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백’에 대한 고민

김현민(영화 저널리스트) ize 기자 | 2018.10.12 09:03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성 영화는 여러 의미에서 그 등장만으로 반가운 사건이다. 새로운 여성 감독의 출현, 여성과 여성의 연대, 여성이 여성을 구원하는 서사, 거기에 아동 학대라는 공분할 만한 동시대적 소재를 다루고 있는 ‘미쓰백’은 개봉 전부터 기대를 모았고, 공개 이후 대체로 고른 지지를 받고 있다. 게다가 이 영화의 주인공인 배우 한지민의 이미지 변신도 관객에게는 큰 즐거움이다. 세상의 때란 전혀 묻지 않은 것처럼 밝고 청초했던 한지민이 푸석한 탈색 머리에 담배를 입에 물고 나직하게 욕을 내뱉는다. 분명 여기에는 강요된 어떤 정형을 벗어날 때의 쾌감이 있다.

배우의 실루엣 자체가 캐릭터의 정서를 지배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미쓰백’의 한지민도 그렇다. 쪼그려 앉은 한지민의 작고 동그란 등은 악을 쓰고 덤벼봐도 손에 쥘 것이 없었던, 세계의 질서에 순응하며 자학하듯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백상아의 무력한 자아를 대변한다. 그 왜소한 인상은 백상아 캐릭터를 완성시킨다. 백상아에 대한 연민의 시선은 이 영화를 구축하고 작동하게 하는 결정적 코드다. 한지민은 세상의 비정함 앞에서 끝내 포효하고, 상처받은 어린 영혼을 구출하고, 종국엔 스스로를 구원해내는 서사에 끈적끈적한 감정의 결을 입힌다.

그러나 이 영화를 지지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에는 다소 난감한 이유가 몇 있다. 우선, 장섭(이희준)의 역할이다. 남성적 질서를 표상하는 공권력을 가진 형사인 장섭은 백상아가 위기에 모면할 때면 제때 도착해 손을 내민다. 장섭의 시선으로 보이는 백상아는 연민의 대상이다. 장섭은 이 영화의 화자처럼 등장해 백상아는 안쓰러운 존재임을 재차 강조하고 강화한다. 학대당하는 어린 지은(김시아)을 구하는 백상아의 등 뒤에, 언제고 그들을 구할 장섭이 버티고 서 있다. 겉으로는 백상아의 주체성을 따라가는 듯 보이지만, 한 겹 벗기면 ‘미쓰백’을 잠식하고 있는 관념은 지켜주고 보살펴줘야 할 대상으로서의 여성성, 남성의 조력 없이는 오롯이 설 수 없는 여성성인 셈이다.


지은을 학대하는 새엄마 주미경(권소현)을 다루는 방식도 살펴봐야 한다. 물론 아동을 학대하는 친부와 새엄마의 존재는 현실 뉴스에서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영화는 친부가 아니라 새엄마를 더 앞줄에 세운다. 지은의 친부인 일곤(백수장)에게는 그 역시 가정폭력의 희생양이었다는 역사를 심으며 모종의 면죄부를 주는 반면, 주미경은 반드시 처단되어야 할 무엇인 양 그린다. 영화의 절정에서 백상아와 주미경의 대치는 무엇을 의미하나. 이 영화가 아동학대의 현실, 가부장제의 악습과 아동보호 시스템의 빈곤함을 이야기하려던 것이었다면, 악마화된 여성과 구원자로 거듭난 여성이 서로의 머리채를 잡고 나뒹구는 몸싸움의 전시가 과연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가장 아슬아슬한 지점은 아동폭력의 수위다. 감독 역시 이 부분을 가장 크게 고심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가 지나치게 ‘생생하게’ 쏟아내는 폭력의 재현 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 ‘미쓰백’에서 지은이 겪는 수난을 바라보는 일은 곧 고통이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차라리 눈을 감고 싶어지는 순간이 많다. 이는 방관하고 있던 불편한 진실을 목도하며 느끼게 되는 감정과는 엄밀히 다른 것이다. 아이가 감당해야 할 신체적이고도 물리적인 아픔을 체감하는 데서 오는 고통과 공포에 더 가깝다. 지은이 당하는 폭력은 꽤 상세하고 다양하게 묘사된다. 아마 아동학대의 실상은 영화가 보여준 광경보다 더욱 참혹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성실히 모방하는 것이 상상력을 가진 영화라는 매체가 재현을 위해 선택해야만 하는 불가결한 방식은 아닐 것이다. 물론 ‘미쓰백’에는 폭력의 직접적 이미지를 거두기 위해 컷을 나누고 카메라 시선을 돌리는 최소한의 배려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린아이가 차갑고 어두운 욕실 바닥에서 구타당하고, 손발이 묶여 베란다에 방치되고, 창문을 통해 도망치다 추락하는 등의 피학적 이미지가 은유로 여겨질 수는 없다.

분명 ‘미쓰백’의 등장은 반갑고 응원할 만한 일이다. 남성 인물들이 등장해 그들만의 리그에서 여성이 배제된 서사를 써내려가는 영화로 가득한 상황에서 여성의 아픔과 사랑, 성장과 연대를 여성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영화는, 그러니까 ‘미쓰백’과 같은 영화는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져야 하며 또 만들어질 것이다. ‘미쓰백’의 한계를 굳이 거론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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