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 대한 관심과 잔소리 사이…우아한 사랑을 유지하려면

머니투데이 권성희 금융부장 | 2018.12.15 07:31

[줄리아 투자노트]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나름 산전수전도 겪었다는 생각이 들어 좀 초연해지고 싶었다. 작은 일 하나하나에 좋아했다 화내다 하지 않고 너무 욕심 부리지도 않고 한결 같은 고요한 마음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남편이 약속했던 일을 하지 않아도 ‘그러려니’ 하고 갈등 상황에선 ‘내가 손해 보고 말지’라는 마음으로 넘어가려 했다. 이런 내 모습이 조금 뿌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잔잔하려 애쓰는 내 마음에 마구 파문을 일으키는 단 한 사람이 있으니 고등학생 아들이다. 독서실을 다니겠다고 해서 한달 등록을 해줬더니 일주일도 안 갔다. 안 다니니 이 달엔 등록하지 않으려 했더니 한번만 더 믿어 달래서 또 등록해줬다. 딱 5일 갔다. 그나마 간 날도 한시간만 있다 왔다. 늦게까지 독서실에 있으면 배 고프다고 카드를 달래서 줬더니 독서실엔 가지도 않으면서 뭘 그리 사 먹는지 휴대폰에 결제 알림이 수시로 뜬다.

이 정도면 마음이 요동치는 것을 억누르는데도 한계가 있다. “독서실 주인이 너 여친(여자친구) 부모님이니? 왜 다니지도 않는걸 돈을 갖다 바쳐”로 시작된 나의 분노 폭발은 “독서실도 안 다니면서 작작 좀 사 먹어”를 거쳐 “내가 아예 너한테 관심을 끊고 살아야 속이 편하지”로 끝이 났지만 한번 격랑이 인 마음은 잘 가라앉지 않았다.

이게 문제다. 아들이란 존재는 불붙는 관심을 끊을래야 끊을 수 없다는 것. 하지만 관심을 가지면 마음이 격동되면서 잔소리만 하게 되고 서로 마음만 상한다는 것. 아들에 대해서도 열 내지 않고 잔소리하지 않고 고요하고 우아하게 관심을 기울일 순 없을까.



첫째, 관심은 듣는 것이고 잔소리는 말하는 것이다=부드럽고 온화한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는 데서 시작한다. 상대방이 하고 싶어 하는 얘기를 온전히 집중해서 들어 그 마음을 알아주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아파해주는 것이다. 이는 상당히 힘들고 때론 지겨워 인내를 요하는 일이다. 상대방이 하는 얘기에 내가 관심이 없을 수 있고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잘 듣는다는 것은 나의 생각과 판단, 욕구 등을 제쳐 두고 상대방의 입장이 되려 시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남의 말을 귀로는 들으면서도 마음으로는 끊임없이 상대방을 판단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면 언제 말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빨리 이 지겨운 대화를 끝내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

자녀와의 대화가 결국 잔소리로 끝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아이는 말하는데 부모의 마음은 아이에게 빨리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해서 아이가 지키도록 하는데 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실컷 얘기했는데 부모의 결론은 “그러니까 고생하지 않으려면 공부 열심히 해” 같은 훈계나 잔소리이고 아이는 더 이상 부모와 말하기가 싫어진다.

둘째, 관심은 겸손함이고 잔소리는 판단이다=잔소리도 관심이 있어야 한다. 상대방이 잘 되라고 자기 경험과 생각을 말해주는 것이 어쩌다 잔소리가 되는 것뿐이다. 사랑하기에 잘 이끌어주려는 관심이 왜 ‘꼰대’의 잔소리가 되는 것일까. 이는 자기 성찰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누군가가 잘 되길 바래서 뭔가 말한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에게 뭔가 부족하다는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부모는 자기가 더 오래 살았고 아이를 낳아 양육하고 있다는 이유로 신처럼 늘 위에서 아이를 내려다 보며 판단하고 가르치려는 성향이 있다. ‘내 말만 들으면 다 잘되니 넌 따르기만 해’라는 오만함이 있다. 이래선 나의 말이 아이에게 거부감만 줄 뿐이다.

나의 관심이 아이에게, 상대방에게 감동이 되어 설득으로 나아가려면 내가 상대방의 마음과 상태를 잘 파악하고 있는지, 상대방의 결정이 맞고 내가 생각하는게 틀린 것은 아닌지, 내가 이런 말을 하는게 정말 상대방을 위해선지, 아니면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 것이 따로 있는지,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이러한 겸손한 자기 성찰이 없는 말은 내가 아무리 상대를 위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교만한 판단일 뿐이다.

셋째, 관심은 너의 때를 기다림이고 잔소리는 나의 때를 강요하는 것이다=겸손하게 나를 성찰해본 결과 이 얘기는 꼭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도 말할 때가 있다. 어떤 상황에서는 아무리 진심 어린 겸손한 조언도 상대방에게 안 들리고 반감만 줄 때가 있다. 관심이란 상대방을 지켜보며 가장 말하기 좋은 때를 기다려 말하는 것이다. 반면 상대방의 상태와 관계없이 내가 말하고 싶을 때 말하면 잔소리가 된다.

이런 점에서 진정한 사랑에 기반한 관심은 상대를 지켜보며 얘기를 들어주고 마음 상태를 파악해 이해해주며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땐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가 들을만한 때를 기다려 말해주는 것이다.

독서실 문제로 아들에게 혈기를 부린 다음날, ‘이대로 진짜 옆집 아들처럼 대하는게 편하겠다’는 생각과 ‘사랑하는 아들인데 내가 사과해야지’ 하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을 때, 돈 달라고 할 때 외엔 전화하지 않는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왜?” ‘이 상황에서 용돈 달라는 걸까’란 생각에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는데 허를 찌르는 대답이 돌아왔다. “미안해서.” “뭐가 미안해?” “다.” “구체적으로 말해. 추상적인 건 감동이 없어.” “나 때문에 엄마 좋아하던 동네에서 이사온 거, 엄마 원하는 대로 공부해주지 않는 거, 그리고 독서실 일은 진짜 미안해.”

가라앉아 있던 마음에 다시 파문이 일었다. 이번엔 감동의 파문이다. 내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이 남자를 어쩌면 좋을까. 이 아들에게 난 언제쯤 잔잔한 마음으로 변함없이 온화한 관심을 기울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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