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10년간 안 쓴 예산 92조원, 어디서 얼마나 안 썼나?

머니투데이 세종=정현수 기자, 양영권 기자, 박경담 기자 | 2018.11.21 06:30

[불용예산 해부](종합)

편집자주 |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 심사가 한창이다. 한푼이라도 더 받고, 더 깎기 위한 전쟁이 벌어지지만, 정작 해마다 책정하고도 쓰지도 않은 예산이 넘쳐난다. 정부가 국민의 세금을 배정해 놓고 집행하지 않은 ‘불용(不用)예산’의 문제점을 살펴봤다.



10년 동안 쓰지 않은 돈 92조원의 정체



[불용예산 해부]예산 편성→불용 반복, 연례적 집행부진 사업도 140여개…기회비용만 매년 수조원씩 날려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2019년도 예산안 관련 자료들이 의원석에 놓여져 있다. 2018.11.5 /사진=뉴스1
매년 여름 기획재정부 3층 예산실은 인산인해다. 각 부처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이 저마다의 사정으로 예산실을 찾는다. 장성급 군인도 있고 심지어 연예인의 모습까지 간혹 보인다.

이들의 목적은 단 하나, 예산을 더 따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어렵사리 따낸 예산이 정작 제대로 쓰이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매년 사용하지 못한 예산, 즉 불용(不用) 예산이 수조원에 이른다.

매년 발생하는 불용 사업도 있다. 타낸 쪽이나 준 쪽이나 모두 관례적으로 예산을 편성한 것인데, 정작 예산이 쓰여야 할 곳에 쓰이지 못하지만 양쪽 모두 책임은 지지 않는다.

20일 국회예산정책처와 기재부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불용 예산은 92조2952억원이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진 매년 5조원대를 기록하다가 박근혜 정부 시기인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줄곧 10조원대의 불용액이 생겼다.

지난해에는 그나마 불용 예산이 7조1402억원으로 다소 줄었다. 전년도에서 이월된 것까지 포함한 예산현액에서 불용액이 차지하는 비율인 불용률은 2%다. 불용률은 2013년 5.8%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2% 수준까지 떨어졌다.

불용예산이 줄었다고는 하나 적은 돈은 아니다. 가령 만 6세 미만 아동에게 월 10만원씩 지급하는 아동수당 예산이 약 2조원이다. 지난해 정부가 쓰지 않은 예산 7조원이면 산술적으로 아동수당을 월 35만원씩 지급할 수 있다.

지난해 불용액을 총지출 기준으로 따지면 규모는 더 늘어난다. 기금을 포함하고 내부거래를 뺀 총지출 기준의 지난해 불용액은 10조9000억원이다. 내년도 기초연금 예산(약 11조5000억원)과 맞먹는다.

불용이 반복되는 예산도 상당수다. 최근 4년간 예산현액 대비 평균 집행률이 70% 미만인 사업은 지난해 기준 147개다. 불용이 생길 걸 알면서도 예산을 지나치게 많이 잡았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게 농림축산식품부의 재해대책비다. 재해대책비의 최근 4년간 평균 집행률은 29.4%다. 지난해 집행률도 44.3%에 그쳤다. 최근 몇 년 동안 큰 재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산을 많이 줄이지 않았다.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역시 연례적 집행부진 사업의 단골손님이다. 흑산도 공항의 경우 지난해 집행률이 1.3%에 그쳤다. 사업 추진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예산부터 먼저 배정한 데 따른 결과다.

잘못된 판단으로 불용예산도 된 사례도 있다. 정부는 지난해 우체국예금 이자를 지급하기 위한 예산으로 1조6286억원을 짜놓았지만 8845억4600만 집행했다. 저금리인데도 수신금리는 높게 잡았기 때문이다.

1018억원을 편성했지만 677억원만 쓴 행복기숙사 지원사업, 58억 편성에 1023만원만 쓴 한-베트남 우호교류센터는 건립이 취소되거나 차질을 빚었다.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았던 권역외상센터도 338억원의 예산 중 29억원을 못 썼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연례적인 불용 예산이 많다는 것은 불용을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그만큼 기회비용이 생긴 것이지만 처벌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40억원 증액도 어렵다더니"…연례적 불용 예산 왜?



[불용예산해부]SOC 예산 중심으로 불용 꾸준히 발생…명시이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와

2013년과 2014년에는 유독 불용(不用) 예산이 많았다. 각각 18조원, 17조원 규모였다. 2012년 불용 예산이 5조원대라는 점에서 이례적인 일이었다. 당시에 정치권에선 ‘의도적 불용’이라며 의심을 눈초리를 보냈다.

박근혜 정부는 유난히도 세수결손에 시달렸다. 나라 곳간이 넉넉하지 못해 지출에 부담을 느꼈다. 결국 각 부처에 불용을 확대하도록 유도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렇게라도 예산을 아낀다는 명목이었다.

공교롭게 세수상황이 호전되면서 불용액은 줄었다. 지난해 불용 예산은 7조1402억원이다. 불용 예산은 합리적인 재원 배분을 저해하는 요소로 꼽히지만, 이처럼 합리적이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불용 예산이 발생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연례적으로 집행이 부진한 사업의 원인 중 사업추진의 지연(28.4%), 관계기관 간 협의 지연(24.8%)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예상 가능한 불용 예산도 만만치 않다. 집행률이 낮은 사업을 항목별로 살펴보면 도로 건설과 시설 건립 등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많다. 문제는 이들 사업 중 상당수는 공사가 늦어지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지난해의 경우 서산도시형산단 진입도로사업과 창원 동전산단 진입도로사업의 집행률은 각각 18%, 53%에 그쳤다. 산업단지 조성이 제때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산음봉산단 진입도로사업은 민원 발생으로 일부 공사가 중단됐다.

SOC 예산은 정치권의 이해관계와 맞물린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SOC 예산 편성을 업적으로 여긴다. 당장 집행이 어렵더라도 사업을 추진하는 것만으로도 성과를 낸 것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있다.

결과적으로 “일단 예산부터 배정하고 보자”는 인식이 강하다. 특히 정치권은 예산 결산에는 지나치게 소극적이다. 예산을 타 내려고 편성 과정에서 공방을 펼치는 것과 대조적이다. 각 부처 역시 불용 예산이 발생하더라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예산의 불용이 발생하면 그만큼 제때 재정을 투입하지 못하게 된다. 예컨대 보건복지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가정양육수당 예산 44억원을 추가하려 했지만 기재부의 반대로 정부안에 담지 못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지 않는 미취학아동에게 지급하는 가정양육수당은 취학 직전 1월과 2월에 지급하지 않는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이 기간에도 보육료를 지급한다.

복지부는 형평성 차원에서 이 기간에 가정양육수당을 지급하려고 했지만, 기재부는 특별한 이유 없이 정부안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44억원의 예산 증액도 어려운 상황에서 매년 수조원씩 발생하는 불용 예산은 문제일 수밖에 없다.


몇 해 전 불용 예산이 생기면 불이익을 주자는 논의도 있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기획재정부가 주기적으로 재정관리점검회의를 열어 예산 집행률을 독려하는 정도에서 그쳤다.

따라서 불용 예산의 명시이월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명시이월은 제 때 쓰지 못할 예산을 국회의 의결을 거쳐 이듬해로 넘기는 제도다.

기재부 관계자는 “불용이 발생할 경우 적기에 예산을 활용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지만 그 돈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불용률을 줄이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집행률 4% 사업도…설익은 국정과제들 예산불용 불가피



[불용예산해부]도시재생 뉴딜 예산집행 7.7%, 새만금 개발 0.9% 등 집행률 낮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30일 전북 군산시 근대교육관에서 열린 도시재생 뉴딜사업 현장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국토교통부 제공
'도시경쟁력 강화 및 삶의 질 개선을 위한 도시재생뉴딜 추진’은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다. 전국적으로 도시재생뉴딜 사업을 공공중심으로 지원하고, 도시재생과 연계해 저렴한 공공임대주택 공급한다는 게 핵심이다. 올해 정부는 주택도시기금을 통해 도시재생지원 사업에 2779억 원을 집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공기업과 지자체, 민간 등이 합착해 특수목적회사(REITs)를 설립, 노후 지역을 개발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올해의 4분의3이 지난 지난 9월 말 현재 집행률은 7.7%에 불과하다. 당초 계획은 상반기에 1330억원 등 연간 고르게 집행한다는 것이었지만, 9월까지 213억원만 썼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10월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런데도 국토부는 내년 도시재생리츠 등 출·융자사업에 올해와 비슷한 2725억원을 배정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도시재생사업은 쇠퇴지역을 활성화시키는 사업인 만큼 리스크가 크고 이해관계자가 많아 사업이 더뎌지는 부분이 있다”며 “규모가 큰 서울 창동 역사 주변 개발 사업에 대한 기금 심사가 완료되면 연말에는 전체 집행률을 60%선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주요 국정과제로 제시한 사업 중 집행률이 지지부진한 건 한 두건에 그치지 않는다. 국민안전처 주도로 추진하는 재난안전통신망 구축 사업은 올해 배정된 예산 1232억원 가운데 9월까지 54억원을 집행하는 데 그쳤다. 집행률은 4.4%다.

이 사업 역시 국정과제인 ‘통합적 재난관리체계 구축 및 현장 즉시대응 역량 강화’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사업이다. 경찰, 소방 등 재난관련 기관이 재난현장의 다양한 정보를 신속하게 전파·공유할 수 있는 피에스-엘티이(PS-LTE) 방식 전국 단일 무선통신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올해 상반기에 절반 수준인 652억원을 투입해야 했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사업자 선정 협상을 하고 있는 단계다. 연말 상당액의 예산 불용이 불가피하다.

새만금개발사업 지원 사업 역시 예산 510억원이 배정돼 있지만 9월 현재 4억원만 썼다. 0.9%의 집행률이다. 국정과제인 새만금개발의 경우 새만금 신항 개발 사업 집행률이 42.7%에 불과하는 등 전반적으로 더딘 편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민체육진흥기금으로 배정한 생활체육시설 지원, 스포츠산업 활성화 사업 역시 국정과제로 추진 중인 사업이지만 9월 현재 집행률이 62.2%, 57.9%다.

정부 국정과제 사업마저 이같이 집행이 늦은 것은 공약 달성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은 설익은 정책을 내놨다는 해석을 낳을 수밖에 없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정사업은 어떤 사업을 선택하느냐도 중요하지만 할당된 예산을 적당한 속도로 집행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집행률이 떨어진다는 것은 예산을 편성할 때 충분히 검토를 하지 않았거나 집행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세종=양영권 기자




더 써도 모자랄 판에…예산 절반 남은 일자리위



[불용예산해부]'고용정책 사령탑' 일자리위원회, 지난 17일까지 예산 집행률 49.4% 불과

'고용정책 사령탑'인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일자리위)가 올해 편성예산 중 절반(11월 17일 기준)을 쓰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고용 악화의 원인과 해법을 진단하고 제시해야 할 일자리위가 관련 예산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은 셈이다. 일자리안정자금, 청년추가고용장려금 등 주요 일자리사업 예산 불용률도 최소 10%를 넘을 전망이다.

20일 '재정정보공개시스템 열린재정'을 통해 일자리사업 예산 집행현황을 분석한 결과, 올해 일자리위 운영 예산 52억3100억원 가운데 지난 17일까지 집행액은 25억8500만원이다. 집행률은 49.4%다.

저조한 예산 집행률은 고용 악화에 뒤따르는 책임을 더 가중시킨다. 일자리위가 고용 개선을 위해 나랏돈을 추가로 사용해도 모자랄 판에 남겼기 때문이다. 일자리위는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첫 업무지시로 만들어졌다. 성과는 변변치 않다. 취업자 증가 폭, 고용·실업률 등 주요 일자리 지표는 올해 들어 크게 후퇴했다.

일자리위는 예산 집행이 연말로 갈수록 속도 낼 것이라고 해명했다. 일자리위 관계자는 "올해 이미 발주한 연구용역 예산 6억원 가운데 4억원은 결과가 나오면 바로 집행된다"며 "일자리아이디어 공모전이나 성과 평가 등 연말에 투입되는 예산도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역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예산을 고용 악화에 선제 대응해 쓰지 못해서다. 일자리위가 예상하는 최종 예산 집행률 전망치도 '80%+α'에 불과하다. 불용률이 최대 20%란 얘기다. 기획재정부가 전망한 올해 총예산 불용률인 2% 초반과 크게 차이 난다.

낮은 예산 집행률은 다른 일자리사업에서도 발견된다. 일자리안정자금, 청년추가고용장려금이 대표 사례다. 일자리안정자금은 최저임금 근로자를 고용한 사용주를 돕는 제도다. 최저임금 급등에 따른 비용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올해 처음 설계됐다. 청년추가고용장려금은 중소·중견기업이 청년 채용 시 연 900만원씩 최대 3년간 지원한다.

지난 17일 기준 일자리안정자금, 청년추가고용장려금의 예산 집행률은 각각 73.2%, 65.0%다. 일자리안정자금은 올해 예산 2조9737억원 중 2조1772억원을 집행했다. 청년추가고용장려금은 예산 3417억원 가운데 2227억원을 썼다.

소관부처인 고용노동부는 두 사업의 집행률 모두 연말에 오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자리안정자금은 사용주가 12월에 신청하더라도 최저임금 근로자를 그 전에 고용했다면 소급 적용받는다. 청년추가고용장려금도 지급 대상자가 연말일수록 많아져 예산이 더 투입된다. 하지만 고용부가 예상한 두 사업의 최종 집행률 역시 각각 80~85%, 85~90%에 그친다.

모성보호육아지원, 직장어린이집지원 예산 집행률도 각각 74.4%, 65.3%로 낮다. 육아휴직 급여와 출산 전·후 휴가급여로 이뤄진 모성보호육아지원 사업은 올해 예산 1조3111억원 중 지난 17일까지 3361억원을 아직 쓰지 못했다. 직장어린이집지원 예산은 1451억원 가운데 503억원이 남았다.

세종=박경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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