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출에 오토론까지..'보증만능'에 빠진 은행들

머니투데이 권화순 기자 | 2018.10.22 04:29

보증료 대출금리에 넘기고 수수료 따먹는 은행..금융위기 이후 실력후퇴하고 '안정빵' 영업만

#. 한 대형 시중은행 지점에 근무하는 A씨는 요즘 '오토론' 대출실적 압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는 오토론 실적을 올리려 지점 근처에 있는 외제차 판매업체 딜러를 찾았지만 벌써 인근 은행 지점 직원에게 고객 알선을 해주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외제차 구매자는 신용도가 높고 대출규모가 커서 은행원끼리 '쟁탈전'이 벌어진다. A씨로선 은행이 이렇게까지 해서 제2금융권 주력인 자동차구매 대출을 팔아야 하나 회의감마저 든다.

시중은행들이 캐피탈사 등 제2금융권의 '먹거리'인 자동차 구입용 대출시장까지 눈독 들이는 이유는 '돈 떼일' 염려가 없어서다. 신용보증 보험에 가입해 부실대출금의 100%를 회수할 수 있다. 비싼 보증료는 대출 이자에 얹어 대출자에게 받으면 된다. 은행으로선 중간에 수수료 차익만 거두는 셈이다. 이런 영업 행태는 전세자금대출 영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은행이 리스크(위험) 관리 실력은 안 키우고 보증에 기대 '땅 짚고 헤엄치기'식 영업만 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3개월 소득 있으면 차값의 110%까지 OK=2015년말 1조원이 채 되지 않았던 시중은행의 오토론 취급 잔액은 지난달 4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가 가계대출 규제를 강화하자 틈새시장 공략 차원에서 시작된 영업이 최근엔 과열 경쟁으로 치달았다.

오토론 상품은 은행별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만 19세가 넘고, 최근 3개월 간 소득 증빙만 있으면 대출이 가능하다. 최대 1억원 한도 내에서 차량 가격의 110%까지 대출 받을 수 있다. 자동차 구입 후 내야 하는 세금비용 등 각종 부대비용까지 대출한도에 포함시켰다. 결과적으로 내 돈 '한푼' 없이 은행 돈을 빌려 수천만원짜리 자동차 구입이 가능한 셈이다. 이런 '파격' 조건으로 은행들은 경제력이 부족한 20대 초·중반, 신용등급 6~9등급의 저신용자에게도 '빚'을 권했다.

이유는 돈 떼일 염려가 없어서다. 대출자가 대출금을 안 갚으면 미리 가입해 둔 서울보증의 신용보증에서 100% 대출금 회수가 가능하다. 보증료 부담이 최대 2% 정도 되지만 이는 대출 금리에 얹어 대출자에게 받으면 된다. 그렇더라도 캐피탈사의 오토론 대비 금리가 2%포인트 이상은 싸다. 최근 몇년새 은행 오토론이 급증한 이유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오토론 판매 규모가 우려할 정도로 큰 것은 아니지만 보증을 100%까지 받고 있어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며 "보증요건을 강화하는 등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집값 부추긴 전세대출, 알고보니 정부가 100% 보증=부동산 가격 상승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 전세대출 역시 100% 보증을 낀 대출 상품이다. 지난해 하반기 정부가 가계대출 규제를 강화하자 은행들은 전세대출 영업에 '올인'했다. 그 결과 전세자금 대출 잔액은 2018년 3월말 기준 72조2000억원으로 2015년 말 35조원 대비 2배 급증했다.

전세대출 잔액이 단기 급증했으나 은행들은 리스크 관리 부담이 거의 없다. 전세대출의 98%는 보증서 담보대출이기 때문이다. 정부 기관인 주택금융공사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예금보험공사가 최대주주인 서울보증이 대출금액의 100%까지 보증해 준다.

전세대출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을 산정할 때도 유리하다. 은행들은 대출을 많이 할수록 위험가중자산이 늘어 BIS비율이 하락한다. 그런데 전세대출은 사실상 정부 보증을 받고 있는 만큼 위험가중치(10.7%)가 일반 신용대출(53.6%)이나 주택담보대출(41.8%)보다 훨씬 낮다. 게다가 변동금리 대출이 대부분이라 금리 상승기에 은행 수익성에도 큰 보탬이 된다.

'보증만능' 영업 행태는 중소기업 대출에서도 마찬가지다.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 중소기업 보증부 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5%가량으로 1% 미만인 금융 선진국 대비 5배 이상 높다. 이재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들이 보증에 기대 손쉬운 영업을 하면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도리어 은행들의 '실력'은 후퇴했다"며 "여기엔 대출규제와 감독 등을 강화한 금융당국의 역할도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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