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개 짖는 소리에 잠도 못자…그냥 당해야만 하나요"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 2018.11.23 05:01

[the L] [Law&Life-또 하나의 소음, '반려동물' ①] 반려동물 소리, 현행법상 소음으로 인정 안돼…정부 분쟁해결 '사각지대'

/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아파트에 사는 A씨는 최근 20만원짜리 고급 스피커를 구입했다. 이 스피커로 매일 2만Hz의 고주파음을 최고로 틀어놓고 잠자리에 든다. 웬만한 사람 귀엔 들리지 않는 고주파음을 트는 것은 매일 밤 이웃집의 개 짖는 소리 때문에 도통 잠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에겐 거의 들리지 않는 2만Hz 소리에 개들은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A씨는 "개를 향해 고주파음을 틀었더니 짖기를 멈췄다는 인터넷 글을 보고 바로 고출력 스피커를 구매했다"고 했다.

이웃집 개 짖는 소리는 넉달 전쯤 시작됐다. 대개 밤 8시쯤 시작해 늦으면 새벽 1시 넘어서까지 짖어댔다. 경비실에 연락해 "어느 세대인지 찾아 주의를 줘 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지만 소용없었다. 개 소음의 진원지로 의심되는 이웃들은 전부 "우리 집은 개를 안 키운다"며 경비원을 돌려보냈다. 경비실에서도 결국 "어느 집인지 찾을 수 없으니 경찰을 불러야 할 것 같다"며 손을 들었다.

A씨는 "경찰이 와도 경비원보다 더 해줄 수 있는 건 없을 것 같다. 층간소음 때문에 폭력, 살인까지 난다고 하니 직접 나서기도 무섭다"며 "혹시 온순한 다른 집 개들까지 고주파음으로 피해를 볼까 걱정되긴 하지만 당장 내가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반려동물 소음, 정부 분쟁해결 '사각지대'

반려동물 인구 1000만 시대. 아파트에서 개 등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례가 늘면서 반려동물이 층간소음과 이웃 갈등의 원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대개 층간소음 문제가 생기면 한국환경공단의 '층간소음사이이웃센터'(이하 센터)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소음을 직접 측정하고 분쟁 조정안을 제시할 뿐 아니라 조정안이 이행되지 않으면 강제집행까지 한다.

그러나 반려동물 관련 소음은 이런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현행법상 반려동물의 소리가 층간소음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음·진동관리법 제2조 제1항에 따르면 층간소음은 '사람의 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강한 소리'로 규정돼 있다.

층간소음 예방 노력을 의무화한 공동주택관리법과 그 행정규칙도 같은 기준을 따르고 있다. '공동주택 층간소음의 범위와 기준에 관한 규칙'(층간소음 규칙)은 소음을 '직접충격 소음'과 '공기전달 소음'으로 나눠 규제한다. 직접충격 소음은 발 소리나 또는 물건을 바닥에 끄는 소리 등을 가리킨다. 공기전달 소음은 TV 등 전자기기 사용으로 나는 소리다. 두 가지 모두 동물이 아닌 사람이 내는 소리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

실제로 A씨가 접수한 민원은 "개 짖는 소음은 센터에서 해결이 어렵다"는 이유로 반려됐다. A씨가 '그럼 소음이 어느 집에서 나는지만이라도 같이 찾아달라'고 요청했지만 센터는 "대상을 찾으면 다시 신청서를 작성하라"고 답했다. A씨는 "결국 알아서 하라는 말인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서울시를 포함한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반려동물 층간소음 민원을 접수받고 있지만 "조심해달라"는 중재가 전부다. 반려동물 주인이 협조하지 않는다면 해결은 기대하기 어렵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4년부터 이달까지 서울시에 접수된 반려동물 층간소음 민원은 149건으로 전체 층간소음 민원(1818건)의 4.5%정도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반려동물 층간소음 민원이 비중이 높진 않지만 꾸준히 접수되고 있다"고 했다. 반려동물 소리도 법상 층간소음의 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믿을 건 손해배상 소송 뿐…그러나 입증 어려워

결국 이웃집 반려동물 소음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법적조치는 현재로선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사실상 유일하다. 민법 제759조에 따르면 동물의 점유자, 즉 반려동물 주인은 그 반려동물이 타인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이 '손해'에는 짖는 소리 등으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손해까지도 포함된다.

실제로 법원은 2005년 전원주택에 거주하는 B씨가 "이웃집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 때문에 몸에 이상이 생겼다"며 개 주인 C씨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에서 C씨가 치료비와 위자료 등 147만여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법원은 B씨가 개 소리로 인한 우울감과 수면장애를 호소하며 병원 치료를 받은 점, C씨가 수차례 항의를 받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등을 인정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가지 않고 2심에서 확정됐다.

그러나 B씨처럼 손해배상 인정 판결을 받아내려면 스스로 입증해야 할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먼저 어느 집 반려동물이 소음을 내는지 특정해야 한다. 또 누가 봐도 참기 힘들 정도로 소리가 크고, 그로 인해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입었음을 증명해야 한다.

실제 소송에서 소음의 크기를 놓고 다툰다면 층간소음 규칙이 기준이 될 수 있다. 이 규칙에 따르면 한 번에 5분 동안 측정했을 때 소리 크기가 평균 주간 45dB, 야간 40dB을 넘길 경우 심각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이로 인해 피해를 입었음을 증명하려면 개 소리가 들릴 때마다 녹음하고, 병원에서 진단서를 받아놓는 등 증거를 남겨둬야 한다.

그러나 이런 증거들을 모두 남겼다고 해도 반려동물 주인이 '나도 할 만큼 했다'고 나온다면 손해배상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민법 제759조에 동물 주인이 동물의 보관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였다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단서조항이 있어서다.

법률사무소 로앤탑의 전선애 대표변호사는 "반려동물 소음에 대해 실제로 소송을 한다면 반려동물 주인의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 위반 등을 모두 입증해야 할 텐데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베스트 클릭

  1. 1 선우은숙 "미안합니다"…'유영재와 신혼' 공개한 방송서 오열, 왜
  2. 2 항문 가려워 '벅벅'…비누로 깨끗이 씻었는데 '반전'
  3. 3 "내 딸 어디에" 무너진 학교에서 통곡…중국 공포로 몰아넣은 '그날'[뉴스속오늘]
  4. 4 심정지 여성 구하고 홀연히 떠난 남성…알고 보니 소방관이었다
  5. 5 여고생과 성인남성 둘 모텔에…70대 업주, 방키 그냥 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