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게 빨갱이라면 저 맞습니다”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 2018.12.09 15:09

KBS '오늘밤 김제동' 단장 인터뷰 논란…김제동의 '함께' 철학, 이 방송분에서 구현됐나


방송인 김제동이 오프라인에서 보여준 수 많은 토크쇼는 대개 재밌다. 걸출한 입담에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무궁무진한 에피소드는 ‘해학의 미학’에 정곡을 찌르는 키워드로 듣는 이를 쉽게 감흥 시킨다.

솔직한 것도 그의 장기 중 하나다. 그는 수많은 강연 영상에서 자신을 향해 퍼붓는 ‘종북 좌파와 빨갱이’ 논란에 대해서도 이렇게 얘기한다.

“저는 강남에 33평 아파트 있고요, 전셋집도 하나 있습니다. 차도 대형차 쥐색 타고 다닙니다. 그래도 우리(잘 사는 사람, 못 사는 사람)는 ‘함께’ 살아야 합니다. 하나의 목소리만 나올 수 있는 사회, 그게 빨갱이 나라예요. 장미가 진달래를 보고 욕하지 않고 진달래가 장미를 보고 질투하지 않듯 다양한 목소리가 담긴 사회가 민주주의 아닌가요?”

쌍용자동차 가족을 위한 ‘명진스님’ 설법회에서도 그는 ‘함께’라는 키워드를 강조했다. “이 미키마우스(김제동)에게 매번 바늘로 찔러대는데, 그래도 가슴 속에 늘 생각하는 건 ‘함께 가야 한다’는 겁니다. 한번은 어머니가 술 먹고 잠든 제게 귀엣말로 ‘아야, 니 빨갱이 아니지’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교회에 가서 그 소리를 매일 듣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속으로 그런 대답을 해 드리고 싶었어요. ‘권력자가 힘으로 누르는 게 빨갱이인지, 같이 살아가자고 외치는 사람이 빨갱이인지 어머니에게 묻고 싶습니다. 만약 그런 게(같이 살자는 외침) 빨갱이라면 저 빨갱이 맞습니다.’ 힘 있든 없든 같이 살자, 함께 웃고 살자 그게 제가 원하는 삶이에요.”

그가 말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그에겐 이상하게 ‘종북좌파’ 이미지가 배어있다. 강연에서도 그는 “북한 가라면 누가 가겠는가”라며 “나부터도 농협에 넣어둔 예금 때문이라도 안 간다”고 했고,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향해서는 “처음에 텔레토비인 줄 알았다”며 “인민들은 굶어 죽는데, 혼자 살쪘다”는 농담(?)을 스스럼없이 내뱉기도 했다.

종북좌파의 본질과 멀지만, 그의 진보적 사상과 태도 때문에 그를 ‘좌’에 가깝다고 느끼는 일반인이 적지 않다. 공개 대중 강연에선 예능인이 내뱉는 개인 생각인지, 정치인이 보여주는 사상 전파인지 헷갈릴 만큼 그의 말은 어느새 무거운 쇠붙이가 되어 듣는 이의 뇌리에 깊이 박힌다.

그래서 그의 말과 행동은 신중해야 한다. 그가 진짜 종북 좌파가 아닌데, 그에게 그런 프레임이 씌워졌다면 그가 어떤 균형감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할 것인가에 더 몰두해야 한다는 의미다. 경제와 정의의 문제에서 보수는 정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고, 진보는 경제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태도와 비슷하다고 할까.

최근 KBS ‘오늘밤 김제동’이 다룬 김정은 위인 맞이 환영단장 인터뷰는 그런 점에서 논쟁의 불씨를 확대한 측면이 적지 않다. 사회자 김제동이 이 방송에서 한 역할은 그리 크지 않다.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한 것도, 보수·진보 패널의 발언에 무게를 실은 것도 없기 때문이다. KBS 제작진의 말처럼 김제동은 ‘중립’을 지킨 것으로 보일 만하다.

문제는 이 아이템을 ‘기획 단계’에서 여과 없이 다뤘다는 것이다. 김제동이 자신의 이름을 건 공영방송에서 이 아이템이 준비됐을 때, “이건 편파적이거나 잘못 전달될 수 있으니” 단장 인터뷰보다 뉴스 자료 화면으로 대체해 ‘객관적’으로 다가가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피력할 수 있었을 텐데, 단장 인터뷰를 굳이 선택해 시청자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프로그램 제작진이 직접 나서 한 인터뷰라도, 기획단계에서 김제동이 좀 더 신중한 접근과 해석을 할 필요가 있지 않았느냐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종북좌파’로 몰리는 그에 대해 “그럼 그렇지”라는 또 다른 확증편향에 종지부를 찍는 여론을 형성한 꼴이 됐다.

방송에선 “김정은의 열렬한 팬” “나는 공산당이 좋다”는 단장의 발언이 희화화나 재미 정도로 해석하는 분위기였지만, 시청자들이 받은 충격은 그 이상이었다.

결국 방송 후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KBS 공영노동조합은 “공영방송 KBS가 보도할 내용이 맞는가. 마치 북한 중앙방송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고 비판했다.

자유한국당 등 야권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박성중 한국당 의원은 “국민이 아니라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하기로 작정한 것 같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모든 국민이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정말 쌍수로 환영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김 단장 발언을 내놓았다”고 주장했다.

김제동은 그간 민주주의의 다양성에서 보면 어떤 주장이라도 방송에 나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단장 인터뷰 역시 그 주장의 일환이다. 하지만 반세기 넘는 기간 쌓아온, 체제가 다른 북에 대한 불안한 시각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하루아침에 달라진 북한 지도자에 대한 찬양 등을 신중한 접근 없이 ‘주장의 한 조각일 뿐’이라는 시각으로 내보낸 것은 다양성의 합리적 근거를 넘어 갈등과 반목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종북좌파’의 진정한 정의를 되묻고 ‘함께’를 외쳤던 김제동은 기획단계에서 거르지 못한 ‘방관의 자세’로 단장 인터뷰를 ‘허락’한 셈이 됐고, 묵인의 방송은 결과적으로 ‘함께’가 아닌 ‘분열’을 조장했다.

“만약 그런 게(같이 살자는 외침) 빨갱이라면 저 빨갱이 맞습니다. 힘 있든 없든 같이 살자, 함께 웃고 살자 그게 제가 원하는 삶이에요.” 그가 한 말을 다시 곱씹는다. 그리고 되묻고 싶다. 함께 웃고 사는 모습을 구현했는지, 또 다른 분열의 옥상옥(屋上屋)을 구현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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