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날]무인주문기 앞에서 까막눈이 됐다

머니투데이 박가영 기자 | 2018.12.23 06:00

[디지털 오지(奧地)-①]무인화 확대로 '디지털 소외' 현상 심화…"도우미 등 과도기적 인력 필요"

편집자주 | 월 화 수 목 금…. 바쁜 일상이 지나고 한가로운 오늘, 쉬는 날입니다. 편안하면서 유쾌하고, 여유롭지만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은 쉬는 날, 쉬는 날엔 '빨간날'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의 한 패스트푸드 전문점. 60대 고객이 '셀프 오더 타임'에 무인 주문기로 주문을 넣다 주변인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 /사진=박가영 기자
디지털 시대의 그림자가 짙다. 디지털 변혁이 가속하며 정보 기술에서 소외되는 계층이 많아졌다. 정보통신의 발달이 오히려 또 다른 장벽을 만드는 상황. 초고령 사회 진입을 눈앞에 둔 지금 '디지털 소외'를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디지털 소외 현상은 노년층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23일 한국정보화진흥원이 발표한 '2017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55세 이상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일반 국민 평균수준 100%)은 58.3%에 불과했다. 특히 70대 이상은 25.1%로 현저히 낮은 수준을 보였다.

디지털 격차는 자연스레 소비의 세대 차로 이어진다. 무인화(無人化) 흐름이 빨라지며 키오스크(무인주문기) 등 기계 조작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들이 늘고 있는 것. 키오스크와 같은 무인정보 단말기는 매장 직원의 손을 거치지 않고 주문과 결제가 이뤄지는 전자 주문 시스템이다. 키오스크는 비대면 거래를 선호하는 젊은층에겐 환영을 받지만 노년층의 소비를 주저하게 만든다.

외식업계는 무인화 흐름이 거센 곳 중 하나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2019 외식소비 트렌드' 키워드로 '비대면 서비스화'를 선정했다. 농림부는 무인화·자동화의 확산에 따른 키오스크, 전자결제 등의 발달로 외식 서비스의 변화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패스트푸드 전문점 키오스크를 도입에 가장 적극적이다. 롯데리아의 경우 전체 매장의 반이 넘는 825곳에서 무인계산대 1200여대를 운영 중이다. 맥도날드 역시 전국 440여개 매장 절반가량에 무인주문 시스템을 도입했다. KFC와 버거킹도 올해 안에 키오스크를 전 직영점에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 같은 변화에 노년층은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일상과 가까운 만큼 소외도 크게 느낀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난 박모씨(63)는 키오스크 앞에 한참을 서 있다 다른 손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박씨는 "주문받는 직원이 없는 시간이라고 이 기계로 주문을 넣으라고 했다. 혼자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된다. 못 배운 사람은 밥도 못 시켜 먹는 세상이 된 것 같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식당뿐만 아니라 영화관, 마트, 기차역 등 업계 곳곳에서 키오스크가 자리 잡으며 디지털 소외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직장인 고모씨(59)는 "키오스크와 스마트폰 이용법을 잘 몰라서 영화관에 가서 직접 표를 끊는 편이다"면서 "그런데 요즘 기계는 늘고 표를 끊어주는 직원은 줄어서 대기 시간이 너무 길다. 기계 이용법을 물어보고 싶어도 직원들이 다 바빠 보여서 설명해달라고 할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

영화관 아르바이트생 임모씨(25)는 "무인 발권기로 인한 불편함이 크다. 이에 대한 항의(혹은 욕)를 듣는 건 기계가 아닌 아르바이트생들의 몫"이라며 "기계에 익숙하지 않아 점차 발길을 끊는 소비자가 많아질 것 같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무인화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지만 디지털 소외 계층을 위한 배려와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년층의 디지털 소외 현상은 사회 문제"라며 "무인화 시대로의 전환기에서 이들의 적응을 돕기 위한 접근법을 마련해야 한다. 각 매장별로 지역, 고객 등의 특성을 고려해 키오스크 주문을 돕는 인력을 배치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고 설명했다.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키오스크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정보 취약계층이 편의성을 이유로 차별을 겪어서는 안 된다"며 "정부 차원의 무인 단말 설치 현황, 접근성 보장 여부 등에 관한 전반적인 조사를 실시하고 자세히 분석해 정책에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스트 클릭

  1. 1 "건드리면 고소"…잡동사니로 주차 자리맡은 얌체 입주민
  2. 2 [단독]음주운전 걸린 평검사, 2주 뒤 또 적발…총장 "금주령" 칼 뺐다
  3. 3 "나랑 안 닮았어" 아이 분유 먹이던 남편의 촉…혼인 취소한 충격 사연
  4. 4 "역시 싸고 좋아" 중국산으로 부활한 쏘나타…출시하자마자 판매 '쑥'
  5. 5 "파리 반값, 화장품 너무 싸"…중국인 북적대던 명동, 확 달라졌다[르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