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도 생존에 필요한 도구일 뿐…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머니투데이 권성희 금융부장 | 2018.10.13 07:31

[줄리아 투자노트]

행복은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인생의 목적이다. 우리 행동 대부분은 행복을 목적으로 뒀을 때 쉽게 설명된다. 예컨대 왜 연애하는가. 행복해서다. 왜 결혼하는가. 더 행복해지고 싶어서다. 왜 일하는가. 돈을 벌어야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때로 행복을 목적으로 하는 이런 사고의 틀은 갈등에 부딪힌다. 행복하려 결혼했는데 오히려 불행하고 행복하려 일했는데 오히려 건강이 상하거나 가정이 해체되기도 한다. 지금 행복하려면 야식을 먹고 싶은데 건강한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는 먹지 않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행복하려 했던 선택이 불행을 가져오고 현재의 행복과 미래의 행복이 충돌하는 이 모순은 어디에서 생기는 것일까.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행복의 기원’이란 책에서 행복을 거창한 관념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행복을 도달해야 하는 목표 지점처럼 생각하기에 행복을 추구하는 행동이 불행을 갖고 오면 당황하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희생해야 하는 행복하지 않은 상황에 부딪히기도 한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행복이 거창한 관념, 추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행복은 그저 구체적인 경험에서 뇌가 느끼는 쾌감이다. 행복은 뇌가 본능적으로 느끼는 감각이기에 생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좀더 긍정적으로 생각해봐”란 조언은 손에 못이 박힌 사람에게 “아프지 않다고 생각해봐”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진화론적 관념에서 행복은 무엇인지 서 교수의 해석을 정리했다.



1.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생존 도구다=진화론적으로 인간의 목적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생존과 번식이다. 현대 문명사회를 사는 우리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지만 인간이 진화해온 시간을 1년으로 압축하면 문명인으로 살아온 시간은 단 2시간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행복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느껴야 하는 두뇌의 보상 작용일 뿐이다. 생존에 유익한 활동이나 생각을 할 때 그 일에 계속 매진하라고 알리는 쾌락의 감정이 행복이다.

2. 인생의 조건은 행복의 결정적 조건이 아니다=사람들이 행복하려면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돈, 건강, 학력, 외모, 나이 등은 행복의 개인차 중 10~15%밖에 예측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행복의 10% 정도만 결정하는 이런 인생의 조건을 갖추는데 인생 90%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다.

3. 행복은 감각이기에 찰라적이다=돈이나 명예 같은 조건이 행복의 결정적 요인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행복이 찰라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복권에 당첨되면 너무너무 행복하겠지만 곧 그 상황에 적응되면 돈이 많아 느끼는 행복감이 잦아들고 웬만한 돈에는 행복감을 느낄 수 없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그 순간 행복하지만 매일 함께 일어나 밥 먹고 잠자리에 드는 일상이 반복되면 익숙함으로 인해 행복감이 떨어진다.


행복감이 지속하지 못하는 이유도 생존 때문이다. 생존 행위는 반복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오늘 고기를 씹으며 느낀 쾌감이 사라져야 다시 쾌감을 느끼기 위해 생존을 위한 사냥에 나선다. 수년간 노력해서 성취한 승진의 행복감이 불과 며칠밖에 지속하지 않는 이유도 행복감이 떨어져야 더 큰 행복감을 얻기 위해 더 높은 자리를 목표로 매진할 수 있어서다. 모든 행복감은 사라지기에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4. 행복도 유전된다=유전과 정서의 관계를 오래 분석한 데이비드 리킨과 어크 텔레건 미네소타대학 교수는 “행복해지려는 노력은 키가 커지려는 노력만큼 덧없다”는 말을 했다. 행복을 느끼는데도 유전의 영향이 크다는 의미다. 학계에서는 행복을 느끼는 개인차의 약 50%가 유전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유전적으로 행복과 관계가 있는 성질은 외향성이다. 진화론적으로 사람들과 많이 모여 있을수록 생존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때문에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는 외향적인 성향을 타고난 사람이 더 쉽게 행복감을 느낀다.

5. 좋아하는 사람과 밥을 먹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다=우리는 생존을 위해 먹을 때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행복을 느끼도록 진화해왔다. 이런 점에서 가장 쉽게 행복해지는 방법은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밥을 함께 먹는 것이다.

돈과 명예, 승진, 외모 등이 가져다주는 행복감이나 좋아하는 사람과 밥 먹을 때 느끼는 행복감이나 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라지기는 마찬가지다. 이처럼 행복을 찰라의 감각이라고 생각한다면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불행을 선택하고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는 모순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행복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기 때문이다.

결국 무엇인가가 되면(becoming)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행복은 지금을 살아가는 순간(being)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서 교수는 이를 부잣집 며느리가 되는 것과 부잣집 며느리로 사는 것은 다르다고 표현했다. 부잣집 며느리가 되면 그 순간 행복하겠지만 부잣집 며느리로 행복한 것은 별개 문제다.

아울러 좋은 삶과 행복한 삶은 엄밀한 의미에서 다르다. 좋은 삶을 위해선 가치 있는 목표를 세워 때로 현재의 행복을 희생하며 정진할 필요가 있지만 행복한 삶을 위해선 조금은 쾌락주의자가 되어 지금 이 순간을 누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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