 추천하지만 사막화 때문에 돔형을 고집하기도 한다. 이런 게 바로 인간중심적 사고다.

고양이가 원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김명철: 가장 알기 쉬운 건 울음소리다. 집고양이가 운다는 건 보호자에게 원하는 게 있다는 뜻이다. 아무 이유 없이 울지는 않기 때문에 평소와 달리 울기 시작했다면 무엇이 달라졌는지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아이의 루틴이 바뀌지 않았다면 의외로 주인의 루틴이 바뀌어서 그럴 수도 있다. 보호자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심한 고양이가 있었는데, 보호자가 연애만 하면 꼬리에 탈모가 생기곤 했다. 보호자가 집에 있는 패턴이 바뀌고 관계가 약해지니까 스트레스를 받았던 거다.
나응식: 사람들이 인지를 못할 뿐이지, 고양이는 굉장히 풍부하게 표현을 한다. 특히 꼬리 언어가 발달되어 있는데, 그것만 알아도 쉽게 감정을 파악할 수 있다.

‘고양이를 부탁해’에 출연한 보호자들이 ‘학대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는 경우도 있었는데.
김명철: ‘초보맘 팡이’의 보호자 같은 경우에는 업자라는 의혹을 받았던 것으로 안다. 말이 안되는 게 아빠는 페르시안이고 엄마는 렉돌이라 새끼들이 순종묘가 아니다. 분양이라는 단어가 쓰이다보니 오해가 생긴 것 같다. 솔루션을 할 때까지 치료를 미뤘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나응식: 사연을 신청하는 분들은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어렵게 용기를 낸 거다. 100점짜리 부모가 없듯이, 100점짜리 보호자도 없다. 그랬다면 애초에 ‘고양이를 부탁해’가 필요 없었을 것이다. (웃음)

‘고양이를 부탁해’ 솔루션을 하면서 직접 장판도 갈고, 오줌 자국도 지웠다. 이쯤 되면 수의사가 극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웃음)
나응식: 처음에는 그래도 고양이는 실내 촬영이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무조건 야외 촬영이니까. (웃음) 그런데 올해 여름을 겪으며 깜짝 놀랐다. 에어컨이 없는 집이 너무 많았다.
김명철: 사실 수의사는 극한 직업이 맞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대동물 임상은 1톤에 육박하는 소를 잡아서 채혈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우리가 하고 있는 소동물 임상은 감정 소모가 많다. 최악의 경우 안락사까지 집행해야 하는 입장이다. 마음이 단단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나응식: 치료를 운전에 비유하면 속도를 늦추도록 브레이크를 밟을 뿐이지, 차를 세울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진료를 볼 때 감정을 절제하려고 애쓰는 편인데, 마음을 준만큼 나에게 돌아오는 타격이 크다. 동물들의 삶의 주기가 짧기 때문에 10년 이상 일하다보면 견딜 수 없는 순간들을 직면하게 된다.
김명철: 아기 때 봤던 아이를 늙고 병든 모습으로 마주하는 날이 온다. 동물병원은 한 아이의 일생에 있어서 가장 어두운 순간을 들여다 봐야 하는 장소다.


지금은 여러 매체에서 ‘고양이 전문 수의사’라고 소개되고 있다. 그런 명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나응식: 무척 부담스럽다. 일단 한국에서는 전문의 과정 자체가 없다. 물론 열심히 고양이를 봐왔으니까 스스로를 그렇게 부를 수는 있겠지만, 동료 수의사들이 보기에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만큼 더 책임감을 느낀다.
김명철: 내가 수의학과를 다닐 때 고양이를 다루는 비율은 설치류보다도 낮았다. 완전 비주류였다고 할까. 그런데 지금은 천지개벽이라고 느낄 정도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늘었다. 거기 따라가려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응식: 그냥 ‘냥냥박사’ 정도로 불러주면 좋겠다. (웃음) 고양이 자체가 귀여우니까 우리도 거기에 묻어가려고.

각자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맡고 있는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나응식: 김 원장님이 꽃길이라면 나는 가시밭길을 헤치고 가는 느낌이다. 감정을 잘 못 숨겨서 화내는 모습이 너무 많이 방송에 나갔다. (웃음) 가끔 보호자들에게 ‘오늘 누가 왔으면 했어요?’라고 물어보면 대답을 안 한다. ‘김미야옹철’을 원한다는 거 나도 안다. (웃음)
김명철: 나 원장님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한다. (웃음) 나는 그렇게 못하니까. 가고자하는 방향은 같지만 스타일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각각 아이노시마와 욕지도에 방문하며 ‘고양이에 대한 적절한 무관심’을 강조했다.
김명철: 사실은 고양이에게 따뜻한 관심을 달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직 그럴 단계가 아닌 것 같다. 차라리 무관심이라도 갖자는 뜻이다. 그럼 지금보다는 나아질 테니까.
나응식: 전국에 있는 길고양이들을 모두 사랑해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자기 동네 고양이들만이라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줬으면 좋겠다. 동물에 대한 혐오가 결국 사람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는 건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김명철: 요즘 느끼기에 캣맘, 캣대디의 처지가 길고양이 같아서 안타깝다. 아이들을 챙겨주다가도 사람을 보면 움찔움찔 놀라고 피하기 바쁘다. 우리 민족 자체가 풍족하지 못한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더 고양이를 미워하는 것 같다. 도둑고양이라는 말을 쓰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또 고양이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도 있다. ‘고양이를 부탁해’ 촬영을 하고 못나간 에피소드가 있다. 아파트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집을 나갔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만지려고 하다가 물렸고, 이에 출동한 경비가 고양이를 때려죽였다. 고양이 입장에서는 너무 낯설고 두려워서 털을 세우고 하악질을 한 건데, 자신을 공격한다고 오해해서 벌어진 일이다. 가만히 두고 아파트 방송으로 ‘집을 나온 고양이가 있으니 집주인은 얼른 찾으러 오고, 대신 아무도 접근하지 말라’고만 했어도 무사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이 너무나 많다.

고양이와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김명철: 일단은 동물학대방지법이 더 강화되어야 한다.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솜방망이 수준이다.
나응식: 어릴 때부터 고양이를 비롯해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
김명철: 희망적인 건 이제 한국에서도 그런 시도들을 한다는 사실이다. '카라'같은 동물보호 단체에서 초등학생이나 선생님을 대상으로 생명존중에 대한 교육을 하기도 한다.

‘냥냥박사’로서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나응식: 일단 박사 논문을 써야 한다. (웃음) 단기적으로는 행동학을 좀 더 연구하고 싶다. 행동학에서는 무엇보다 보호자와의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호전됐을 때 만족도도 높다. 다만 시간이 많이 걸리는 학문이다 보니 아마 계속 공부를 하지 않을까.
김명철: 현재 고양이 전문 병원에서 일하고 있고 다른 동물은 아예 진료를 안 한다. 그런 만큼 고양이에 대해 더 전문적인 수의사가 되고 싶고, 나아가 대중이 조금 더 고양이를 알게 되고 좋아할 수 있도록 만드는 역할을 하고 싶다. 언젠가는 고양이 마을도 만들고 싶고.

두 사람이 사실 ‘고양이가 아니냐’는 루머가 있다. (웃음) 이제 그만 서로의 정체를 밝혀보면 어떨까.
김명철: 나 원장님이 고양이라면 왠지 아메리칸 숏헤어일 것 같다. 활달하고 거대하고…… 또 거대하고…… (웃음)
나응식: 현재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데, 거기 댓글에서도 많은 분들이 나를 거대묘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김 원장님은 샴 같다. 얼굴이 까무잡잡하기도 하고, 성격도 사근사근해서. 샴이 알고 보면 태국 왕족들이 키우던 고양이다. 좀 왕자 같은느낌 아닌가? (웃음)
김명철: 태국 왕자라니 영광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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