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사립유치원과 눈먼 돈

머니투데이 김익태 사회부장 | 2018.10.19 04:19
‘교육 사업을 하면 돈 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말이다. 성공에 대한 강박과 낙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는 사교육이 낳은 왜곡된 결과다. 최근 비리의 온상으로 비쳐 지고 있는 사립 유치원도 마찬가지다. 빙산의 일각이지만, 아이들은 그저 돈 벌이 대상이었을 뿐이다. 이윤 추구 활동에 따른 사립 유치원의 횡포가 어제 오늘 일도 아니다. 부모들은 아이가 해코지 당할까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어도 눈을 질끈 감았다.

2018년 4월 현재 전체 유치원 수는 9021개. 이 중 국립·단설·병설을 포함한 국·공립 유치원이 4801개, 사립 유치원은 4220개다. 전체 유치원의 47% 가량 차지한다. 유치원 수에 비해 학급 수와 원아 수는 사립 유치원이 더 많다. 약 75% 가량인 52만 명을 돌보고 있다. 만 3세부터 초등학교 취학 전 아이들은 공교육 대상이지만, 실제 교육은 사립 시설에서 이뤄지고 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걸까. 1980년 권력을 잡은 신군부가 가장 먼저 손을 댄 건 교육이다. 정당성이 없는 정권은 민심을 두려워하는 법이다. 당시 사회의 가장 큰 병폐인 과열 과외 등 대다수 가정이 고민하는 교육 문제로 민심을 다독이려 했다. ‘7·30 교육개혁조치’에 따라 과외 전면 금지, 대학 본고사 폐지 등의 조치가 시행됐다. 이듬해 전두환 대통령 취임 후 ‘유아교육진흥종합계획’이 수립됐다. 보육 문제에 정부가 적극 개입했다. 당시 만 5세 아동의 유치원 취학률은 1% 정도 밖에 안 됐다. 정부는 취학률을 38%까지 높이겠다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문제는 재원이었다. 재정을 투입할 여력이 없던 정부는 사립 유치원 확대에 ‘올인’했다. 전국의 사설 학원, 무인가 유치원에 정식 유치원 인가증을 내줬다. 자격은 상관 없었다. 돈 있고 경영만 원하면 됐다. 개인이 유치원 사업에 뛰어들었다. 돈 있는 사람들은 부인이나 자녀를 시켜 유치원 하나씩은 설립했다. 1980년 861개에 그쳤지만, 1987년 3233개로 4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후 학부모가 선호하는 국·공립 유치원도 계속 늘었지만, 원아 수는 사립에 크게 못 미쳤다. 사립이 터를 잡은 곳에 국·공립을 늘리기 어려웠다. 국회의원 주최 토론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교육청 감사를 방해할 정도로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원장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정작 수요가 많은 대도시에 제대로 확충을 못하니 학급 수는 늘어도 원아 수가 사립에 비해 턱 없이 적을 수밖에 없다.


정부의 각종 지원을 받으며 호시절을 보냈던 사립 유치원들은 2012년 무상보육이 시작되면서 전기를 맞았다. 누리과정으로 사립 유치원에 지원된 국가 예산은 2016년 총 2조330억여 원에 달한다. 사립 유치원 한 곳당 4억7000만원이 넘게 들어갔다. 국민 혈세가 대거 투입되니 감사를 받아야 하지만, ‘개인 사업’ ‘사유 재산’ 운운하며 극렬하게 저항했다. 어렵사리 속을 들여다보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었다. 일부 원장들의 민낯이 드러났다. ‘눈먼 돈’을 개인 쌈짓돈 쓰듯 사용했다. 이들에게는 현재 24%인 국·공립 유치원 취학률을 2020년 40%까지 늘리겠다는 현 정부의 정책도 불만이다. 그러면서 저출산에 따른 원아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정부에 지원 확대를 요구한다. 결국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말라’는 얘기다. 안하무인이다.

비난의 화살이 온통 사립유치원 원장들에게 향하고 있지만,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관리·감독 의무가 있는 교육부와 교육청의 책임 역시 크다. 어찌 보면 이를 조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부는 사립들이 반대하자 국·공립에서 쓰는 회계시스템을 도입을 미뤄왔다. 교육청은 감사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비리를 방치했다. 심지어 비리를 감사했으면서도 쉬쉬하며 제도개선을 하지 않았다. 사립 유치원 원장들이 교육감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탓에 눈치를 봤다는 게 맞는 말이다. 사립 유치원의 회계 비리는 이렇게 제도의 사각지대 안에서 방치되며 똬리를 틀고 있었다. 교육부가 뒤늦게 유치원 비리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이번에 또 당하지 않으려면 우리 아이들을 위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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