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반려견종이 유행하는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트렌드에 민감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깊은 고민 없이 유행에 혹해 섣부르게 선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 유행하는 견종들 중 유기견 수가 급증하기도 한다. 이에 전문가들은 반려견 외모나 유행보다 사육환경과 책임감에 대한 고려가 우선이라고 조언한다.
◇인기견, 美 1위 '리트리버' vs 韓 1위 '?'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반려동물 보유 가구 비율은 전체의 28.1%로 약 593만 가구에 달한다. 매년 반려인구가 증가하는 추세로 대부분이 반려견을 선택해 동고동락하고 있다
사람과 함께한 역사가 오래된 만큼, 키우는 반려견 종류도 다양하다. 세계애견연맹(FCI)이 기준을 두고 관리하는 견종 수는 344개에 달한다. 매년 새로운 견종이 탄생하기도 한다.
국가·문화 별로도 특별히 선호하는 반려견이 있다. 반려문화가 오래 전부터 정착된 미국은 '리트리버' 사랑이 각별하다. 미국애견협회인 '아메리카커넬클럽'이 올해 발표한 '2017년 인기견종 순위'를 살펴보면 '래브라도 리트리버'가 1위를 차지했는데 27년째 1위를 독식 중이다. 대형견을 선호하는 만큼 '저먼 셰퍼드'와 '골든 리트리버'도 항상 2·3위에 이름을 올린다.
◇방송·SNS 영상, 개가 패션이야?
특정 반려견종 유행 현상은 방송·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흐름과 맞물려 나타난다. 방송에 출연해 유명세를 얻거나 유명 연예인이 키우는 반려견으로 소개되며 이른바 '스타견'이 된 품종이 인기가 많아지는 것. 실제 2000년대 이후 반려동물 관련 방송이 많아지면서 반짝 인기를 얻는 견종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0년 전 인기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사랑 받은 상근이가 대표적이다. 당시 하얗고 거대한 상근이의 믿음직스러운 모습은 '그레이트 피레니즈' 종의 유행을 일으켰다. 하지만 한국의 기후, 거주 문화와 전혀 맞지 않는 유럽 피레네 산맥 출신의 이 대형견은 인기가 사그라들며 유기되거나 도살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빈 자리를 채운 것은 짧은 다리와 도톰한 엉덩이가 매력인 '웰시코기'다. 지난해 방송인 주병진의 반려견 대, 중, 소가 주목 받으며 '웰시코기' 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웰시코기를 키우고 있는 대학생 박모씨(26)는 "반려견을 키우기로 결정했을 때 가장 인기 많은 웰시코기가 떠올라랐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배우 구혜선, 위너 이승훈 등의 반려견으로 소개된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 귀엽고 사랑스러운 외모를 가진 소녀시대 태연의 반려견인 '실버 푸들'이 웰시코기의 인기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반려견 유행의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바로 '외모'다. 반려동물을 기르기로 마음 먹고 반려견을 고를 때 한국인이 중요시하는 것은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작고, 하얗고, 귀여운 모습이다. 지난해 KB 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17 반려동물 양육 실태 조사'에 따르면 반려인의 21.9%가 반려동물 품종을 결정한 이유로 '애완동물 가게 등에서 보고 귀여워서'라고 답했다.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반려견 트렌드라며 긍정적으로 치부하기엔 발생하는 문제가 많다. 유행과 외모적 기준에 치우치면 올바른 반려 문화를 정착시킬 수 없기 때문. 가족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반려견이 반려인을 뽐내는 패션의 일부로 전락할 수 있다. 전진경 동물복지단체 카라 이사는 "희귀하거나 귀여운 개를 키우며 '난 남들과 다르고 멋져'라는 생각을 하고 섣불리 반려견을 선택하는 위험한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유행'이 낳은 것은 '유기'
우려는 실제 '유기견'이라는 사회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주인을 잃어버리거나 구조된 반려견이 6만3600마리에 달하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새 주인을 찾지 못해 안락사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매년 발생하는 유기견 문제의 원인으로 '의식 부족', '금전적 문제' 등 많은 원인이 거론되지만, 외모에 따른 반려견종 유행 현상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실제 주인에게 버려진 유기견을 살펴보면 몇 해 전 유행하며 주인의 품 속에서 사랑 받은 품종이 갑자기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따르면 2010년 399건에 불과했던 포메라니안종 유기견 수는 지난해 1652건으로 늘어났다. 2~3년 전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유기되는 수도 덩달아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 프렌치 불독 종의 유기는 160건이었지만, 귀여운 외모로 인기를 얻기 전인 2010년에는 아예 한 건도 없었다.
인기에 편승한 매매 행태도 이같은 폐해에 한 몫 한다. 한 품종이 인기를 얻을 때마다 불법 애완견 번식장에서는 해당 품종을 대량 교배하고 '펫샵'을 통해 판매한다. 지난해 한국펫사료협회가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반려인 35.5%가 '애견 분양 사이트 등을 통해 구입한다'고 답할 만큼 산업 규모가 크다. 반짝 인기가 떨어지게 되면 갑자기 늘어난 해당 품종의 개들은 오갈 곳 없이 버려지거나 도살된다.
전문가들은 반려견 선택 기준이 외모와 유행이 아닌 반려견과 반려인의 바람직한 삶에 대한 고민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진경 카라 이사는 반려견을 키울 때 반려견이 아닌 나에 대해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 이사는 "동물을 키우려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욕구"라면서도 "반려견을 키울 때 생길 수 있는 여러 생활적·금전적 문제들을 감당할 수 있는 책임감이 있는지, 반려견의 여부가 자신의 미래계획과 충돌하지 않는지 등을 깊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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