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4대문 안 문화재 보존의 결정판, 공평도시유적전시관

머니투데이 신희권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 2018.11.06 05:44
1980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서울시에서 이뤄진 매장 문화재 조사는 주로 국가에서 주도한 경복궁 등 궁궐의 정비·복원을 위한 발굴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반 문화재 보존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4대문 안은 경제 성장과 함께 도심 재개발에 따른 대규모 개발이 빈번히 행해져 600년 역사를 간직한 땅 속의 문화재가 속수무책으로 사라져가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했다.

이후 문화재 보존의 중요성에 눈뜬 서울시는 지난 2004년 ‘청진 6지구 재개발사업’부터는 4대문 안에서 이뤄지는 개발 사업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문화재 발굴조사를 실시하도록 했다. 그 결과 청진지구를 비롯한 4대문 안 지역에서 조선시대 초기~근현대에 이르는 시대별 시전행랑과 피맛길, 마을 흔적이 속속 드러났고, 백자 달항아리 등 국보급 유물이 다량 출토됐다.

하지만 이처럼 중요한 조선시대 유적과 유물이 나오더라도 재개발사업지구라는 특성상 개발 사업을 포기하고 문화재를 보존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에 따라 발굴된 유적 중 중요성이 남다르거나 보존 상태가 양호한 일부 유구에 한해서만 사업대상 지역 내에 이전 복원하는 방식이 채택됐다. 그 결과 청진 12~16지구 그랑서울나 청진 2,3지구 등과 같이 일반인들이 통행하며 볼 수 있도록 지상 1층에 중요 건물지 2~3기, 우물, 석축 등을 이전 복원하고, 건물 벽면에 토층 또는 유구 모형을 전시하거나 설명판을 설치하는 방식이 적용됐다.

일반인들이 원래 위치에서 발굴된 유적의 일부를 볼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었다. 하지만 보존된 유구 위에 강화 유리를 설치해 제대로 관람하기 어렵다거나 안전사고 우려가 크다는 점은 숙제였다. 사업 시행자에게만 맡겨 놓은 유적의 사후 관리도 쉽지 않았다.

이 같은 문제가 제기되자 최근 중요 문화재가 발굴된 경우 서울시청 지하 군기시 유적 전시관과 종로 육의전 박물관, 파고다어학원 지하 유구 전시관 등과 같이 최소 지하 1개층을 확보해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고 보존이 잘 된 유구 전체를 면 단위로 보존하는 방법이 새롭게 등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전시관 건립이 가능하려면 유적 전시관을 조성하는 대신 사업시행자에게 상응하는 인센티브 제공도 뒤따라야 한다는 점이 과제였다.

이런 가운데 유적 보호를 위한 강력한 의지를 표방하던 박원순 서울시장의 노력으로 공평지구 유적 전체를 보존한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 탄생했다. 공평동 개발에서 발굴된 유구를 전면 보존하기 위해 사업시행자에게 용적률을 상향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기존 22층 건물에서 26층으로 조정)을 도입한 것. 사업시행자가 문화재가 발굴된 지하 1층에 유구 전시관을 조성한 후 기부 채납하는 대신 건물을 더 올리도록 해 손해를 보지 않도록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앞으로 이러한 제도가 얼마나 잘 정착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공평도시유적전시관 건립 사례가 기존의 문화재 보존 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조선시대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서울 도심으로 바꾸어 놓은 결정판이 된 것은 분명하다. 서울에서 시작된 모범은 우리나라 전 지역의 매장문화재 발굴 및 보존 정책에도 큰 시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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