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人주의]토끼는 '몽마르뜨'로 돌아올 수 있을까

머니투데이 유승목 기자 | 2018.11.23 06:00

[유승목의 개人주의]몽마르뜨 토끼 둘러싼 갈등…토끼 유기행위 단속·방지 협력해야

편집자주 | 100여년 전 영국의 사상가 헨리 솔트는 "모든 동물은 혈연관계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땅에서 함께 공존해야 할 공동체의 관점에서 동물의 권리를 존중하고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해야 우리도 성장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닐까요. 매주 목요일, 무심코 지나쳤던 동물에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겠습니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갈 곳 없는 이웃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다. 언뜻 보면 특별히 이상할 것 없는 기자회견. 하지만 이들이 든 피켓을 자세히 보니 조금 달랐다. 어려움의 처한 이웃이 사람이 아닌 '토끼'였기 때문. 어쩌다 사람들은 토끼의 '주거 안정권'을 위해 모이게 됐을까.

지난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얘기다. 동물권단체 관계자들과 시민봉사자들은 이날 '몽마르뜨 공원 토끼 책임 방기 서초구청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토끼 문제를 방치하고 있는 구청의 행태를 비판하기 위해서다.

토끼 문제는 다름 아닌 서초구 반포동 몽마르뜨 공원에 사는 토끼들의 동물권을 말한다. '토끼 천국'으로 알려진 이 고즈넉한 공원에 사는 토끼들은 최근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당국의 마땅찮은 개선책에 시민들은 기자회견까지 열어 적극적인 해결을 촉구했다.
◇몽마르뜨엔 토끼가 산다
내 집 마련도 힘든 시기에 토끼의 주거 안정권 촉구라니. 다소 어처구니 없을 수도 있는 기자회견을 이해하기 위해선 토끼 동산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 지금이야 '토끼 동산'으로 유명세를 탔지만 그 시작은 썩 유쾌하지 않다.

토끼가 처음부터 공원에 서식했던 것은 아니다. 2011년 공원에 유기된 토끼 한 쌍이 번식을 시작했고 또 다른 토끼들이 공원에 버려지면서 무리를 이뤘다. 무책임한 유기 행위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토끼의 번식력이 합쳐져 금세 토끼 동산이 만들어졌다.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면 공원과 일대는 수천 마리의 토끼로 발 디딜 틈이 없었을 것이다. 중복임신이 가능한 토끼는 한 번에 5~6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임신기간도 한 달에 불과하기 때문. 하지만 동물단체와 시민 봉사자 등 토끼돌봄이들이 자발적으로 중성화수술(TNR)을 진행하는 등 관리에 힘써 15~20여 마리의 개체 수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올해 들어 문제가 터졌다. 토끼 유기가 점점 잦아졌다. 특히 한 시민이 중성화되지 않은 토끼 수십여 마리를 공원에 풀어놔 개체 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지난 8월 토끼 개체수가 무려 80여 마리까지 늘어났다. 시민 봉사자들이 40여 마리의 토끼를 임시 보호하는 등 관리에 힘썼지만 당국의 역할 없이는 한계가 뚜렷했다.
◇좁은 방사장이 최선책?
문제가 커지자 몽마르뜨 공원을 관할하는 서초구청의 대책이 필요했다. 이에 구청이 처음 내놓은 대책은 수토끼 중성화 수술과 공원 내 방사장을 조성이었다. 사람의 눈길이 잘 닿지 않는 공원 한 켠에 만든 토끼우리에서 토끼를 관리하겠다는 것이었다.

동물권단체와 토끼돌봄이들은 안일한 대책이라고 입을 모았다. 유기행위에 대한 철저한 단속도 없는 상황에서 수토끼만 중성화하는 것은 개체 수 유지에 효과가 없기 때문. 이들은 방사장 조성도 편협한 시각에서 바라본 개선책이라고 반발했다. 토끼는 영역다툼이 치열해 좁은 방사장에 몰아넣으면 크게 다치거나 사망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동물권단체는 지난 9월 구청과 2차 면담을 통해 △유기행위에 대한 강력한 행정처분 △토끼 중성화 수술 진행 △공원 내 방사를 제안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유기 금지 캠페인 진행은 물론 직접 암토끼 중성화 수술까지 부담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서초구청은 묵묵부답이었다. 두 달 동안 공문, 제안서, 민원 등을 끊임 없이 보냈지만 구청에서 돌아온 대답은 '논의 중'이었다. 이에 보다 못한 동물자유연대와 시민봉사자들이 지난달 개체 수 유지를 위해 토끼를 포획해 중성화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서초구청이 마련한 토끼 방사장의 모습(사진 왼쪽)과 관련 현수막. /사진= 유승목 기자
◇중성화수술 마쳤지만
동물자유연대와 시민 봉사자들은 8차례에 걸쳐 토끼 100여 마리를 포획해 중성화수술을 진행했다. 중성화수술 후 회복할 시간 동안 시민 봉사자들이 임시보호를 맡았다. 이 중 영역다툼에서 크게 다치거나 야생에 적응하지 못해 입양을 시도하기로 결정한 개체를 제외하고 나머지 30여 마리를 13일 본래 토끼들이 살고 있던 몽마르뜨 공원 언덕으로 돌려보냈다.

중성화수술까지 마치고 돌아왔지만 토끼들은 환영받지 못했다.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구청은 "왜 담당부서와 협의도 없이 포획을 진행하냐"며 "방사허가증 없이 공원 방사는 불가능하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채일택 동물자유연대 사회변화팀장은 "애초에 '방사허가증'이라는 규정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동물권단체는 지난 2일 이어진 3차 면담에서 서초구청의 생명경시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이날 조은희 서초구청장을 대신해 면담에 참석한 도시관리국장이 토끼 유기행위 방치 등 관리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토끼문제 해결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지난 13일 서초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동물자유연대, 동물권단체 하이, 시민봉사자 모임 자유로운 토끼세상 회원들이 중성화수술을 마친 어른 토끼를 몽마르뜨 공원에 방사했다. /사진제공= 동물자유연대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구청 측은 유기행위 방지를 위한 CCTV 설치 요구에 "어차피 버릴 사람은 버린다"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동물유기에 대한 감독과 적극적인 행정처분 요구에는 "사람들이 1미터 간격으로 지키고 서 있으면 되겠네", "(동물권단체에) 수사권을 주면 되겠네"라는 식의 태도로 일관했다. 동물 유기 행위 적발·과태료 부과 등의 업무는 해당 지자체의 소관이다.

◇협력과 상생 가능할까
이에 동물자유연대와 동물권 단체 하이, 그리고 시민봉사자 모임인 자유로운 토끼세상은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서초구청 앞에 모였다. 이들은 "서초구청의 행위에 생명에 대한 존중도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모습도 결여돼 있다"며 "책임소홀로 발생한 문제 해결을 노력하고 시민단체·봉사자와 협력해달라"고 외쳤다.

그동안 봉사자들과 함께 토끼를 관리해온 가수 다나는 "조은희 구청장이 동물복지 공약을 내세웠는데, 토끼가 몽마르뜨 공원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꼭 도와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실제 조 구청장은 지난 지방선거 과정에서 "동물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서초 실현은 주민복지와도 연관이 있다"며 "이 같은 맥락에서 동물복지정책을 추진하려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기자회견 이후 서초구청의 태도는 조금씩 바뀌고 있다. 채일택 팀장은 "(기자회견 후 열린) 지난 20일 4차 면담에서 구청이 전과 달리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며 "방사 수용은 물론 큰 틀에서 유기행위 방지 대책도 합의했다"고 전했다. 이어 "토끼 중성화부터 관리까지 구청과 협력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초구청도 토끼 관리와 유기 방지 의지가 있다는 뜻을 밝혔다. 김재무 서초구 공원팀장은 "동물권 단체와 시민봉사자들이 좋은 마음을 가지고 활동했는데 그동안 호흡이 잘 맞지 않아 오해가 생기는 면이 있었다"며 "곧 토끼 유기행위에 대한 공동단속 및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상호 공조와 의견 조율을 통해 관리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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