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로봇, 인간으로 대하는 척 결국 도구화…전형적 의인화 피해야”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 2018.11.16 06:25

[인터뷰] 단편집 ‘삼사라’ 낸 한국 대표 SF작가 김창규…“비주류 영웅 통해 인공지능 재조명”

우주 공상과학소설을 모은 단편집 '삼사라'를 최근 내놓은 김창규 SF 작가. /사진=홍봉진 기자

그의 관찰력은 특별하다. 작가로는 관광으로 다녀간 지역의 흔적도 놓치지 않고 근사한 SF(공상과학소설) 세계를 주조하고, 심사위원으로는 다른 작품인데도 같은 작가임을 알아채는 ‘촉’도 뛰어나다.

비슷해 보이는 소재에서도 특별함을 채색하는 섬세한 능력에 SF어워드가 그냥 놔둘 리 없었다. 2014년 제1회 SF어워드 중단편 부문 대상을 시작으로, 이 대상만 3번이나 받은 저력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김창규(47) 작가는 이목을 끌기 위한 파격 소재를 일부러 끌어들이지 않으면서도 가벼운 정독을 허락하지 않는 정통 SF 작가의 본보기로 통한다. SF의 문학성을 엿보고 싶거나 과학적 근거의 논리를 따라가고 싶다면 간과하기 어려운 작가라는 얘기다.

그는 2016년 가까운 미래 지구에서 일어나는 소설만을 모은 단편집에 이어 최근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스페이스 오페라’(우주 공상과학소설)를 모은 단편집을 내놓았다.

‘우주의 모든 유원지’, ‘유가폐점’, ‘별상’, ‘망령전쟁’ 등 먼 얘기지만 곧 다가올 듯 선명한 내용들은 그의 과학적 식견과 문학적 관찰력이 오밀조밀 빚은 환상적 리얼리즘이다.

특히 책 제목이기도 한 ‘삼사라’는 2년 전 ‘제1회 한국과학문학상’ 부상으로 마련된 소록도 체험에서 인공지능과 인간의 ‘공존’을 모색하는 작품으로 완성됐다.

내용은 이렇다. 인류가 만든 인공지능이 우주로 퍼져 나가 은하계 주 종족으로 산다. 인류는 그러나 심각한 질병에 걸려 멸종 위기에 처하고, 인공지능은 격리된 인간을 만나기 위해 다시 지구로 돌아온다. 둘은 화합할 수 있을까.

“소설에서 보조역할을 하는 인공지능에는 더 이상 흥미를 못 느껴요. 로마 노예 얘기를 다루듯 하는 것이 지겹다고 할까요. 다가올 미래를 얘기할 때 주로 등장하는 인공지능에 대한 시각은 우리 일자리를 빼앗는 ‘위협적 존재’이거나 의인화를 통한 ‘소비의 대상’으로 정의하기 일쑤죠. 가장 흔한 테마가 여성형 로봇인데, 남성의 욕구 충족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들이에요. 그렇게 의인화한 뒤 속성은 로봇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거칠게 대하거나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기 쉬워요. 섹스로봇을 포함한 인공지능은 (인간이 만들었을지라도) 또 하나의 종(種)으로 봐야 하는데, 그렇게 보는 척(의인화)하면서도 결국 도구로 대하는 경향이 커진다는 거예요.”


김 작가는 인공지능에서 인간의 편린을 볼 수밖에 없으므로 인공지능은 “다른 종”이라고 규정했다. 다른 문화로 인정하지 않으면 오해나 화를 자초할 게 뻔하다는 것.

올해 데뷔 13년 차인 김창규 SF작가는 "모든 이의 입에 오르내리는 휘발되는 유행에는 큰 관심이 없다"며 "정통적 방식이긴 하지만 비주류 영웅의 도전을 통해 변화하는 세상을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사진=홍봉진 기자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대개 과학과 상식을 믿고 박애 정신을 보유한 건전한 회의주의자다. 반(反) 영웅적 인물이 많다. 드러나진 않지만, 변방에서 결정적 한 방을 안겨주는 숨겨진 영웅인 셈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숨어있는 영웅을 좋아했다”며 “핍박받거나 사회 주류와 이익을 공유하지 않는 인물에게서 느끼는 감동이 더 커서일지 모른다”고 했다.

생각의 깊이를 1cm 더 끌어당기는 흥미 유발 소재 작품들도 적지 않다. 두 가상현실 세계의 전쟁을 그린 ‘망령전쟁’,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을 닮은 ‘뇌수’, 인공지능 소재로 다룬 범죄물 ‘해부천사’ 등 넘기는 책장마다 맛보는 쾌감이 남다르다.

“이번 작품은 기술 수준이나 시·공간 스케일의 조합으로 경이감을 주려고 한 노력들이 많이 들어갔는데, 어떻게 느끼실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요즘 유행하는 장르나 기법을 혼용하지 않고 정공법으로 쓴 SF라고 봐야 할 것 같아요. 먼 미래는 변화의 속도가 비례하지 않고 도약이 심해 제 작품을 읽는 독자들에게 그 거리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나름의 쿠션 같은 역할은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지난 2005년 ‘별상’으로 제2회 과학기술창작문예 중편 부분에 당선되며 데뷔한 김 작가는 10여 년간 꾸준히 카멜레온 같은 소재로 독자와 만나왔다. 다원적 소재를 찾는 비결이 궁금하다고 하자, 그는 “그냥” 하며 무심하게 내뱉었다.

“덧붙이자면 무의식적으로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휘발되는 유행에는 큰 흥미가 없어요. 제가 매일 느끼고 부딪히는 일상이 소재라면 소재랄까요. 너무 나태했나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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