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기의 SK, 한니발 고도에 변화를 심었다

머니투데이 카르타헤나(스페인)=박준식 기자 | 2018.10.09 10:00

[르포]SK 글로벌 파트너링 - 유럽 스페인 카르타헤나 '일복(ILBOC)' 윤활기유 합작 생산기지

구급 맵 캡처 ⓒGoogle
기원전(BC) 221년 고대 유럽의 3대 명장인 한니발은 26세에 총사령관에 올라 스페인 공주인 이밀케와 결혼했다. 그는 지중해를 바라보던 항구, 카르타고 노바를 근거지로 대 제국 카르타고의 영토를 확장했다. 당시 카르타고령 스페인의 수도가 지금의 '카르타헤나(Cartagena, 새 카르타고 혹은 카르타고의 눈)다.

스페인 제1의 경제도시 바르셀로나로부터 624km 떨어진 남동부의 항구도시를 향해 차를 몰아 6시간 남짓 만에 카르타헤나에 닿았다. 2200여년전 세계를 들썩이게 했지만 이후 북쪽의 카탈루냐에 경제 패권을 내주고 잠들었던 이 도시에 7년 전부터 새 역사가 시작됐다. 천년고도(千年古都)를 근거로 스페인 최대 에너지 기업 '렙솔(Repsol)'과 한국의 SK가 손을 맞잡아 합작을 시작한 것이다.

사명은 일복(ILBOC). 어떻게 들으면 한국의 분위기가 나는 이 이름은 사실 스페인의 지명인 이베리아 반도를 포괄하는 윤활기유 전진 기지(Iberian Lube Base Oils Company)라는 뜻이다. 사업 파트너 한쪽의 우위를 드러내기보다 전 유럽으로 뻗어 나갈 카르타헤나의 기상을 사명에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스페인 일복(ILBOC) 기지는 2012년 말 착공해 2014년 말부터 상업 생산을 시작했고 4년간 100% 가동률을 기록하면서도 무재해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 사진=일복 제공

일복 헤드쿼터에서 만난 에드와르도 CEO(대표, Eduardo Romero Palazon)는 지한파(知韓派)를 넘어 한국과 사랑에 빠진 모습이었다.

그는 "추석 연휴를 즐기지 않고 어떻게 이 먼 곳까지 왔느냐"고 웃으며 "7년 전 SK가 '패기'라는 경영철학 하나로 경쟁사일 수도 있던 렙솔과 대담한 협업을 시작해 카르타헤나에 씨를 뿌렸고 이는 전 유럽에 그룹III(3) 윤활기유를 공급하는 가장 큰 기지로 성장했다"고 자평했다.

에드와르도 CEO의 설명대로 일복은 10년 전부터 SK가 시작한 글로벌 경영의 성공적인 상징이다. 최태원 SK 회장이 주창한 '글로벌 파트너링'은 해외 대표 기업과 협업 체계를 구축해 현지에서 생산과 유통, 판매를 공동으로 추진하는 상생의 전략이다.

어떻게 보면 과거 김우중 대우 회장이 내세웠던 '세계경영'이 일부 현지 국민과 기업의 거부반응을 일으키던 단점을 극복한 한세대 진화한 글로벌 경영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윤활유 세계 3위, 그룹III 세계 1위 만든 최태원 회장 승부수

SK는 2009년 10월, SK에너지 산하의 윤활유 사업부를 분사해 SK루브리컨츠를 독립하게 했다. 윤활유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해외 시장 진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SK루브리컨츠는 분사 후 첫 해(2010년) 매출 2조33억원과 영업이익 2986억원을 달성해 곧바로 자립했다.

최태원 회장은 그러나 첫해 호실적에 자만하지 않고 선진시장인 유럽 진출을 지시했다. 최 회장은 "고급 윤활기유 시장의 진정한 강자로 거듭나려면 시장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는 유럽에 직접 생산기지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페인 카르타헤나의 일복(ILBOC) 생산기지는 2012년 말부터 약 4700억원의 자본이 투입돼 건설됐다. 사진은 일복 기지의 전경 모습. /사진= 일복 제공


유럽 에너지사를 파트너로 검토한 SK는 2011년 11월, 최종 대상으로 스페인 에너지 기업 렙솔을 결정했다. 하지만 몇 가지 사안으로 인해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최 회장은 직접 상대를 만나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겠다며 현지로 향했다. 최 회장은 당시 렙솔의 안토니오 브루파우 회장을 만나 직접 설득에 나섰고 그 자리에서 윤활기유 합작 공장 건설 관련 의향서를 체결하는 결단력을 보였다.


두 회사는 SK루브리컨츠가 윤활기유 생산 기술과 글로벌 마케팅 네트워크를 제공하고, 렙솔이 현지에서 원료와 인프라를 제공하는데 합의했다. SK와 렙솔은 7대 3의 지분 비율로 총 3억3000만 유로(한화 약 4700억원)를 투자했다. 합작사인 일복의 생산기지는 2012년 10월 착공해 2014년 10월부터 상업생산을 시작했다.

일복은 하루 1만3300 배럴, 연간 63만톤의 그룹III 윤활기유를 생산한다. 윤활기유는 윤활유 완제품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기초 원료로 황 함량과 점도, 지수 등에 따라 그룹I~그룹V로 나뉜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더 고급 원료인데 그룹III부터는 세계 20여개 업체만 만들 수 있고 전체 시장에서 SK는 오일메이저인 엑손모빌과 쉘에 이어 최근 세계 3위 수준이다. 특히 일복이 생산하는 그룹III 등 고급 기유 분야는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100% 가동률 6년 무재해 2020년 증설…한국-스페인 협업 사례

에드와르도 CEO는 합작 성공의 비결에 대해 "일복은 기지 공사 기간에도 무재해를 달성했고, 공장 가동 이후 현재까지 1471일 동안 어떤 임직원도 물리적 사고를 입지 않았다"며 "SK가 공장운영에 관한 기술과 노하우를 충분히 전수했고, 렙솔이 원칙과 안전에 적합하게 유틸리티(기유 원료 및 인프라)를 공급한 결과이기 때문에 두 회사는 (합작에 있어) 완벽한 커플"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일복 기지는 2014년 10월부터 시작된 정상가동 이후 100% 가동률을 보이면서 단 한차례의 사고도 일으키지 않았다. 외부 취재를 허용한 이날은 4년 만에 한 달여 점검을 마치고 재가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애드와르도 일복(ILBOC) CEO는 SK와 렙솔의 협업이 7년간 성공적이었고 앞으로도 추가적인 사업이 더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 박준식 기자
에드와르도 CEO는 증설 계획을 묻자 "그동안 풀 캐파(최대 가동치)로 공장을 돌렸지만 기지나 제품, 마케팅, 판매에 있어 어떤 문제도 없었기 때문에 SK와 렙솔이 현재 (증설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며 "일단 (증설) 문제에 있어 낮은 수준의 시설 확대는 어렵지 않지만 큰 폭의 투자는 자본이나 기유 원료의 공급과 연결된 것이라 이를 2020년까지 마무리하려는 큰 그림만 마련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렙솔 출신의 에드와르도 CEO는 SK에서 파견된 이광윤 COO(최고운영책임자)와 모든 의사결정을 조화롭게 협의하면서 파트너 사이의 의견을 조율했다.

에드와르도 CEO는 SK의 기업문화에 대해 "최태원 회장이 강조하는 '딥 체인지(Deep change)'를 제 나름대로는 '진정한 혁신(Real innovation)'이란 의미로 받아들인다"며 "SK가 강조하는 '패기(霸氣)'는 그런 진짜 변화를 항상 생각하게 하는 '결단(Determination)'이면서 동시에 어려움을 돌파하는 정신(Get-up-and-go spirit)이라 큰 문제가 있을 때마다 이광윤 COO와 이를 항상 상기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과 스페인의 문화 및 가치관 차이를 묻자 그는 "두 나라가 유서 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수천년간 다르게 살아오면서 접점이 많지 않았지만 흥미롭게도 '가족 중심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식탁에서 음식을 공유'하면서 '집단의 응집력이 강한' 공통점이 있다"며 "양 주주가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모습을 지켜왔기 때문에 앞으로 더 큰 협업이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광윤 일복(ILBOC) COO는 스페인 문화를 존중하면서 공동 경영의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이 영속적인 파트너십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박준식 기자
이광윤 COO는 1988년 유공에 입사한 현장 베테랑으로 커리어의 마지막을 유럽 생산기지에서 헌신하기 위해 3년 전 가족과 함께 카르타헤나로 자원했다.

이 COO는 "스페인은 반도 국가로 이민족의 빈번한 침범과 지난한 역사로 인해 종교와 정치 문제가 예민하지만 이를 제외하면 우리처럼 경로사상이 있고 음식과 술을 공유하면서 열정이 뜨겁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일복의 임직원 평균 나이가 39세로 카르타헤나의 젊은이들이 SK 경영정신으로 동화돼 유럽 시장을 무대로 점유율을 키우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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