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형 일자리엔 아무도 단식투쟁 안한다…방관하는 정치인들

머니투데이 최성근 이코노미스트 | 2018.12.17 06:20

[소프트 랜딩]1조원도 안되는 사업 하나 추진 못해, 서로 숟가락만 얹으려는 한심한 처사

편집자주 | 복잡한 경제 이슈에 대해 단순한 해법을 모색해 봅니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
광주형 일자리가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지난 6일 협약체결 조인식을 앞두고 단체협약 유예 조항을 둘러싼 노사 간의 이견이 끝내 좁혀지지 않으면서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이날 열리기로 한 조인식에 참가할 계획이었으나 결국 헛물만 켜고 말았다.

이를 두고 한편에서는 현대차 노조의 이기주의를 비난한다. 평균 임금이 9000만원이 넘으면서 광주에 3500만원짜리 일자리가 생기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결국 자신들의 밥그릇만 지키겠다는 극단적인 노조 이기주의 아니냐는 것이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전 원내대표는 "사회적 고통 분담도 하지 않겠다, 일자리나누기도 하지 않겠다는 민주노총이 기득권 유지에만 혈안이 돼 떼로 몰려다니며 집단폭행이나 일삼는 조폭권력을 행사하는 단체로만 인식될 것"이라고 노조를 비난했다.

반면 어떤 이들은 현대차가 고작 500억원 남짓 투자하면서 5년간 임금 동결과 단체협약 유예 조항을 고집한 것은 현대차의 지나친 요구라고 말한다. 또한 1996년 아산 공장 설립 이후 국내에서 하나도 공장을 짓지 않은 채 해외에서 13개의 공장을 세우고는 한전 부지를 무려 10조원을 들여 구입한 현대차가 무슨 국산 메이커냐고 비난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일리있는 이야기고 현대차와 노조 모두 비난받을 만한 점들이 있다.

하지만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애초에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추진할 당시부터 노사 양측의 이견이 좁혀지기 어려우리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즉 광주형 일자리는 태생부터 현대차도 원하지 않았고 노조는 더더욱 원하지 않았던 사업이다.

그랬던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광주시가 나서고 정부가 밀면서 구체화됐고 임금 및 근로시간에 대해 연봉 3500만원, 주 44시간 근무 그리고 5년 동안의 임단협 유예를 조건으로 현대차가 사업의향서를 제출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국내 경차 수요가 연간 13만대에 불과하고, 자체 경차 생산시설(연간 40만대)도 남아도는 마당에 연간 10만대를 추가 생산한다는 것은 현대차 입장에서는 과잉에 과잉을 더하는 꼴이다. 아무리 500억원에 불과하다 해도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성장이 부진한 상황에서 이런 전망없는 사업에 어느 정신나간 기업가가 투자를 하겠는가?

미덥지 않긴 현대차 노조도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일자리가 불안한데 광주형 일자리가 생기면 임금은 절반도 안되는 공장에 생산물량까지 빼앗길 판이니 과연 어느 노동자가 수용할 수 있을까? 게다가 노동자에게 생명줄과도 같은 임금 단체협상을 유예하라는 것은 그동안 숱한 쟁의를 통해 얻어낸 생존권을 포기하라는 요구와도 같다. 이는 울산과 광주의 입장이 서로 반대였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실 여기서 정작 비난받아야 할 대상은 현대차나 노조가 아니라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와 정치인들이다. 애초부터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두고 평행선처럼 좁혀지지 않을 양자 간 이해관계를 조정해서 사업을 추진할 책임은 바로 광주시, 정부, 국회의원들에 있었다.

하지만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좌초 직전까지 갔음에도 민생을 최우선으로 챙기겠다던 정치권에서는 이 사태를 책임지려는 국회의원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자신들의 밥그릇이 달린 선거구제 조정 이슈에는 필사적으로 단식투쟁까지 하면서 정작 국민들의 밥그릇과 관련된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 대해서 단식은 커녕 먼 발치에서 현대차와 노조만 비난했다.

정부도 그동안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노사민정' 대타협을 통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모델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고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키며 국민적 이슈로 부각시켰다. 그러나 장밋빛 환상을 내세우는 데만 급급했지 정작 현대차나 노조를 상대로 책임있게 나서서 사업을 추진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최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광주시는 ‘광주형 일자리’를 위한 ‘완성차공장 사업성 분석 및 경영전략' 연구 용역 입찰을 진행 중인데 연구 결과가 나오기까지 1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그동안 기본적인 사업성 분석조차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밀어부쳐왔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게다가 사업의 주체인 광주시는 가장 핵심적인 쟁점 사안이었던 단체협약 유예 사안에 대해 노동계와 현대차 양측을 오가면서 마치 협상이 다 이뤄진 것처럼 '이중플레이'를 하는 바람에 불신과 혼란만 자초했다.(☞관련 기사 : "이제야 사업성 분석...'광주형 일자리 市 이중플레이에 좌초")

특히 단체협약 유예 문제는 노사가 당장 합의를 이뤄낸다 하더라도 현행법에 저촉됨은 물론 향후에 단체협약에 의해 근로계약 자체가 무효가 될 수 있기에 반드시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하지만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그동안 아무런 법적인 검토조차 없이 그저 협상 타결에만 매달렸으니 사업이 진척될 리 만무하다.

결국 정치권이나 정부 모두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성공하면 서로 숟가락 얹고 자화자찬하는 잿밥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정작 이해당사자인 현대차와 노조를 설득하기 위해 비난과 희생을 감수하면서 사업을 추진할 능력과 의지가 전혀 없었던 셈이다.

이렇게 무능과 무책임으로 방관할 문제였으면 애초부터 국정과제라느니 새로운 시대의 상생형 일자리 창출모델이라느니 하면서 마치 광주지역과 국가 경제의 사활이 걸린 사업인 양 내세우지 말았어야 했다.

광주시 당사자들도 마찬가지다. 그토록 지역경제가 침체되고 광주시민의 사활이 걸린 사업이라면 삭발을 하던 단식을 하던 촛불시위를 하던 광주시와 정치권을 향해 목소리를 높여도 부족할 판에 처음부터 애꿎은 현대차와 노조만 손가락질하면서 강건너 불구경만 했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수조원 수십조원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고작 7000억원 짜리 사업이다. 그런데 정부와 정치권은 1조원도 안되는 사업을 어쩌지도 못하고 상생모델이라는 명분만 강조하면서 네탓내탓만 하고 있으니 참으로 무능하다 못해 한심스러울 뿐이다.

최근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좌초 위기에 처하니 일각에서는 다른 지역을 공모하겠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의 무능과 무책임이 고쳐지지 않는 한 다른 어느 지역을 공모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과정이 반복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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