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감 함부로 찍지 마라' 깨우쳐준 '톨죽 인감' 사건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 2018.12.19 05:00

[the L][친절한 판례씨] 이모들이 갑자기 찾아와 인감 요구 어영부영 찍어주고 후회…문서 행사했다면 '사문서위조' 가능성





인감을 아무데나 찍으면 안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최근 이를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는 사건이 생겨 온라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다. 이른바 '톨죽 인감' 사건이다.

'톨죽마시쪙'(이하 톨죽)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인터넷 사용자의 사연이다. 톨죽은 거의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자기 상황을 중계하는 글을 올렸다. 그가 게시한 글에 따르면 지난달 말쯤 갑자기 이모들이 톨죽을 찾아와 인감을 요구했다고 한다.


톨죽은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어머니는 돌아가셨다"며 "(이모들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명의이전을 해야 하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대리로 내가 찍어야 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불안한 마음이 들어 인감을 잃어버렸다고 둘러댔지만 이모들은 새로 인감을 파러 가자고 졸랐다. 결국 톨죽은 이모들의 끈질긴 요구에 새 인감을 파고 이모들이 내민 서류에 인감을 찍었다.

문제는 이 서류가 완성되지 않은 '백지'였다는 점이다. 톨죽이 설명한 글에는 이 서류에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 지 구체적으로 설명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상속과 관련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서류가 어떻게 행사될 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함부로 인감을 찍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중계 글을 지켜보던 현직 변호사 2명이 톨죽에게 접촉해 이같은 문제점을 알렸다. 톨죽은 그제야 심각성을 깨닫고 이모를 찾아가 인감이 찍힌 서류를 돌려받고 파기했다.


만약 톨죽의 이모들이 인감이 찍힌 서류를 돌려주지 않고 행사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대법원 판례(91도2815)에 따르면 이모들은 사문서위조·행사 혐의로 형사절차를 밟게 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 판례의 당사자인 A씨는 충북 지역의 한 산지에서 골재채취사업을 하려 했다. 그러려면 채취장 주변에 있는 분묘 7개의 소유자를 찾아 허가동의서를 받아야 했는데, 소유자가 누구인지 찾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에 A씨는 '꼼수'를 생각해냈다.

A씨는 전혀 다른 곳에 분묘를 소유하고 있는 B씨를 찾아 B씨의 분묘에 전혀 피해가 없을 테니 동의서 양식을 갖춘 백지에 인감을 찍어달라고 요구했다. B씨는 A씨 말만 듣고 백지에 인감을 찍어줬다. 이후 A씨는 B씨가 마치 채취장 주변 분묘의 소유자인 것처럼 문서를 꾸며 관련 기관에 제출했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A씨가 받은 동의서는 피해자들이 승낙한 내용과 다른 내용"이라며 "A씨는 피해자들이 승낙한 문서가 아닌 문서를 사용한 셈이 되고, 피해자들의 의사에 반해 동의서를 작성한 것이 돼 사문서를 위조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모들이 톨죽의 인감이 찍힌 서류를 부동산 매매에 행사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대법원 판단을 톨죽의 사례에 적용한다면 이모들은 톨죽에게 문서내용을 알려주지 않고 인감을 받아낸 뒤 톨죽의 의사에 반해 문서를 행사한 것이 된다. 따라서 이 판례와 마찬가지로 사문서위조·행사죄를 적용받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톨죽이 부동산 매매계약 무효를 주장하면서 부동산 매수인을 상대로 소송을 건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모들이 사문서위조로 형사절차를 밟게 돼도 매매계약을 무효로 돌리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게 변호사들의 진단이다. 톨죽의 주장이 유효하려면 인감을 날인했을 때 서류가 백지였음을 먼저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빈칸이 다 채워진 종이를 들고서 '사실 이게 백지였다'라고 주장해 재판부를 설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변호사들은 입을 모았다.

또 백지서류 주장이 일단 통한다고 해도 '표현대리'의 법리 때문에 톨죽이 패소했을 확률이 높다. 표현대리는 'C가 D에게 대리권을 준다는 의사표시를 한 경우, D와 제3자 사이에 있었던 법률행위에 대해서도 C가 책임져야 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민법 제125조에 규정돼 있다. 톨죽 사례에 빗대면 무슨 일이 벌어지든 이모들에게 넘겨준 대리권 한도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톨죽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다.
톨죽 측에서 표현대리 법리를 뒤집어 이기려면 제3자의 악의나 과실을 증명해야 한다. 즉 톨죽과 이모들 사이에 있었던 '백지 인감' 사건을 부동산 매수자 측에서 알았거나, 알 수도 있었는데 충분히 확인하지 않았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매수자 측에서 "남도 아니고 이모들이 대리권을 받았다면서 인감을 보여주는데 안 믿을 수 있냐"는 식으로 대응하면 톨죽 입장에서 반박하기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어찌됐든 인감은 함부로 찍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고 조언했다.



◇관련조항


형법


제231조(사문서등의 위조ㆍ변조) 행사할 목적으로 권리ㆍ의무 또는 사실증명에 관한 타인의 문서 또는 도화를 위조 또는 변조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민법

제125조(대리권수여의 표시에 의한 표현대리) 제삼자에 대하여 타인에게 대리권을 수여함을 표시한 자는 그 대리권의 범위내에서 행한 그 타인과 그 제삼자간의 법률행위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그러나 제삼자가 대리권없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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