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박용만, 서른아홉번의 구애

머니투데이 임동욱 기자 | 2018.11.06 15:45

편집자주 |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요새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면 '글루미 픽처'(비관적 전망)가 떠오릅니다. 제 마음이 그렇네요"

지난 5일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전국 상공회의소 회장단 회의에 참석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평소와 달리 자주 한숨을 쉬었다. 특유의 유쾌함과 밝은 에너지는 여전했지만 표정은 어두웠다.

지난 7월 대한상의 제주포럼 당시 경제 상황에 대한 질문에 "해야 할 숙제가 안 보일 정도는 아니다"며 희망을 놓지 않았던 것과는 결이 달랐다.

박 회장의 화두는 '규제개혁'. 그는 현재의 상당수 규제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수준까지 갔다고 질타했다. 한국 경제가 구조적 하향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일을 막 벌이게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여전히 규제가 꿈쩍하지 않고 앞길을 틀어막고 있다는 것.

박 회장은 지금까지 정부에 규제개혁 리스트를 총 39번 제출했다고 했다. 발로 뛰는 그의 스타일은 과로를 불렀고, 남몰래 '링거 투혼'도 불사했다. 그의 목소리에선 실망을 넘어 절망이 느껴졌다. 그는 "어디다 하소연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박 회장은 최근 대통령을 수행해 백두산 천지를 방문하고 바티칸에서 교황을 함께 알현한 실세 경제인이다. 현재 재계에서 박 회장보다 현 정권의 최고 핵심과 긴밀히 소통할 수 있는 이는 찾기 어렵다. 그의 입에서 이 정도 이야기가 나올 정도니, 규제개혁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 짐작이 간다.

태생적으로 규제는 풀기 어려운 족쇄다. 규제를 완화하거나 없애면 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본의 아니게 피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규제를 풀면 세상에 혼란이 올 수 있다는 불안도 한몫을 한다. 사회구성원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점도 난제다. 힘들게 규제를 풀어도 다른 쪽에서 새로운 규제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올 가능성도 있다.

박 회장은 "규제의 '공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규제를 왜 풀어야 하는지 설명해야 하는 현 제도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생명, 안전을 제외한 모든 규제를 자유롭게 풀어놓은 상태에서 꼭 지켜야 하는 규제가 있다면 왜 있어야 하는지, 그 정당성을 증명하는 분위기로 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잘라 버린 것과 같은 단호하고 창의적인 결단만이 판을 바꿀 수 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한 우리 사회가 규제의 '공수 전환'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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