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목(同想異目)] 위력과 권력, 폭력의 이중성-2

머니투데이 이진우 더벨 부국장 겸 산업1부장 | 2018.12.05 04:34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교실 뒤 양동이에 있는 물에 늘 대걸레자루를 담가놓았다. 물 먹은 이 자루는 ‘훈육’의 상징이다. 엉덩이나 허벅지를 맞으면 척척 달라붙는다. 한두 대만 맞아도 집에 가서 보면 검은 피멍이 들었다. 엄연한 폭력이지만 그때는 그냥 내가 잘못했으니 맞았다고 생각했다. 집에 가서 부모님께 일러봤자 오히려 더 혼날게 뻔하니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다.

고교 시절 한 선생님은 친구를 교실 앞으로 불러 무자비하게 아구창을 날렸다. 그 친구가 무얼 잘못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쉬지 않고 주먹과 손바닥을 날렸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다음이다. 맞은 친구에게 침을 한번 뱉어보라고 하더니 “튼튼해서 맞아도 입에서 피도 안 난다”며 더 때렸다. 고개를 숙이고 숨죽이며 지켜본 이 장면이 30여년 지난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그땐 그냥 무서웠다. 그 ‘폭력’이 나쁘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맞지 말아야지 생각한 게 전부였던 것 같다. 선생님이 학생을 몽둥이로, 손으로 때리는 게 이상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심지어 어떤 이는 학창 시절 가장 많이 때린 선생님을 오히려 더 기억하고 존경한다. 자신을 올바른 길로 인도했다고.

강도는 점점 약해졌지만 대학 시절에도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에게 무서운 눈으로 분필을 날린 교수님이 있었다. 사회에 나와서도 옅은 폭력은 존재했다. 주로 술자리였던 것 같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잘못’을 더 탓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야 마음이 편안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조직생활의 필요악이라는 잠재의식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한 웹하드업체 오너의 믿기 힘든 폭력과 엽기적 행태를 보면서 학창시절 강렬했던 기억들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내가 다닌 학교, 몸담은 조직은 그래도 양호한 편이었다는 위안과 함께 쓴웃음이 나온다. 얼마 전 사표를 제출한 모 기업 임원에게 그만둔 이유를 묻자 “아시잖아요. 우리 회장님”이란 답이 돌아온다. “그래도 회장님이 밖에서 얘기 나오는 것처럼 때리지는 않는다”며 웃었다. 맞아서, 혼나서 그만둔 건 아니라는 자위인 듯싶었다. 막말은 기본이고 도저히 해내지 못할 일을 시키곤 못하면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해댄다고 소문난 곳이었다.


2018년 무술년 한 해 유난히도 ‘갑질’ ‘폭력’이란 단어가 많이 등장했다. 연초 대기업 신년사에서 쏟아져 나온 세대교체, 책임경영, 미래성장, 혁신 등 회장님들의 익숙하고 세련된 청사진은 다양한 패러디와 함께 조롱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조직생활에서 윗사람의 폭력은 ‘위력’(威力)과 ‘권력’(權力)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사람의 의사를 제압할 수 있는 유무형의 힘과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이 바탕이다.

위력은 잘 보이지 않고, 권력은 위험하며, 폭력은 그냥 미친 짓이라고 했다. 돌이켜보니 학창시절 그 선생님의 주먹과 몽둥이가 향한 곳은 내가, 그 친구가 아니라 학생들 전부였다. 회장님의 막말, 폭력 역시 당하는 특정 당사자가 아니라 휘하의 모든 이를 향하고 있다. ‘너도 이러면 당한다’는 경고다. 일부의 일탈이지만 감정이입으로 다 같이 고통받는 현실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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