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 무료' 빌 게이츠가 불 댕긴 오픈액세스…韓은?

머니투데이 진행=성연광 정보미디어과학부장, 정리=류준영 기자, 사진=이기범 기자  | 2018.11.12 04:00

[전문가 좌담회]국내 오픈액세스 현 주소와 활성화 전략

편집자주 | “2020년부터 우리가 투자한 연구 논문은 전부 무상으로 제공하겠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세운 빌&멜린다게이츠재단과 영국의 웰컴트러스트가 지난 5일(현지시간) 유럽 오픈액세스(Open Access, OA) 합류를 결정하며 이같이 선언했다. OA는 학술지에 등록된 논문을 고가의 구독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인터넷에서 누구나 무료로, 자유롭게 볼 수 있게 하자는 운동이다. 빌&멜린다게이츠 재단과 웰컴트러스트이 의·생명 분야에 투자하는 연구기금은 각각 연간 12억 달러(약 1조 3500억원), 13억 달러(1조 4700억원) 규모에 달한다. 두 재단의 행보는 글로벌 사회에서 활발해지고 있는 OA 운동의 현 주소를 대변한다. 이들 예산이 투입된 연구자 논문이 전부 무상 공개될 경우, 기존 연구 논문 유통 패러다임에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데이터 개방에 지나치게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본지는 김재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국가과학기술데이터 본부장, 정호석 인포베이스 대표(기술거래사), 차미경 이화여대 문헌정보학과 교수(한국문헌정보학회회장) 등을 초빙, ‘국내 오픈액세스 현 주소와 활성화 전략’이란 주제로 좌담회를 진행했다.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차미경 이화여대 문헌정보학과 교수(한국문헌정보학회회장), 성연광 정보미디어과학부장(사회), 정호석 인포베이스 대표(기술거래사), 김재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국가과학기술데이터 본부장이 좌담회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이기범 기자

◇갈수록 높아지는 논문 접근 장벽…“올해를 오픈액세스(OA) 원년으로”

-OA 운동 왜 해야 하나

▶김재수 KISTI 국가과학기술데이터 본부장(이하 김 본부장)=국가R&D 예산이 투입된 논문 등의 과제 성과물이라면 국민 모두가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출판사에 많은 돈을 지불하며 그 논문들을 보고 있다. 돈을 낼 형편이 안 되는 소외된 이용자는 누가 책임질 건가. 공공이 나서서 해결해 줘야 한다. 해외에선 OA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었다. 우리나라는 시작이 늦은 편이나 올해를 OA 원년으로 다양한 시도가 진행될 예정이다.

▶차미경 이화여대 문헌정보학과 교수(이하 차 교수)=연구자가 논문을 발표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자신의 연구성과를 다른 학자들과 공유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지식·사회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모두가 연결되는 인터넷 환경에서 학술정보커뮤니케이션은 연구성과가 보다 자유롭게 확산·이용되는 방향으로 개선돼 갈 것으로 믿었으나 오히려 접근 장벽만 높아지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학술지 출판사와 학술데이터베이스(DB)사업자들이 서비스 개선을 이유로(구독)가격을 올렸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접근·이용을 방해하는 장벽을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학자, 중간에서 학술정보를 유통하는 도서관 등이 함께 힘을 모아 개선해 나가야 한다.

▶정호석 인포베이스 대표(이하 정 대표)=유럽에선 연구성과 공개가 일반화돼 있다. 소프트웨어(SW) 소스와 회로도도 공개할 정도다. 중소기업은 외부로 공개된 공공의 연구성과를 자신들의 기술이나 제품에 접목해 업그레이드 하는 방식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우리나라에서도 OA 관련 정책·제도를 내놓고 이를 확산할 필요가 있다.

차미경 이화여대 문헌정보학과 교수(한국문헌정보학회회장)/사진=이기범 기자

◇국내학회·기관 첫 OA 선언…기관별 맞춤형 오픈정책 수립·적용해야

-문헌정보학 분야 8개 학술지가 OA 공동추진을 위한 선언문을 발표했다. 어떤 의미가 있는가.

▶차 교수=다른 학회에도 널리 알리고 싶었다. 무엇보다 연구자에게는 자신의 연구성과를 더 널리 확산시킬 수 있고, 연구비를 지원한 정부나 대학 등에게는 그 연구비를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를 기대했다.

OA 출판은 새로운 기술적 처리와 출판의 전 과정을 지원하는 출판플랫폼, 안정적인 출판비용이 확보될 때 가능하다. 이것은 개별 학회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공공 영역의 학술정보서비스 기관, 연구비지원기관, 학술연구도서관의 지원과 협력 하에서만 가능하다.

▶정 대표=어떤 기술이 개발됐을 때 그 기술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미리 알아보는 인문학적 융합연구가 최근 많아지고 있다. 때문에 인문학을 전공한 연구자들도 공학분야 기술 DB를 자유롭게 이용하기를 원한다. 공공재 성격을 지닌 연구 결과물을 한곳으로 모으고, 누구나 손쉽게 접근해 쓸 수 있게 하는 OA 플랫폼은 반드시 필요하며, 공학이나 인문학 등 계열 구분 없이 통합적인 관점에서 디자인돼야 한다.

-KISTI도 지난달 국내 연구기관 최초로 OA 정책 도입을 선언했다.

▶김 본부장=우리가 가진 모든 연구성과물을 외부에 개방해 누구나 마음껏 쓰게 하겠다는 중대한 선언이었다. 기관장 입장에서 이런 약속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기 쉽지 않았다. 그 약속을 지켜나가는 과정에 어느 것 하나 호락호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KISTI 입장에선 정부로부터 OA 운동을 주도해 달라는 임무를 받았기 때문에 당연했다. 하지만 다른 연구기관은 고민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원자력이나 항공·우주 등 거대 프로젝트를 다루는 기관일수록 ‘오픈’이란 말에 거부감이 있고, 결정하기도 힘들다. 이런 경우 “이 부분은 완전히 오픈하고, 저 부분은 일정 조건을 내건 조건부 형태로 오픈하라”는 식의 전문가들의 컨설팅을 받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공공 연구기관이니까 가진 것 전부 공개하라는 게 아니다. 기관별 맞춤형 오픈정책을 수립해 적용할 필요가 있다.

-기업은 OA를 통해 어떤 효과를 얻나.

▶정 대표=OA를 통해 기업이 보유한 기술의 질을 높일 수 있다. 공개된 논문을 통해 새로운 기술 개발 방향을 정할 수도 있다. OA를 통해 모인 자료들은 아이디어 보고(寶庫) 역할을 한다. 정부가 창업을 강요하기보다는 다수의 국민들이 유익한 정보를 간편하게 얻을 수 있는 기반을 닦는 투자를 해야 한다. 그러면 창업 아이디어를 얻게 돼 자연스럽게 창업 일선에 나서게 되는 창업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다.


김재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국가과학기술데이터 본부장/사진=이기범 기자

◇간편한 ‘플랫폼’ 필요…‘국가오픈액세스리포지터리’ 내년 추진

-범정부적인 OA 플랫폼이 강조되고 있다. 어떻게 설계돼야하나

▶정 대표=국내 최대 과학기술정보서비스인 NDSL(국가과학기술정보센터)의 경우 회원 가입 절차 없이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국가 기관이 만든 플랫폼은 회원 가입이 필수다. 중소기업은 직원들의 이직이 많아서 회원 정보 관리가 쉽지 않다. OA 플랫폼도 NDSL처럼 가입 절차 없이 개방되면 좋겠다.

▶김 본부장=논문의 실제 원문은 출판사가 가지고 있다. 현재 상태로 OA 플랫폼을 구축한다면 이용자가 찾고자 하는 정보를 가진 출판사 문 앞까지 안내해 주는 정도의 서비스에 그칠 것이다. 우리가 논문 구독 비용을 모두 대 줄 순 없다. OA 플랫폼이 실용성을 갖추려면 이런 부분까지 고려되어야 한다.

▶차 교수=공개된 좋은 논문을 누구나 쉽게 접근해 이용할 수 있도록 장벽을 없애는 기술 개발 작업도 빼놔선 안 된다.

▶김 본부장=플랫폼은 개별학회가 관리·운영하기 버거울 뿐만 아니라 기관차원에서도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래서 ‘국가OA리포지터리(저장·공유사이트)’ 구축계획을 세웠다. 정부 예산증액사업으로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이다. 학회 혹은 다른 기관들 수요에 맞게 디자인되고 서로를 연계하기 위한 네트워크 구축 등도 함께 고려하고 있다.

정호석 인포베이스 대표(기술거래사)/사진=이기범 기자

◇데이터 개방하면 다음 공모에 가점…“부실학회 문제 자연스럽게 해결”

-연구데이터 공유·활용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앞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김 본부장=지금은 데이터를 개방하라고먼 하지, 그것에 대한 보호나 인센티브 정책들이 아직 불투명하다. 연구자들이 데이터를선뜻 내놓기 꺼리는 이유다. 제도만으로 안 된다. 당위성이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인센티브다. 연구 데이터를 개방하자고 하면 대부분 첫 질문이 “인센티브가 뭐냐”다. 가령 데이터를 잘 관리해 개방하면 다음 연구개발 과제 공모때 가점을 주는 보상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데이터 거래가 이뤄지면 인센티브를 추가로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다. 연구 데이터 공유·활용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가 공동관리규정을 개정하려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정 대표=OA 문화가 정착하면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부실학회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OA 플랫폼을 통해 대중으로부터 객관성을 입증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픈액세스 플랫폼에 기록된 열람 빈도수나 인용 빈도수는 논문 검증의 가장 확실한 툴(도구)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연구자 자신의 명성도 올라갈 것이다. 또 해당 기술 분야의 질적 성장이 가능한 선순환 구조로 가는 기회도 안겨줄 것이다.

▶차 교수=현재 국가로부터 연구비 지원을 받고 있는 경우, 연구 완료 후 결과물을 더 정리해 학술논문으로 출판을 하게 되는데, 연구 종료와 동시에 모든 연구비가 정산된다. 따라서 학술지 투고비용을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연구비를 지원하는 기관에서 연구자가 논문출판에 드는 비용까지 포함해 정산할 수 있도록 연구비 관리 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김 본부장=그건 특허도 마찬가지다. 등록을 유지해야 하는 데 연구비 지원이 끊어져 계속 유지를 할 수 없다. 연구예산의 일정 부분을 풀링(pooling)으로 돌려 특허등록 유지, 학술논문 투고 등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 등을 고려해야 한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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