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국감 기업인들의 "죄송합니다"

머니투데이 한민선 기자 | 2018.10.23 16:41
"죄송합니다"

고양 저유소 화재로 경기도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한 최준성 대한송유관공사 사장은 국감 내내 고개를 숙이며 이같이 답했다. 강환구 현대중공업 사장은 자사주 취득 문제에 대해 "생각 못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손동연 두산인프라코어 사장도 협력업체 기술자료 유용 혐의에 대한 질타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표현했다.

어떤 답변이든 국감에서의 말은 법적 효력을 갖는다. 국감 증인은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허위의 증언을 하게 되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을 받는다.

하지만 기업인의 모든 답변이 문제 해결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기업인들의 '죄송합니다'는 이미 경찰·공정위 조사 등을 통해 혐의가 인정된 사안인 경우가 많다. 국회의원이 꾸짖으니 사과하는 것이다.

증언의 힘을 생각할 때, 기업인들이 더 구체적으로 답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국회의원이 제시한 복잡한 문제들은 겨우 몇 마디 질문과 답변을 통해 해결될 가능성이 낮다.

더군다나 기업인이 스스로 이미 밝혀진 내용 외에 불리한 답변을 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 외의 기업인들이 결국 가장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말인 '죄송합니다'를 택하는 이유다.


국감을 지켜보고 있으니 대답이 정해져 있는 기업인을 반드시 불러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다. 국회에게도, 기업인에도 사실상 '시간 낭비'가 될 가능성이 크다. 10시간 기다려 5분 답해서 시간 낭비가 아니라, 그 5분의 답변이 무의미한 답변이어서다.

물론 기업인을 증인으로 채택함으로써 해당 문제가 더 부각되거나, 기업인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대기업 총수나 유명인을 불러 국감이 이슈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 역시 '입법부의 행정부 감시'라는 국정감사의 본질에서 먼 얘기다.

결국 국감에서 국회가 꾸짖어야 할 곳은 모호한 말밖에 할 수 없는 기업인이 아니라 그 기업들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하거나 허술한 법률 체계를 만든 행정부다. 기업은 그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죄송합니다'나 '시정하겠습니다' 같은 말들은 어떤 문제 해결도 완벽히 보장할 수 없다. 어느 사장이 고개 숙이는 모습을 보며 문제가 해결됐다는 환상에 젖기에는, 국회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한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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