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후보자는 관리형이니,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느니 하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때에 따라 그게 미덕이 될 수 있다. 고성장 시대에는 잉여가 늘어나기 때문에 지도자는 사회 구성원 전체가 누리는 이익을 강조해야 한다. 지금처럼 성장이 느린 시대에는 분배할 잉여가 줄어든다. 구성원의 희생과 양보를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홍남기 스스로 “소통이나 조정 능력은 남들만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가 부총리 내정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기마상 일화를 소개하며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것도 저성장 시대에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이다.
그가 맡게 된 경제 분야는 예측이 쉬운 게 아니다. 정부가 처음엔 올해 3%대 성장을 예상하다가 전망치를 2.9%로 낮추고, 이제는 그마저도 이루기 힘든 게 확실시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일자리 증가 폭은 당초 정부가 예상한 32만 명 수준에 턱없이 부족하고, 세수는 당초 잡은 계획보다 26조원이 더 걷혔다. 고려해야 할 국내외 변수가 많은 상황에서 예측이 틀렸다고 정부를 탓할 수만은 없다.
문제는 정부가 불확실성을 가중한다는 것이다. 대공황 때 신속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인내심을 요구한 영국 재무부 관리들에게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라는 말을 남긴 케인스를 추종하는 듯한 청와대 고위 인사들이, ‘성장 침체(Gowth recession)’라는 표현으로 경기 불황에 따른 정부 비판을 모면하려 한 시장주의자 레이건을 떠올리게 하는 발언을 하는 것을 보고 국민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미중 무역갈등과 유가 상승, 미국 금리 인상 등으로 불안한 상황에서 "위기의식을 가지라"는 요구에 "지금은 위기가 아니다"는 동문서답을 되풀이하는 정부를 보고 소통능력을 의심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홍 후보자는 적어도 자신이 왜 호명됐는지는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소득주도성장이나 포용국가니 하는 현란한 슬로건이 아니다. 주소만 보고 가면 길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는 도로명 주소처럼, 경제 참가자들이 선택의 순간에 좌표로 삼을 수 있는 정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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