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우주선을 만들지 말고 우주 한 가운데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머니투데이 김보영 SF작가  | 2018.11.28 15:40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 공모전] 김보영 SF작가 심사평

<총평>

김보영 SF작가. /사진=김창현 기자
작년에 비해 투고작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크게 올랐다. 공모전의 이름이 알려지고 그 성과가 유의미하게 나왔기 때문이려니 한다. 소재도 다양해졌고, 많은 작품이 완성도의 차이가 있을 뿐 평범하게 소설이었다. 분노와 혐오를 정의라 믿고 설파하는 글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확연히 줄어든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작품의 전체적인 수준이 올랐다는 것은 투고자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일 수 있겠지만, 상의 권위는 그만큼 오른다는 뜻이다. SF로 수상한 경력만 없으면 기존에 SF를 쓰던 작가도 데뷔 2년 이내에는 도전해볼 수 있는 상이니, 지금 좋은 결과가 없었던 분들도 계속 도전해보시기를 권한다.

우리가 이미 고전 SF 작가들이 상상한 미래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로봇은 이미 있으니 당신이 창조한 미래인이 로봇의 아버지가 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우주진출도 오래전부터 했으니 역시 당신이 창조한 미래인이 그 일의 선구자가 될 가능성도 별로 없다. 그 외에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는 많은 미래기술이 이미 있거나 연구가 웬만큼 진행되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다.

그러니 뭘 만드는 장면은 넘어가는 편이 좋다. 흥미롭지도 않을뿐더러 본인이 그 연구의 최전선에 있지 않은 이상 초보적인 실수를 할 가능성이 너무 높다. 지구에서 우주선을 만들며 시작하기보다는 우주 한가운데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시라.

박사님이 가상세계를 만드는 장면은 넘기고 가상세계 한 가운데에서 시작하시라. 스마트폰을 만드는 스티브 잡스의 성공담을 다루느니 일상에서 스마트폰을 쓰는 보통 사람을 보여주는 편이 더 소설적이다.

외국인은 많이 줄었지만 대신 이름 없는 인물이 늘었다. ‘남자’, ‘여자’의 이름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알파벳 약어의 이름도 혼란을 준다. 자신의 인물들에게 적절한 이름을 주기 바란다. 이런 말들은 작년보다 열 걸음은 앞으로 나아간 말들이다. 기쁜 일이다.

<장편>

당선작인 ‘기파’의 소재, 반전과 메시지가 실상 SF 심사위원에게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새롭지 않은 이야기라도 계속 다시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주어진 지면을 충실하게 활용하면서 곁가지로 빠져나가지 않고 하나의 사건, 주제, 몇 명의 인물에게 잘 집중한 소설이다. 특별히 소설이 무엇을 대놓고 웅변하지 않더라도, 살아있는 인물을 만들고 독자가 그의 입장에 충분히 공감하게 해 주는 것만으로도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음을 잘 이해하고 쓴 소설이다.

본심작 중 ‘미드나이트 아일랜드’는 로봇의 시선으로 인간을 연민하는 전개가 사랑스러운 면이 있었다. 하지만 유명한 어느 영화의 플롯을 그대로 떠올리게 하는 점은 설령 의도치 않았더라도 큰 단점이었다. 로봇으로 설정한 화자의 시선이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고, 복제인간들의 심리는 로봇의 시점에서 묘사돼 역시 깊이 파고들지 못했으며, 결말 또한 성급한 감이 있었다.

‘시작은 끝보다 어렵다’는 차분한 문체가 좋았고, 군인의 삶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통제받는 청소년의 학교생활을 연상시키는 점이 공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 소설의 단점은 작가가 직접적으로 말해주는데, ‘켈리를 파괴하려고 군인이 되었는데 어쩌다 보니 유야무야되며’ 희미한 결말을 맺고 만다. 제목과 달리 끝이 시작보다 어렵다. 서두에 제시한 문제를 충실하게 파고들어 결론을 잘 내렸다면 좋았을 것이다.

‘휴먼컬렉션’은 미래 세계에서 수사관이 사건을 해결하는 연작소설로, 각 에피소드가 충실했다. 오래 쓴 소설이라 생각되며 하드보일드한 여성수사관에 주인공 듀오의 성 역할이 반전된 점이 활기를 주었다. 하지만 저자의 시선이 전체적으로 그렇지는 않은 편이고, 알파벳 약어의 이름과 보통의 이름이 섞여 있는 점이 불필요한 혼란을 준다. 섹스기계의 소재는 설령 분위기에 어울리더라도 사유가 필요할 것이다. 단편이 이어질 뿐 결말이 없어 완결된 소설로 볼 수 있는가에 또한 의문이 있었다.

본심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어스닷컴’은 열심히 쓴 소설이었다. 하지만 단행본 장편보다는 연재소설에 어울리는 구조였고, 성실한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가 균형을 맞추지 못하고 샛길로 빠지며 급격히 끝나버린다. 1000매 정도의 소설은 장편이라 해도 단편의 구조를 생각하며 쓰는 편이 좋다.


<단편>

대상인 ‘단일성 정체감 장애와 그들을 이해하는 방법’은 인격에 대한 관점이 우리와 다른 세계의 의학 보고서를 통해, 정상과 비정상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다. 우수상과 장단점이 달라 경합을 벌였으나, 독특한 시선과 안정적인 서술이 돋보여 대상으로 선정됐다.

우수작인 ‘개와는 같이 살 수 없다’의 소재와 결말은 전형적이라면 전형적일 수 있겠지만, 방주의 기준을 상상하기 어렵게 하는 소설적 장치들이 있어 계속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큰 세계관 안에서 작은 것에 집중하면서 압축적으로 이야기를 구성한 점이 훌륭했다.

가작 또한 상당한 경합을 벌인 끝에 선정됐다. ‘웬델른’은 중간의 반전이 감각적이었고 갇혀 있는 주인공과 공간이동을 하는 외계생물과의 만남이 감동을 주며, 도시빈민이나 장애인이 애완동물과 만나 구원받는 서사를 떠올리게 했다. 우수작과 마찬가지로 더 많은 이야기가 있을 법한 세계관 안에서 작은 장면을 조명하는 구조가 좋았다.

‘소년시절’은 아이들의 글을 심사하는 선생님의 시선으로, 왕따와 학교폭력을 장르적으로 풀어낸 소설이다. 필력과 구성이 안정적이었고 아이들이 체험하는 소외감을 외계인이라는 소재에 빗대어 보여준 좋은 작품이다.

‘두 개의 바나나에 대하여’는 인류의 환상적 진화를 다룬 작품으로, 무성생식이라는 소재를 통해 임신과 생식,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분열이 급격히 번져가는 결말은 장르적이기는 하지만 비약이 커서 지금까지 잘 풀어낸 소설의 감흥을 흐리게 하는 면이 있었다.

다음은 최종심까지 경합을 벌인 작품들이다. ‘지구에 남은 마지막 라일락 향기’는 보호복을 입어야만 살 수 있는 세상을 무대로, 서로 사랑하지만 닿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실감 나게 그린 작품이었다. 예상할 수 있는 결말과 전개는 단점이었지만 무난하게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스트럴드블럭’은 영생을 사는 사람들을 돌보는 사람의 시선을 통해 노인문제와 세대 간의 단절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주인공이 미래에 홀로 남아 자신이 돌보던 사람과 같은 처지가 되는 결말에 잔잔한 감동이 있었다. 글쓰기 훈련이 덜 된 단점이 보였지만, 기술적인 문제이므로 곧 성장할 수 있으리라 본다.

‘하늘에도 거미가 있다’는 크툴루 세계관(러브크래프트가 만든 세계관으로 세상 어딘가에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생물이나 악신이 산다는 상상에 기초)을 연상시키는 소설로, 대기권에 가상의 생태계가 있다는 음모론을 현실로 가져오는 반전이 좋았다. 하지만 고체에 닿으면 죽는 생물이 사람을 먹고 공격하고 게다가 멸망시킬 가능성이 있을까 싶다. 그 지점의 논리가 허술해 결말의 설득력이 약했다.

내가 본심에 올린 작품은 ‘개와는 같이 살 수 없다’, ‘웬델른’, ‘스트럴드 블럭’, ‘우주탐사선 베르티아’였는데, ‘우주탐사선 베르티아’는 문장과 필력이 좋았지만 세계의 비밀을 밝혀내는 지점에서 가설을 가설로 증명하는 논리의 비약이 있었고, 결말이 과한 편이었다.

그 외에 예심작 중 인상적이었지만 본심에 올리지 못한 소설을 간단히 평하자면,
‘너머에’는 발달장애 아이를 기르는 어머니의 마음을 절실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현실적인 감동이 컸다. 단지 현실에서 비현실로 넘어가는 지점이 부자연스러웠고 긴 서두에 비해 결말이 짧고 모호했다. 이 소설은 일반소설로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으리라 본다. ‘산사의 하루’도 장르적인 요소는 적었지만 고즈넉한 분위기가 좋았다. 중간에 로봇이 사연을 말하는 부분이 급박해 전체적인 이미지를 해쳤는데, 그 부분이 자연스러웠으면 좋았을 것이다.

좋은 작품이 많았기에 작가들에게 격려가 되기를 빌며 가능한 많은 작품을 언급했다. 다음 공모전에 다시 도전해주시거나, 그러지 않더라도 다양한 곳에서 좋은 작가로서 활동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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