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의 중심에서 구토물을 쓸다[남기자의 체헐리즘]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 2018.10.27 06:10

마포구 환경미화원 8시간 체험…얄궂게 안 쓸리던 전단지, 끝도 없는 낙엽, 온몸 두들겨 맞은듯

편집자주 |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보이지 않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하고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매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고 다니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전달하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새벽 5시, 홍대 번화가서 쓰레기를 쓸고 있는 기자. 빗자루가 빠르게 움직이는 것처럼 나왔지만, 사실 버벅대고 있다. 다리가 좀 짧게 나왔지만 실제는 더 길다. 바지가 커서 내려온 탓이다./사진= 마포구 청소행정과 관계자
밤이 길어 어스름한 어둠이 드리운 새벽 5시. 홍대 한 술집 앞에 청춘(靑春) 남녀가 주저 앉아 있었다. 여성 머리는 자꾸 길바닥에 수렴하고 있었다. 취한듯 보였다. 불안한 예감은 적중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엔 '부침개(고통의 은유적 표현)' 두 장이 곱게 부쳐져 있었다. 구토물이었다. 빈 생수통 여러개도 굴러 다녔다. '저건 어떻게 치우지' 고민하는 순간, 환경미화원 이종석씨(44)가 말했다. "모래를 뿌리면 돼요." 이씨는 많지 않다며 빗자루로 구토물을 쓸어 담았다. 같이 거들었다. 그때 '우에엑' 하는 찰진 소리가 골목 안쪽서 들렸다. 또 다른 여성이, 그날 먹은 안주가 잘 소화 됐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이씨는 "골목 안쪽까진 치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클럽 앞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인도 아래 쪽이 쓰레기 투성이였다. 찢긴 비닐 속 술병, 에너지 음료 캔 등이 나뒹굴었다. 깨진 유리 파편들은 차도까지 굴러 다녔다. 수십여개는 됨직한 담배꽁초도 버려져 있었다. 이와 잘 어울리는 클럽 음악이 쿵쿵 울렸다. 치우고 있자니 이씨가 "차 조심하라"고 했다. 등 뒤로 차들이 쌩쌩 달리는데, 미처 몰랐다. 이씨는 "환경미화원은 뒤에도 눈이 달려 있어야 한다"고 했다. 작업복이 '형광색'인 것도 밤에도 눈에 잘 띄기 위한 것. '운전자가 조심하겠지' 생각하다간 큰일 났다고 했다. 음주운전도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는 늘 손을 떠나면 그만이었다. 가끔 심한 쓰레기(남긴 음료수 더미 등)를 볼 때면 '저거 어떻게 치우지' 생각 정도였다. 어떻게 치워지는지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그러던 지난 여름 어느 날, 한 광경을 마주했다. 아이가 과자 봉지를 흔들어 우르르 쏟아졌는데, 엄마가 한 번 보더니 쓱 가버렸다. 과자는 행인들 발에 밟혀 난리가 났다. 다음날, 그 곳은 깨끗해져 있었다. 그 때 처음 '치우는 사람'에 대한 생각을 했다. 어느샌가 조용히 치우고 사라지는, 환경미화원 말이다.
/그래픽=유정수 디자인기자

고맙고도 고단한, 없어서는 안될 이들의 삶이 궁금했다. 노동 환경은 열악하다 했고, 최근엔 사고도 잇따랐다. 지난 2월엔 서울 용산구 도로서 쓰레기 수거 차량 컨테이너 교체를 하던 환경미화원이 유압 장비에 끼여 숨졌다. 지난해 11월 광주에선 쓰레기 수거 과정에서 후진 차량에 치이는 등 2명이 숨졌다. 2015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사망한 환경미화원이 15명, 다친 사람이 1465명이나 된다.

그래서 하루 환경미화원이 돼 보기로 했다. 기왕 하겠다 맘 먹으니 '쓰레기 많은 곳'이 떠올랐다. 홍대 번화가다. 강북 유동 인구 1위, 하루 10만명 넘게 다니는 곳이다. 서울 마포구청 공보담당관 언론팀과 청소행정과 협조를 구했다. 환경미화원 분들 일하는데 방해되지 않겠다 했다. 김건탁 청소행정과장이 "환경미화원들 고생하는 것 잘 전해달라"며 흔쾌히 수락했다. 25일 새벽 5시부터 오후 3시까지, 다른 환경미화원들과 똑같은 하루였다.



기상 시간, 새벽 4시…'출근'도 힘들었다




어스름한 새벽, 버스도 아직 오기 이른 시간에 환경미화원들은 출근을 한다. 시민들이 출근하기 전 깨끗한 거리를 만들기 위해서다./사진=남형도 기자

기상은 새벽 4시, 평상시보다 2시간 빨랐다. '그냥 자면 어떡하지' 걱정돼 알람을 5개 맞췄다. 새벽 3시50분, 3시52분, 3시55분, 3시57분, 4시. '하나는 듣겠지', 하며 전날 밤 10시에 누웠다. 잠이 안 왔다. '아직 잘 시간 아닌데?'라고 몸이 거부했다. 밤 11시가 넘어 잠든듯 했다. 이튿날 새벽, 알람이 4개째 울린 뒤에야 겨우 일어났다. 창 밖이 칠흑 같이 어두웠다. 찬물 세수를 여러번 하고 집을 나섰다. '호오오' 부니 입김이 길게 뻗어져 나왔다. 차디찬 새벽 공기를 맞으니 그제야 잠이 좀 깼다.

약속 장소인 홍대로 가는 것부터 문제였다. 평소 근검 절약을 하는 지라(사실 돈이 없어서) 택시비가 아까웠다. 차를 가져가자니 주차가 마땅 찮을 것 같았고, 버스를 타려고 보니 차고지 출발 첫 차가 새벽 4시20분이었다. 기다렸다간 5시까지 못 갈 것 같았다. 아쉬운 맘에 버스 정류장을 서성이다 택시를 탔다. 한 6000원 정도 나왔다(까비!). 매일 이리 어떻게 출·퇴근하나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이른 출근 탓에 근무 지역 근처에 많이 산다고 했다. 아니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기도 한단다.

새벽 5시 정각에 환경미화원 '휴게실'에 도착했다. 홍대 번화가에 있었다. 지나다니며 가끔 봤던, 컨테이너 박스였다. 안에 들어가 형광 초록색 작업복(105 사이즈)으로 갈아 입었다. 작업 반장이 새벽이라 추울 수 있다며, 겨울용으로 준비해줬다. 바지는 갈아 입고, 안에 반팔만 입은 뒤 두툼한 겉옷을 입었다. 이어 보호 헬멧을 쓴 뒤, 작업용 목장갑을 꼈다. 빗자루·쓰레받기를 챙기자 준비가 끝났다.

환경미화원 업무 중 '가로청소(도보로 이동하며 청소작업 진행)'를 하기로 했다. 그외에도 생활폐기물과 음식물류 폐기물, 재활용 폐기물, 대형폐기물 수거 등이 있다. 작업은 총 3번에 걸쳐 이뤄진다고 했다. 새벽 5시부터 오전 8시까지 1차 작업, 8시45분까지 아침 식사 후 휴식, 오전 9시부터 낮 12시까지 2차 작업, 오후 1시까지 점심 먹고 휴식, 오후 3시까지 3차 작업을 한다고 했다. 1차 작업은 홍대 상상마당 인근 좌우 인도, 2차 작업은 합정 일대 거리, 3차 작업은 1차 작업 구간을 다시 치우는 거였다.



'전단지·명함' 폭격, 다섯 번 빗질에 겨우 쓸려




홍대 번화가에 각종 유흥업소 전단지들이 널브러져 있다. 이 같은 전단지들이 길건너까지 즐비하게 뿌려져 있었다. 빗질 한두번엔 잘 쓸리지도 않았다. 무심코 뿌리는 건 순식간인데, 그 때문에 환경미화원들의 고단함은 배가 된다./사진=남형도 기자

첫 작업 장소는 홍대 상상마당 좌우로 펼쳐진 로데오 거리. 환경미화원 3년차 이종석씨(44)가 함께 했다. 손수레를 끌고 도착하자마자 잠이 확 깼다. 무단투기 쓰레기가 장관이었다. 빨갛고 파랗고 하얀 유흥업소 광고 전단지가 바닥에 쫙 깔려 있었다. 자주 다녔지만 첨 보는 '민낯'이었다. 이미 청소가 끝난 뒤라 몰랐던 거였다. 사이사이 담배 꽁초는 사이드 메뉴였다. 이씨는 "목요일이라 평소보다 적은 편"이라며 "일요일엔 이것보다 3배 많다"고 했다.

한쪽으로 쓴 뒤, 한꺼번에 담기로 했다. 야심찬 첫 빗질부터 실패였다. 전단지가 생각보다 안 쓸렸다. 바닥에 찰싹 들러 붙어 얄밉게 굴었다. 최소 서너번, 많게는 다섯 번씩 빗질해야 쓰레받기에 겨우 안착했다. 양손으로 더 힘차게 빗질을 했다. 맘 처럼 안되니, 빗자루를 점점 짧게 잡게 됐다. 허리도 점점 숙여졌다. '이거 뿌린 X 누굴까'를 계속 생각했다. 씨름하는 모습을 본 이씨가 "그렇게 하면 허리가 너무 아플 것"이라고 했다. 허리를 펴고 길게 잡으라 했다. 자세를 고쳐 잡아도 자꾸 되돌아 갔다.

이씨는 상당히 능숙했다. 한손으로 빗질 해도, 전단지를 척척 넣었다. 뭔가 비법이 있는 것 같아 묻자, 노하우를 알려줬다. 빗자루가 한쪽은 길고, 한쪽은 짧은데 '긴 쪽'으로 전단지를 툭 쳐서 넣으라 했다. '스냅' 이었다. 탁 치니 촤르르, 한결 수월하게 잘 됐다.

전단지에 적응되자, 새로운 복병이 등장했다. 유흥업소·대출 등 광고 명함이었다. 쪼그매서 더 잘 안 쓸렸다. 이씨 비법을 적용해도 잘 안됐다. 아예 안 쓸리거나, 쓸려도 쓰레받기 밑으로 쏙쏙 빠져나갔다. 약이 바짝 올라 손을 뻗어 움켜 쥐었다. 허리를 반복해서 숙이니 더 힘들었다. 기진맥진, 땀방울이 줄줄 떨어졌다. 청소 시작 불과 20분 만에, 그것도 20도가 안되는 새벽에. 이렇게 땀 흘린 건 폭염 이후 처음이었다. 반팔만 입고 해도 될만큼 몸이 더웠다.



떡볶이 국물, 남은 음료수, 뱉은 침들까지




길 한쪽에 버려진 쓰레기들. 누군가 먹다 남긴 떡볶이 국물, 물통, 꼬치 막대기 등이 질서 없이 놓여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쓸어낼 수록 '천태만상(千態萬象)'이었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엔, 치우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전혀 없었다. 그냥 누군가 치우겠지 하고 생각나는대로 버린 것들이었다.

담배꽁초는 차도·인도 가릴 것 없이 수북했다. 피운 뒤 아무렇게나 던진 것들이었다. 도로 전체에 걸쳐 있으니 치우기 쉽잖았다. 심지어 쓰레기통 바로 옆에도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었다. 그냥 습관처럼 보였다. 보도블럭 사이사이나, 가로수 아래쪽 쇠 지지대에 박힌 건 빼는데 진땀을 뺐다. 차라리 맨바닥에 버리는 게 치우기 편했다. 보다 못해 손으로 주웠다. 이씨는 "환경미화원 하기 전엔 담배꽁초를 길에 버렸는데, 이젠 쓰레기통 없는 곳에선 아예 안 피운다"고 했다. 치우는 환경미화원 심정을 알게됐을 터였다.
길거리에 함부로 버려져 있는 음식물 쓰레기들. 조금만 신경써서 버려도 환경미화원들이 감당할 수고를 덜 수 있을 것이다./사진=남형도 기자

음식물 쓰레기도 만만찮았다. 폐기물로 따로 치워야 함에도, 그냥 내다버린 것들이 많았다. 먹다 남은 음료수가 가장 많았다. 그나마 어딘가에 전시해두는 건 예의 바른 케이스였다. 음료가 바닥에 흘러서 번져 엉망이 된 곳도 많았다. 일일이 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버린 뒤 치워야 했다. 먹다 남은 배달음식을 비닐에 한꺼번에 싸서 쓰레기통 옆에 둔 경우도 있었다. 먹다 남은 떡볶이도 바닥에 놓여 있었다. 아까워서, 다음날 다시 와서 먹으려고 한 걸까.

구토물은 뭣보다 비위가 상했다. 유흥가라, 길에 구토한 흔적이 종종 보였다. 대학생 때 '구토의 추억'이 떠올랐다. 그걸 치웠을 환경미화원은 기분이 상했을 것이다. 15년 만에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 특히 바닥에 뱉어진 침과 쓰레기가 만나니 '찰떡궁합'이었다. 쉬 떨어지지 않아 빗질하는데 애먹었다. 치우는 순간에도 행인들이 침을 아무렇게나 찍찍 뱉는 게 보였다. 대학생으로 추정되는, 한 남성이 바로 앞에서 침을 뱉는 것도 목격했다. 순간 빗자루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화(火)를 다스렸다. 환경미화원에게 '단속 권한'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사람도, 車도 같이 치워야 했다




홍대 거리에 불법 주차돼 있는 차량. 이는 경계석 밑 쓰레기들을 치우는데 큰 걸림돌이 됐다./사진=남형도 기자

단순히 쓰레기 치우는 게 다가 아녔다. 쓰레기를 치우려니 행인, 서 있는 사람과 불법주정차 차량이 '걸림돌'이었다.

최대 번화가인 만큼, 새벽 5시에도 행인이 많았다. 관광객·외국인들도 많았다. 오전 7시45분까지 1차 작업을 하려니 맘이 바쁜데, 맘껏 쓸지 못했다. 쓰레기를 쓸다가도 사람이 지나가면 빗질을 멈추게 됐다. 먼지가 날릴까봐 걱정이 되서였다. 서서 얘기하는 이들도 불편했다. 알아서 비켜주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안 그랬다. 여성들에게 작업 거는 듯 보이던 한 외국인은 쓰레기 근처서 한참을 웃고 떠들었다. 어쩔 수 없이 주위를 돌며 서서히 치웠다. 빗자루로 'X꼬'를 찌르는 상상을 했다. 못 이길 것 같아 참았다.


진짜 골치 아픈 건 불법주정차 차량이었다. 특히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가 다수였다. 도로 경계석 밑 쓰레기를 치워야하는데, 택시 때문에 난감했다. 이씨는 몇 번이고 "차량 좀 이동해주세요"를 외쳤다. 이동해봤자 잠깐 앞으로 간 뒤 다시 세워뒀다. 차량 치우는 게 일이었다. 갑자기 불쑥 움직이는 터라 위험하기도 했다. 작업이 더 긴장되고 힘이 많이 들어갔다.

50분 일하고 10분 휴식이 원칙이라 중간중간 쉬었다. 그제야 온몸이 땀에 젖은 게 느껴졌다. 상쾌한 아침 공기에 땀을 말리며 한숨 돌렸다. 그리고 지나온 자리를 돌아보니, 더럽던 도로가 깨끗해져 있었다. 아침을 시작하는 시민들은 쾌적하겠지, 생각하니 말로 표현하기 힘든 뿌듯함이 있었다.

7시30분쯤 1차 작업을 끝낸 뒤 상상마당 위쪽 널찍한 구역으로 갔다. 이씨는 "각자 구역이 끝나면, 힘든 구역을 도와주러 간다"고 설명했다. 다른 환경미화원들도 삼삼오오 모여 같은 구역을 쓸었다. 사람도 부족하고 서로 힘든 걸 잘 아는, 환경미화원들의 '전우애(愛)'가 막 떠놓은 오뎅국물처럼 따뜻했다. 그새 동이 터서 밝아져 있었다.



'낙엽'은 가을 낭만이 아니라, '원수'




아침식사를 마친 뒤 기자가 뻗어있다. 약 3시간에 걸친 1차 청소 뒤 온몸이 욱신거렸다. 그대로 누워서 자고 싶었지만, 2차와 3차 청소가 남아 있었다. 사진은 기자의 양쪽 무릎. 휴식을 방해하지 않으려 환경미화원들이 자는 모습을 찍지 않았다./사진=남형도 기자

아침식사는 비빔밥에 우거지국. 시장이 반찬이라더니, 별 것 아닌 메뉴가 정말 '꿀맛'이었다. 평소 아침을 잘 안 먹었던 것 따윈 까먹었다.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20분 남짓한 시간에 휴식을 했다. 약속한듯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기자도 누웠다. 안 쓰던 근육을 사용한 탓에, 온몸이 두들겨 맞은듯 뻐근했다. 특히 오른쪽 허리 부분이 아팠다. 휴게실은 이내 고요해졌다. 새벽부터 깨끗한 거리를 위해 싸운 이들의 땀내와 고단함, 코고는 소리가 어둔 방안을 메웠다.

다디단 휴식을 끝낸 뒤 2차 작업이 시작됐다. 홍대서 합정역 방향으로 가는 700~800m 남짓 2차선 도로였다. 가로수가 좌우로 쫙 들어서 있었다. 드디어 가을 낙엽 차례였다. 좌우 도로를 하나씩 맡아서 쓸기로 했다. 이씨가 쓰레기가 더 많은 오른쪽을 맡겠다고 했다.
가을 낙엽은 쓰레기가 되기 전엔 낭만이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이문세 음악을 듣는 게 좋았다. 하지만 빗자루를 든 순간, 떨어지는 낙엽은 원수가 됐다. 쓸고 돌아서면 또 떨어져 있었다./사진=이종석 환경미화원

낙엽은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일단 인도 위 낙엽을 차도 쪽으로 다 몰았다. 슥슥 쓸고 있으면 하나가 툭 하고 떨어졌다. 또 쓸어내니 다른데 툭, 또 쓰니 툭 하고 떨어졌다. 이씨가 "그렇게 하다간 밤새도 다 못한다"고 조언했다. 한쪽으로 모아뒀다가 쓸고, 또 모아뒀다 쓸고 했다. '사각사각' 낙엽 소리가 낭만이 아닌 원수로 바뀌었다. 돌아서면 또 떨어져 있었다. 빗질이 바빴고, 땀이 쉴새 없이 주루룩 흘렀다.

특히 큰 도로변 플라타너스 잎이 난감했다. 쓸려고 하면 바스라졌고, 워낙 커서 쓰레받기에 넣어도 자꾸 튀어나왔다. 알록달록 쓰레기야, 그만 떨어져라 속으로 계속해 외쳤다. 섬세했던 가을 감수성은, 그날 그렇게 파괴됐다.

낙엽과 씨름하던 순간, 지나가던 남성이 "수고하십니다"라고 말을 건넸다. 감사하다 하고 돌아서는데, 그 한 마디에 기운이 많이 났다. 그동안 왜 그렇게 그 말에 인색했을까 싶었다.

2차 작업을 마친 뒤 오전 햇볕을 쐬며 쉬었다. 몸은 고단했지만 땀을 힘껏 흘려서인지, 머리는 개운했다. 길을 깨끗하게 만든다는 자부심도 좋았다.



3차 작업 끝, 온몸이 욱신거렸다




전단지로 폭격 맞았던 새벽과 달리(위쪽 세번째 사진 참조) 깨끗해진 거리. 이 위를 시민들이 걸어다니는 걸 보는 게 참 뿌듯했다. 고단함이 씻어 내리는 듯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점심을 먹고, 오전처럼 쉬었다가 오후 1시부터 3차 작업을 시작했다. 한 번 쓸었던 길이라, 그나마 나았다. 하지만 여기저기 쓰레기가 다시 버려져 있었다. 담배꽁초도 많았다.

오전까지 헤매던 빗질은 제법 익숙해졌다. 힘을 덜 주고도 시원스레 쓸어낼 수 있었다. 요령이 필요했다. 한손으로 쓱쓱 쓸고, 다른 손으로 쓰레받기를 쥔 채 받아냈다. 많을 땐 쓰레받기를 발로 고정시킨 뒤, 두 손으로 한 번에 쓸어 넣었다. 쓰레기를 한 번에 많이 쓸 때는 대(大)비로 쓴다고 했다. 이씨가 대비로 시원스레 쓸어내는 걸 구경했다. 초짜가 넘볼 아이템이 아녔다.

오후 3시쯤 드디어 일과를 마쳤다. 이씨는 "몸살 나는 것 아니냐"며 걱정했다. '괜찮다'고 하자, 정년을 앞둔 한 환경미화원이 "내일 돼 봐야 알지"라며 웃었다. 이씨도 환경미화원을 시작할 무렵, 일주일 간 찜찔방을 다녔다고 했다. 어르신 말대로 다음날인 26일, 온몸이 두들겨 맞은듯 아팠다. 엄지 손가락 등 손목과 팔다리, 어깨, 허리가 욱신 거렸다. 온갖 근육통이었다. 아장아장 걷게 됐다. 몸살날 것 같았다. 기사를 마감하는 게 버거워 점심시간에 엎드려 자기도 했다.

이씨도 고단한 삶을 이기고 있다. 그는 "몸은 힘들지만 익숙해지면 괜찮다"며 "좋은 마음으로 하고 있다. 뭐든 그렇지 않느냐"고 했다. 건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출판업에 있다가, 3년 전 환경미화원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고 했다. 한 주는 주간, 한 주는 야간이 반복되는 고단한 일상이었다. 이씨는 새벽 출근이 힘들지만, 빨리 끝나는 건 좋다고 했다. 두 딸래미와 놀아줄 시간이 늘어났단 거였다. '피곤하지 않느냐'고 하자 웃으며 괜찮다 했다. 아빠의 무게와 사랑이 같이 느껴졌다.



갈 길 먼 '환경미화원' 노동환경


환경미화원 휴게소에는 자그마한 주방도 함께 있어 이 곳에서 휴식을 하고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다만 공간이 협소해 좀 더 나은 환경이 됐음 했다. 하지만 주민 기피시설이라 공간 마련이 쉽지 않다고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일과를 마친 뒤 환경미화원 노동 환경을 다시 들여다봤다. 국내 환경미화원 수는 총 86만20000여명(통계청 지역별 고용조사, 2018년), 나아지곤 있지만 여전히 열악하다.

청소하느라 도로상 수많은 분진에 노출돼 있다. 바깥서 일하는 특성상 '미세먼지'도 피할 수 없다. 무거운 걸 계속해서 취급하기 때문에, 근골격계 질환과 피부질환 등 업무상 질병에 걸릴 위험이 크다. 교통 사고 등 안전 위험도 크다.

극심한 취업난에 지원자가 몰리지만,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낮다. 정부·지자체서 '단순노무종사자'로 구분돼 있다. 직접 고용과 민간위탁 차별도 여전하다. 기자가 체험한 건 '가로청소'지만, 밤 10시부터 오전 7시까지 종량제봉투를 수거하는 건 '민간위탁' 환경미화원들이 한다. 김건탁 마포구 청소행정과장은 "밤새 일하는 이들이 겪는 업무는 더 위험하고 힘들다"고 했다.

인력도 부족하다. 홍대 일대를 맡고 있는 가로2반 인력이 총 23명. 쓰레기가 훨씬 많은 주말엔 그마저도 없어 15명이 업무를 한다고 했다. 한 환경미화원은 "다른 동료들이 더 고생하기 때문에, 편히 쉴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휴게실 등 환경미화원들 복지도 열악하다. 고된 업무를 끝낸 뒤, 20여명에 달하는 인원이 몸을 뉘일 공간도 부족해 다닥다닥 붙어 있어야 했다. 베개도 2~3개 밖에 없었다. 하지만 늘리긴 커녕, 그나마 있는 휴게실도 '주민 기피시설'이라 했다.
손으로 주운 담배꽁초. 각자 쓰레기만 잘 버려도 환경미화원들이 코고는 소리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 믿는다./사진=남형도 기자 오른쪽 손

에필로그(epilougue). 집으로 돌아가는 길, 청소했던 곳을 지났다. 이제서야 보였다, 길에 놓인 쓰레기들이. 왜 늘 거리가 깨끗한 걸 당연히 여겼을까. 누군가 고생해서 치울 거란 걸 잘 생각하지 못했다. 유년 시절엔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기도 했다. "쓰레기를 안 버리면 환경미화원 아저씨들이 일을 못하잖아'라며 철없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엄마한테 혼쭐이 났다. 잘 혼난 것 같다.

담배꽁초가 또 떨어져 있었다. 돌아오며 하나씩 주웠다. 눅눅한 감촉이 별로였지만, 괜찮았다. 그냥 쥐고 걸었다. 500m 정도 더 걸으니 쓰레기통이 나왔다. 거기에 버렸다. '내일 빗질 몇 번 덜 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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