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전문가 ‘국어31번’ 풀어보니…“‘(M1*m2)/r^2’수식 넣어야 풀기 쉬워”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 2018.11.20 15:49

논리 추론이나 해석으로 풀기 어려운 ‘국어31번’…수식 능력 평가하는 물리 문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 및 가작을 동시에 수상한 작가이자 현재 포스텍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공학도 김초엽씨. /사진=김고금평 기자
2018 수능의 핵심 논쟁으로 계속 회자하는 국어 31번은 국어 능력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였을까. 이를 제대로 조명하기 위해 인문학과 공학 두 분야에 ‘전문가’로 통하는 이에게 직접 문제를 풀어보도록 권유했다.

주인공은 지난해 머니투데이 주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에서 중단편 부문 대상(‘관내분실’)과 가작(‘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동시에 수상한 작가 김초엽씨다.

김 작가는 심사위원 전원이 “문장과 구성, 아이디어, 장르적 이해, 과학적 정밀함 모두 탁월하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은 인문학적 재능을 ‘검증’받았고, 현재 포스텍에서 학사를 마치고 석사 과정에 있는 공학도다.

김 작가는 기자의 요구에 “잠시만요?”하며 가던 걸음을 멈추고 31번 문제를 찾아 풀었다. 한 1분쯤 지났을까. 문자로 정답을 알려준 뒤 나름의 배경을 덧붙였다.

“제가 수능국어를 준비할 땐 비문학-과학, 수학 영역 언어 문제를 많이 봤어요. 난이도도 있었고요. 논란이 됐다는 이번 문제는 전에 비해 특별히 어렵다는 느낌은 없고 비문학 과학지문 중 약간 난이도가 있는 정도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수능을 본 지 오래돼 최근 수험생과 체감은 다를 수 있다고 봐요.”

김 작가는 “별로 어렵진 않았지만 논란은 될 만하다”고 했다. 비문학-과학 해석 영역의 도입은 적극적으로 권장돼야 하지만 문제풀이에 필요한 능력이 수식을 잘 만드는 능력 같아 좀 꺼림칙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김 작가는 이 문제를 읽자마자 ‘(M1*m2)/r^2’이라는 물리학 방정식을 대입해 풀었다. 국어 문제인데 ‘과학적 공식’을 우선 갖다 쓴 셈이다. 김 작가는 이 방정식을 쓰고 원그림을 그려 각각의 미지수에 문장을 대입하는 방식으로 결과를 도출했다.


그는 “결국 수식을 써서 문제를 풀었다”며 “다른 과학기술 지문의 경우는 수식에 완전히 대입하기보다 도표나 그림을 해석하는 종류가 많았는데, 이번엔 좀 다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물리 공식을 대입하지 않고 인문학적인 추론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느냐고 물었다. 김 작가는 “문제의 서두에서 만유인력 수식 설명이 그대로 있긴 한데, 수식을 공부하지 않은 수험생은 이 문제를 수식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쉽게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논리로 이 문제를 풀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국어 과목에서 요구하는 학습능력과 일치하는지는 약간 의문”이라며 “차라리 교육과정 밖에 있지만 지문을 통해 추론 가능한 문제를 내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이번 수능에 응시한 서울 A고등학교 3년생 B양은 이과생인데도 문제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B양은 “고등학교 1, 2학년 때 공식을 배우긴 했지만, 3학년 때 선택 과목이 화학과 생물이어서 잊은 지 오래고, 국어문제여서 공식을 끌어올 생각조차 못 했다”며 “그렇다고 (국어적 능력으로) 지문 해석에 소중한 시간을 다 쓸 수는 없지 않느냐”고 볼멘소리를 냈다.

국어를 물리 문제로 인식하고 풀어야 하는 현실 수능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는 가운데, 일부 전문가들은 인문과 공학은 다르지 않고 서로 보지 못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김상욱 경희대 교수. /사진=임성균 기자
김상욱 경희대 교수는 최근 페북에서 입학시험이라는 괴물과 전쟁을 치르면서 공정성은 제도가 아닌 신뢰로 확보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김 교수는 “60만 명이 한꺼번에 치르는 시험에서 모두에게 공정한 시험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한 뒤 “지금과 같은 제도하에서 이런 논쟁은 계속될 것이며 공정성은 제도로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사이의 신뢰로 확보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국어의 읽기는 문학작품을 독해할 목적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글을 읽고 이해할 문해력을 갖추는 것이 목적”이라며 “물리학자도 수식을 글로 옮기면 난해하긴 마찬가지여서 수학이라는 언어를 사용한다. 우리가 국어를 배우면서 수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의 평가에도 국어와 과학 사이의 ‘영역 다툼’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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