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더 늙고 싶어요" 나이 올려달라는 장년층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안채원 인턴기자, 송민경 (변호사)기자, 김영상 기자, 서민선 인턴기자 | 2018.12.03 05:50

[나이의 사회학](종합)

편집자주 | 나이는 숫자 그 이상이다. 한살의 차이로 신분과 혜택이 갈린다. '고령사회'를 맞아 노인 복지혜택이 확대되면서 한 살이라도 높여 수혜를 입고자 하는 사람들까지 나타나고 있다. 인구구조와 정책변화가 불러온 새로운 사회현상을 들여다본다.



[단독]"더 늙게 해 주세요" 연령 정정신청 급증



[나이의 사회학①] 과거 "나이 줄여달라" 일변도에서 변화…대부분 저소득 고령층

/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1958년생 남성입니다. 부친이 형님을 5년 늦게 출생신고하시는 바람에 저도 2년7개월 늦게 1960년생으로 출생신고됐습니다. 사회생활하는 동안 겪은 억울함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더군다나 국민연금 수령시기도 늦어진다고 하니 정당한 생년월일을 찾고 싶습니다." (법무법인 법승 상담사례)

최근 60대 장년층들이 법원을 찾아 자기 나이를 올려 달라고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과거 정년 연장을 위해 나이를 낮춰 달라는 요청이 거의 전부였던 것과 대조된다. 각종 연금 등 사회보장 혜택을 조금이라도 빨리 받기 위해서다.

◇"연금 일찍 받으려고"

28일 대법원의 ‘사법연감’ 통계에 따르면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신청 사건은 2011년 이후 거의 매년 증가 추세다. 2011년 9430건이었다가 2014년 1만300건으로 제도 시행 후 4년 만에 1만건을 넘더니 지난해 1만1422건까지 늘었다.

등록부에 적힌 여러 내용 중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달라는 것이다. 이 가운데 출생연도를 바꿔달라는 경우 그 전까지는 50대 후반 층이 정년퇴직을 앞두고 나이를 내려달라고 요구하는 게 사실상 전부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나이를 올려달라며 법원을 찾는 60대 초반 장년층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판사들은 말한다. 주로 소득이 적은 빈곤층으로, 연금 등 사회보장 혜택을 빨리 받기 위해서라고 한다. 등록부 정정 신청 사건의 증가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등록부 정정 신청을 전담하는 한 판사는 “경제적 사정은 정정에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신청서 내용으로 짐작해볼 때 재산이나 소득이 낮은 경우가 다수인 듯하다”며 “대부분 ‘사회보장 혜택을 받기 위해서’라는 글을 사유로 써넣는다”고 했다.

정정 신청에 드는 비용은 법무사 보수까지 고려하면 대체로 30만원이 넘는다. 범죄에 악용될 우려가 있는 탓에 신청 허가도 쉽게 나오지 않는다. 이런 부담을 감수하고 법원을 찾는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보장에 의존하고 싶은 저소득층의 욕구가 크다는 의미다.

◇"노인빈곤이 문제…고령자, 노동시장에 더 머물게 해야"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적 상황 때문에 연금 수급을 조금이라도 빨리 하고자 할 수 있고, 연금재정 악화를 우려해 미리 받아놓으려하는 판단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설 교수는 “(장년층이) 연금이 안 나올 정도로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라며 “그래서 사회보험에 의존하면서 비정규직 노동 등으로 가계를 보충해 나가려는 것 일수도 있다”고 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복지정책이 노인빈곤을 해결하지 못해 나타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윤 위원은 “기초연금을 30만원으로 늘려도 노인빈곤율은 여전히 40%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며 “노인 관련 예산을 많이 쓰는데, 제대로 목표 대상을 설정하는 건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윤 위원은 “특히 연금의 경우 ‘낸 것보다 많이 받는’ 쪽으로 가다보니 안정적이고 좋은 직장을 오래 다닌 사람들이 사실상 독식하게 된다. 근로기간에 양극화됐던 소득이 노후기간에 더 벌어지는 것”이라며 “취약계층, 저소득층을 위한 파이는 더욱 적어지고 사회보장 제도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윤 위원은 해결책을 복지정책보다는 노동정책에서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윤 위원은 "스웨덴, 노르웨이는 기초연금을 폐지했고 핀란드도 사실상 없앴다. 저소득층에게 세금을 투입하는 제도는 줄이고 대신 국가에서 설정하는 최저소득을 보장해주는 쪽으로 간다는 것"이라며 "고령근로자들이 어떻게 노동시장에 더 머물게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설 교수는 노인의 기준연령을 현행 65세보다 높이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하면 정년퇴직 시점이 늦춰져 고령근로자의 소득을 보장하고 연금재정에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설 교수는 "연금을 받는 시기가 늦춰져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청년층의 취업기회가 줄어들어 사회갈등이 격화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종훈 기자



'황혼의 선물'…65세부터 받는 혜택 총정리



[나이의 사회학 ②] 기초연금부터 시설급여까지···일자리도 지원

/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다음은 65세가 되면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이다. 기초연금, 돌봄서비스, 장기요양급여, 생계형 공공일자리 지원 등 주로 저소득층 어르신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다. 받일 수 있는 금전적 이득도 그다지 크지 않다.

이같은 적은 혜택을 보기 위해서라도 나이를 올리려는 시도가 늘어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더 살기 어려워졌다는 각박한 현실을 반영한다. 우리 시대의 씁쓸한 자화상이다.

◇기초연금

가장 먼저 돈이다. 만65세 이상이면서 소득으로 인정된 금액이 선정기준액 이하면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다. 올해 기준으로 단독가구는 131만원, 부부가구는 209만6000원 이하면 수급 대상이다. 단독가구에겐 월 최대 25만원, 부부가구에게는 월 최대 40만원씩이 지급된다. 이외 기준에는 속하지만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가구에는 최소 2만5000원부터 25만원까지 차등 지급된다.

◇돌봄서비스

도움이 필요한 만65세 이상의 어르신이면 '노인돌봄 기본·종합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우선 노인돌봄 기본서비스는 정기적으로 안전을 확인해주고 생활 교육 등을 지원한다. 소득 및 건강 수준이 낮아 복지서비스가 필요한 경우 등 열악한 환경에 처한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다. 다만 유사한 복지 서비스를 이미 받고 있는 경우라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노인돌봄 종합서비스의 경우 만65세 이상 어르신 가운데 가구 소득, 건강상태 등을 고려해 지원 대상을 선정한다. 노인장기요양등급 외 A,B에 속하고 가구소득이 기준 중위소득 160% 이하일 경우다. 노인돌봄종합서비스 대상 가구로 선정되면 식사, 세면, 옷 갈아입기, 화장실 이용, 목욕 보조 등의 신변 활동을 지원받을 수 있다. 노인돌봄종합서비스는 노인돌봄기본서비스와 중복으로 받을 수 없다.

◇응급상황 대비

혼자 살아 응급 상황이 두려운 독거노인이라면 '독거노인·중증장애인응급안전알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만65세 이상 노인 중 생계·의료·주거·교육급여 수급자 혹은 차상위에 속하는 노인이 치매 또는 치매고위험군인 경우, 건강상태가 취약할 경우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대상 가정에는 화재·가스 감지센서 및 응급호출기 등을 설치해 응급상황에 상시 대응하고 안전 확인을 비주기적으로 실시한다.

◇요양 관련 급여

만65세 이상이면서 장기요양등급을 받았다면 '시설급여'와 '재가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우선 시설급여는 비용의 20%만 내고 노인요양시설 등에 장기간 입소할 수 있는 혜택으로, 장기요양등급 1급 혹은 2급을 받았다면 신청이 가능하다. 3~5급을 받은 수급자 중에서도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등급판정위원회의 심의에 따라 시설 입소가 허용된다.

만약 생계·의료급여 수급자라면 비용 전액을 면제받을 수 있으며 의료급여 수급권자라면 비용의 10%만 부담하면 된다. 기관에서는 신체활동 지원 및 심신기능 유지 향상을 위한 교육 훈련 등을 받는다.

재가급여는 방문 요양·목욕·간호 등의 서비스를 전체 비용의 15%만 부담하고 받을 수 있는 혜택으로, 장기요양등급에 상관없이 신청이 가능하다. 생계·의료급여 수급자는 비용 전액을 면제받을 수 있고, 의료급여 수급권자는 비용의 7.5%만 부담하면 된다.

만65세 이상의 장기요양등급을 받은 노인이지만 섬 지역에 거주하는 등 장기요양기관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특별현금급여'(가족요양비)를 지급 받을 수 있다. 수급자에게 월 15만원을 지원한다.

◇일자리 지원

계속 일하고 싶은 어르신들을 위한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도 있다. 공익활동, 시장형, 인력파견형으로 나눠진다. 공익활동은 자발적으로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형태다. 월 30시간 이상 참여한 사람에게는 월 27만원을 지급한다. 만65세 이상이어야 신청이 가능하다.

시장형과 인력파견형은 만60세 이상부터 지원이 가능하지만 사업 특성과 적합하다는 판정이 있어야 한다. 시장형의 경우 대상자에게 적합한 소규모 매장 및 전문 사업단을 정부가 공동 운영하는 방식으로 일자리를 만든다. 인력파견형은 구인자의 요구에 따라 대상자를 선발하고 연계해 임금을 지급받도록 해준다.

안채원 인턴기자



60세? 65세?…나는 몇살까지 일할 수 있을까?



[나이의 사회학 ③] 대법원, 가동연한 놓고 공개변론

/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2016년 7월8일 밤 10시20분, 전남 목포시 영산로. 당시 49세였던 전기기사 A씨는 지인들과 술을 마신 뒤 대리운전기사를 기다리던 중 중심을 잃고 난간 아래로 떨어졌다. A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튿날 새벽 저혈량성 쇼크로 끝내 숨을 거뒀다. 유족들은 난간의 설치·관리상의 하자를 이유로 목포시 등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하급심 법원은 전기기사가 65세까지 일할 수 있다고 보고 평소 수입을 반영해 손해배상액을 계산했다.

사람은 몇살까지 일할 수 있을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2층 대법정에서 사람이 몇 살까지 일할 수 있는지를 주제로 두 건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대상으로 한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A씨 사건 뿐 아니라 2015년 수영장에서 숨진 4세 아동의 가족들이 수영장 운영업체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사건도 함께 다뤘다. 이 사건에서 하급심 법원은 아이가 60세까지 일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여기에 도시일용노동자의 소득을 적용해 손해배상액을 계산했다.

이처럼 법원이 몇살까지 일할 수 있다고 볼지에 따라 손해배상액이 달라진다. 개인이 사고 없이 정상적으로 일을 했을 경우 은퇴할 때까지 벌어들일 수 있었던 수입을 예상해 배상액에 포함시키기 때문이다.

법률에선 특정 직업군의 사람이 일할 수 있는 나이의 한도를 '가동연한'이라고 한다. 과거 대법원은 일반적인 육체노동자의 경우 55세까지 일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1989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이를 60세로 높였다. 이후 29년째 '60세 가동연한'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가동연한의 변경은 장애나 사망 등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액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일할 수 있는 나이의 기준이 바뀌는 만큼 보험이나 정년·연금제도 등에도 영향을 준다. 대법원이 고용노동부·통계청 등 12개 단체에서 의견을 수렴하고 공개변론까지 연 이유다.

대법원은 의견 수렴을 위해 여러 단체에서 서면 의견을 들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한국법경제학회, 근로복지공단 등은 가동연한을 60세보다 상향조정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을 냈다. 손해보험협회와 금융감독원은 여러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면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공개변론에 참석한 원고 측은 “2016년 기준 평균기대수명은 82.4세로 1989년 당시보다 10세 이상 증가했고, 연금 수급시기도 65세로 늦춰지고 있다”면서 “외국의 사례에 비춰 우리나라도 최소한 65세로 상향 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피고 측 김재용 변호사는 “국민들의 기대 수명은 증가했지만 건강하게 노동할 수 있는 나이인 건강 수명은 2012년 65.7세였으나 2016년 64.9세로 오히려 감소했다”면서 가동연한 상향에 반대했다.

대법원은 이번 공개변론을 바탕으로 가동연한을 늘릴지 판단하게 된다. 통계청 2017년 12월 기준 생명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1989년 남자 67.5세, 여자 75.3세에서 2016년 남자 79.3세, 여자 85.4세로 10세 이상 늘어났다. 국민들의 건강 수준이 개선되면서 고령 노동자의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가동연한을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반대 목소리도 없지 않다. 가동연한이 늘면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게 된다. 그러나 재계는 정년연장에 반대하고 있다. 근속연수와 임금이 연계돼 있는 상황에서 정년이 늘면 임금 부담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인사적체로 신규 인력 채용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임금피크제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지만, 이 역시 과도기적 미봉책이라는 지적이다.

정년이 연장되면 퇴직연금과 관련해서도 기업의 회계적 리스크(위험)가 커진다. 퇴직연금에는 기업이 운용하고 정해진 액수의 퇴직급여를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확정급여(DB)형과 기업이 매년 근로자의 퇴직연금통장에 넣어준 돈을 근로자가 알아서 운용하는 확정기여(DC)형이 있다. DB형을 운용하는 회사는 근로자가 은퇴해 퇴직급여를 받을 때까지 부채를 계속 적립해야 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부담이 커진다.

자동차 보험료가 인상될 수도 있다. 가동연한이 늘면 일반적으로 보험사들이 줘야 하는 보험금도 늘어난다. 지난 25일 국내 자동차보험사들은 국토교통부의 정비요금 인상을 이유로 3%대 보험료 인상을 공식화했고, 내년 상반기 중 추가 인상이 예상된다. 여기에 가동연한까지 연장되면 또 다른 인상 요인이 생기는 셈이다. 보험업계에선 가동연한이 5년 연장될 경우 최소한 1% 이상 자동차보험료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송민경 (변호사) 기자



노령연금 받던 90대 노인, 알고보니 나이가…



[나이의 사회학 ④]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신청, '신분세탁·채무회피' 등 악용 사례

#2013년 90대 안모씨는 복권을 위조해 돈을 받아내다가 적발됐다. 하지만 알고보니 안씨는 90대가 아닌 60대였다. 90대 노인 행세를 하며 방송 출연까지 했던 노인은 가족관계등록 창설 과정을 거쳐 90대 노인으로 신분을 세탁했다.

앞서 유가증권 위조죄로 2년간 교도소에 복역하고 출소한 안씨는 2005년 무료 급식을 하는 교회를 들락거리다 친분을 쌓은 목사에게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돼 호적이 없다"고 했다. 목사의 도움으로 2006년 법원에서 성·본을 창설하고, 2009년 새로운 가족관계등록 창설 허가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안씨는 자신의 출생일자를 실제보다 38살 더 많은 '1915년 1월15일'로 바꿨다. 전과자 안씨가 아닌, 38살 많은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렇게 주민등록번호를 바꾼 안씨는 2009년 4월부터 2013년 1월까지 46개월간 기초노령연금, 장수 수당 등 각종 명목으로 2200여만원에 이르는 정부 지원금을 받아냈다.

당시 법원은 안씨의 가족관계등록 창설 신청을 받고 경찰서에 '지문조회 등에 의한 사실 탐지 촉탁서'를 발송했지만, 경찰은 '안씨가 이사를 갔다'는 답변만 들은 채 안씨의 소재를 확인하지 못했다. 안씨에 대한 전과 조회, 지문 조회 등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법원은 안씨를 직접 심문한 뒤 창설 허가를 내줬다. 안씨가 신분을 바꾼 사실은 복권 위조로 잡히고 나서야 드러났다.

누구나 생년월일, 성별 등 가족관계등록부에 잘못된 내용이 있을 경우 법원의 허가를 받아 수정할 수 있다. 가족관계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104조는 '등록부의 기록이 법률상 허가될 수 없는 것 또는 그 기재에 착오나 누락이 있다고 인정한 때에 이해관계인은 사건 본인의 등록기준지를 관할하는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 등록부의 정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범죄자가 신분 세탁에 이를 이용하거나, 채무회피 등의 목적 등으로 제도가 악용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각종 연금 등 복지혜택을 받기 위해 나이를 수정하려는 데 역시 악용될 수 있다.

가정법원의 한 판사는 "가족관계등록부에는 정정 기록 등이 나오지만 이는 본인 아니면 확인할 수 없다"며 "특히 생년월일을 바꾸고 나면 주민등록번호가 달라지기 때문에 기록 변경 전후 본인 여부를 확인하기 힘들다"고 했다. 이어 "극단적으로 내가 결혼할 사람이 혼인 중인지 여부도 확인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물론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신청 등을 한다고 모두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악용을 막기 위해 가정법원은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신청 등을 받으면 정정 사유, 범죄 기록 등을 확인한다. 같은 법 제96조는 가정법원이 심리를 위해 경찰에 신청인의 범죄경력 조회를 요청하고, 요청을 받은 경찰은 확인 후 결과를 법원에 알려주도록 하고 있다.

특히 국민연금 등 연령에 따라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이 늘어나면서 출생일을 정정해달라는 요청이 늘어 확인은 더 엄격히 진행되고 있다. 가정법원의 한 판사는 "과거에는 출생신고가 잘못됐어도 수정하지 않고 그냥 사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연금 수령 등 실익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수정 신청자가 늘고 있어 꼼꼼하게 확인하고 있다"며 "신분세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신용조회, 범죄기록 조회 등은 필수적으로 확인하고 정정 목적을 염두에 두고 판단을 내린다"고 했다.

조혜정 변호사는 "출생신고 등 호적 정정은 국민연금 수령 등과 관련이 있는 만큼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며 "출생신고가 잘못됐음을 증명하는 서류, 예를 들어 가족 내 출생기록이 적힌 족보,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나 주변인들의 진술 등 원래 생년월일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 등을 통해 입증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보희 기자



"일은 나의 힘" 노동현장의 노익장



[나이의 사회학 ⑤] "일해야 더 건강, 활력과 즐거움 얻는다" 60세 이후 노동 보편화 …전문가 "가동연한 연장 고려해야"

7월1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아트홀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에서 한 구직자가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다. /사진=뉴스1
#통신사에서 설비일을 하던 김모씨(63)는 3년 전부터 경비원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만 58세에 전 직장에서 정년 은퇴한 후 2년간 실업급여를 받다가 재취업했다. 오전 6시30분에 출근해 24시간 연속 근무하는 형태에 새로 적응하기는 힘들었지만 요즘은 만족스럽다.

김씨는 "쉬는 동안 등산을 다니고 친구들도 만났지만 일을 하면서 더 건강해지는 것 같다"며 "주변에 경비 일이라도 하려는 사람이 많아 월급쟁이인 나를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30년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은퇴한 박모씨(64)도 6년 만에 택시기사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그동안 번 돈과 퇴직금을 자녀 결혼 등에 다 쓰고 나자 앞으로 살아갈 생활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형편이 괜찮은 동료들도 '아직은 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유로 만족스럽게 일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람도 만나고 바쁘게 지낼 수 있어 삶에 활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가 평균수명 80세 시대로 접어들면서 은퇴 이후 제2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60세 전후로 은퇴한 이들이 생활비 마련과 삶의 만족도 향상 등을 위해 새로운 직장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통계청이 9월 발표한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60~64세와 65~69세 고용률은 각각 60.6%, 45.5%에 달했다.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인 고용률이 높은 것은 사회보장제도가 부족한 한국 사회 특성상 은퇴가 곧 경제적 빈곤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이 취업을 원한 이유는 '생활비 보탬'(59.0%)이 1위를 차지했다. 2016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들의 상대적 빈곤율(중위소득의 50% 이하)은 절반에 가까운 43.7%였다.

단순히 돈 문제만은 아니다. 노동시장에서 은퇴가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 저하로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은퇴가 건강 및 삶의 만족에 미치는 영향'(2017)에 따르면 은퇴가 건강과 삶의 만족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를 한 노인은 일을 하고 있는 동년배에 비해 건강상태 만족도가 10.9%,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는 5.1% 낮았다. 사회적 네트워크가 줄어들고 경제 상황도 나빠지면서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서울중앙지법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박모씨(66)는 정년(65세)에 맞춰 올해 은퇴할 예정이었지만 정년이 연장되면서 3년 더 일할 기회를 얻었다. 박씨는 "일을 하지 않으면 정신적으로도 고통스러워서 할 수만 있다면 계속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라며 "꼭 돈 때문이 아니라 인생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도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다양한 이유로 일하는 노인이 늘어나면서 29년간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가동연한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동연한은 일정한 직업에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어서 소득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인정되는 나이를 말한다. 1989년 대법원이 일반 육체 노동자의 가동연한을 60세로 정한 이후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가동연한은 장애나 사망 등 사고가 발생했을 때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 기준이 된다.

전문가들은 노인의 고용 문제를 사회 전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최은영 고려대 경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더 일하고 싶은 노인들이 노동시장에 나서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며 "가동연한을 생산가능인구 기준인 65세까지 늦춰 일하도록 하면 노인 빈곤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상 기자, 서민선 인턴기자, 안채원 인턴기자



주택연금 때문에 나이 늘리는 어르신



[나이의 사회학⑥]3억원짜리 아파트 1950년생 월수령액 84.5만원, 1947년생일 땐 96만원…생년 조정후 가입시 유리

#주택연금 가입을 고려중인 A씨는 최근 솔깃한 얘기를 들었다. 주민등록상 생년이 잘못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지인이 생년을 정정한 다음에 주택연금에 가입하면 더 많은 연금을 받을 수 있다고 조언한 것.

주택연금 가입자가 늘어나면서 주택연금을 더 많이 받기 위해 불편하지만 생년을 조정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19일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지난 9월말 주택연금 누적 가입자는 5만7064명이다. 2007년 7월 출시이후 매년 가입자가 늘었고 올해 1월 5만명을 넘어선 뒤로 꾸준히 가입자가 늘고 있다.

주택연금이란 만 60세 이상의 어르신이 소유한 주택을 담보로 평생 혹은 일정한 기간 동안 매달 연금방식으로 노후생활자금을 지급받는 국가 보증의 역모기지론이다.

주택연금 수령액은 가입시점의 나이, 집값, 장기 집값 상승률, 금리수준 등에 영향을 받는다. 특히 나이가 많을수록 수령액이 늘어난다. 이는 주택연금 수령액이 가입자가 기대수명만큼 사는 것을 가정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3억원짜리 아파트를 가지고 주택연금에 가입했다면 1950년 1월1일생은 매달 84만5580원을 받는다. 하지만 1947년 1월1일생이면 월 지급금이 96만30원으로 10만원 이상 불어난다. 나이를 3년 늘리면 연간 137만원 이상 더 받을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주택연금에 가입한 이후 생년월일을 조정하면 수령액을 바꾸긴 어렵다. 주택연금은 가입시점을 기준으로 수령액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주택금융공사 관계자는 "생년월일을 조정한 후 연금 수령액을 바꿀 수 있는 규정이 없다"며 "주택연금은 가입한 이후 수령액이 변동되지 않기 때문에 법원 결정이 나도 수령액을 바꾸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생년월일 조정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지만 나이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만 명확하면 생년월일을 조정해주고 있다. 특히 옛날에는 갓난아이들이 사망하는 사례가 많아 출생신고를 2~3년 늦게 하는 경우가 많아 생년월일 조정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생년월일 조정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법무법인도 생겨나고 있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으면 비용이 늘어나지만 나이가 늘어남에 따라 생기는 부수 효과까지 고려하면 이득을 볼 수 있다.

예컨대 생년월일을 조정하면 국민연금 등 연금을 일찍 받을 수 있다. 국민연금은 1952년생까지는 만 60세부터 수령할 수 있고 1953~1956년생은 만 61세부터 수령할 수 있는 등 생년에 따라 수급연령이 달라진다. 이밖에 생년을 조정하면 지하철 무임승차를 할 수 있는 등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은퇴한 어르신들이 제 나이를 찾기 위해 변호사를 찾는다.

이학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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