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소비할 땐 사치지만 필요할 땐 취향”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 2018.11.02 06:00

[따끈따끈 새책] ‘브랜드 인문학’…나는 왜 특정 브랜드에 끌리는가

라면을 끼니로 때우면서 프라다를 입고 샤넬 백을 들고 다니면 손가락질 받던 시대가 있었다. 때론 ‘된장녀’로 불리며 명품을 갈망하는 이들은 욕망으로 소비하는 ‘찌질이’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욕망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잠시 성찰할 필요는 있다. 우리가 접속하는 브랜드를 통해 나의 욕망이 어떤 색깔을 띠는지 살펴보면 나의 정체성을 찾는 하나의 키워드가 될 수 있기 때문.

그것이 단순히 욕망의 소비인지, 정체성 찾기 운동인지는 소비의 맥락에 따라 결정된다. 명품이 불필요한 소비가 될 때 사치가 되지만, 필요한 것이 될 때는 취향이 된다.

저자는 “특정 브랜드가 어떤 지점에서 나의 취향을 만족시키는지 따라가다 보면 나의 무의식이 무엇을 욕망하는지 알게 된다”며 “브랜드 취향은 결국 나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창의력을 깨우는 키워드”라고 설명했다.

브랜드(brand)는 그리스어 ‘스티그마’로, 뾰족한 바늘로 찌른 자국을 의미한다. ‘타투 레터링’(문신 새김)쯤으로 해석될 브랜드는 그리스 시대 반란을 꾀하라는 메시지를 비밀리에 전달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브랜드는 곧 문신이 새겨진 대상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 노예의 살갗에 새겨 반란을 지시한 문신은 그 노예가 특사라는 것을 가리켰고 가축에 문신한 것은 그 가축의 소속을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유명한 브랜드들에는 또렷한 정체성이 녹아있다. 프라다에 끌린다면 ‘우아한 실용성’이, 발렌시아가에 끌린다면 ‘귀족적인 품위’가 자신의 감각이 지향하는 정체성일 수 있다. 이 같은 취향은 각자 분야에서 혁신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허영이나 시장적 취항에 대한 저항력이 되기도 한다.

디자이너로 성공한 샤넬은 거의 모든 인터뷰에서 가상의 자아상을 꾸며대기 일쑤였지만, 실제론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시골 수도원에서 고아로 성장했다. 하지만 악취 나는 과거 속에서 샤넬은 수도원 시절 수녀원들이 가꾸던 시나몬, 레몬 같은 향기를 기억해 내고 다시 일어나 세계적인 향수 ‘넘버 5’를 만들었다.

프라다도 과거 잠재력을 재료로 혁신의 아이콘이 됐다. 사회당원이자 페미니스트로서의 신념을 특별한 패션 감각으로 승화했기 때문. 당시 많은 디자이너들이 여성의 육감적인 몸을 드러내려고 애쓴 반면, 미우치아 프라다는 우아함을 살리면서 여성의 자유로움을 극대화하는 단순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과감히 선보였다.


코르셋을 유쾌하게 비틀어 주목받았던 디자이너 비비언 웨스트우드는 17세기 프랑스 로코코 화가들에게 영감을 받았고, 지방시는 패션 창작에 ‘고딕성’을 끌어들였다.

접속과 배치를 통해 특정 방향으로 향하던 욕망은 몸에 배면서 취향이 된다. 브랜드에 대한 욕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운전하는 손, 지휘하는 손, 악수하는 손의 정체성은 손 자체에 있지 않고 접속과 배치를 통해 확립되기 때문.

저자는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철학을 인용해, 이를 ‘기계적 욕망’이라고 불렀다. 이 욕망이 몸에 배느냐 아니냐에 따라 취향도 결정된다.

저자는 “자본에 의한 문화의 평준화는 무취향을 만드는데, 그것은 결국 후기 시민사회에서 골머리를 앓게 만드는 사치를 조장한다”며 “대중문화가 아니라 ‘무취향적’ 사치가 하류문화인 것”이라고 했다.

들뢰즈 철학의 핵심은 ‘리좀’. 땅속줄기형 네트워크인 리좀은 이질적이고 다양한 개체들이 줄기에서 떨어져 나와도 ‘탈주선’을 만들어 또 다른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탈주’는 현실을 외면하는 도피나 도주가 아니라 새로운 생성을 의미하는 역설의 개념이다.

들뢰즈는 또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통해 아직 실현되지 않은 잠재력은 감각으로 자극받을 때 실현될 수 있다고 봤다. 우리가 어떤 감각에 자극받아 무엇을 욕망하는지, 그 욕망이 내 몸과 접속해 취향으로 발전할 때 ‘탈주선’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주목해야 한다는 의미다.

저자는 “예술가들과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욕망을 어떻게 추상화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는지 ‘창의력의 비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 역시 감각의 자극을 통해 새로운 눈을 떠야 하지만 하나의 자극에 안주하거나 종속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브랜드 인문학=김동훈 지음. 민음사 펴냄. 488쪽/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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