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평등한 곳은 없다"… 북유럽의 차별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 2018.10.08 05:30

[이재은의 그 나라, 핀란드 그리고 차별 ②] 핀란드, 여성 40% 고용 쿼터제 있는 양성평등국가… 그럼에도 핀란드 여성은 남성의 82%밖에 벌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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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헬싱키 전경 /사진=이미지투데이
핀란드인 친구와 함께 강이 보이는 바에 앉아 휴식하던 중, 잠시 머리를 식힐 겸 휴대폰으로 뉴스를 봤다. ''취업 성차별' 여전…여성 구직자 10명 중 7명, 구직시 불이익 경험'이란 제목의 기사가 보였다. 문득 옆에 앉아있던 친구에게 "너네 나라에서도 이런 기사 본 적 있어?"라고 묻자 그는 "아니"라고 답하며 웃었다.(☞"가진 건 언 땅 뿐"… 맨손으로 선진국 된 나라 [이재은의 그 나라, 핀란드 그리고 차별 ①] 참고)

문득 '어이없는 걸 물었나' 싶었다. 그런데 내가 "그래, 핀란드는 성평등 국가니까"라고 말하자 그가 "성차별 없는 나라가 어디있냐"면서 "핀란드에도 성차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7 세계 성격차 보고서'(Global Gender Gap Report 2017)에 따르면 핀란드는 세계 3위(성 격차 지수 0.823)로, 1위 아이슬랜드(0.878), 2위 노르웨이(0.830) 등 북유럽 이웃 국가들과 함께 최상위권인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친구는 "물론 여자를 많이 고용할 수록 '올바른 회사'라는 이미지가 있고, PC한(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회사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신입사원으로 여자를 더 많이 뽑긴해. 그래서 취업준비생 때는 여자가 유리한 것 같아"라며 입을 열었다. 그는 이어 "그런데 막상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이야. 성별 따라 버는 돈에 차이도 있는 것 같고"라고 말했다. 유수 컨설팅회사 직원이자 남성인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충격이 컸다.
/사진=핀란드 관광청
세계에서 손꼽히는 양성평등 국가 핀란드에서 취업시 여성이 겪는 차별은 거의 없다. 2013년 OECD가 25~64살 성인의 학력별 고용률을 비교한 결과, 핀란드에서 전문대 졸업 여성의 고용률은 83%로 23개국 중 4위였다. (1위 아이슬란드(91%), 2위 노르웨이(89%), 3위 독일(85%), 4위 핀란드·프랑스(83%) 등이었다.) 핀란드의 여성 노동 시장 참가율(72%)이 남성(76.2%)과 비슷하니 당연한 결과다. 참고로 당시 한국은 58%에 머물러 23위로 꼴찌를 차지했다. 또 2014년 우리나라 남성의 학력별 고용률은 △고졸 84% △전문대졸 91% △대학교·대학원졸 90%인 반면 우리나라 여성의 학력별 고용률은 △고졸 57% △전문대졸 60% △대학교·대학원졸 62%에 그쳤다.

핀란드는 일찍이 여성이 평등한 고용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여성쿼터제를 도입했다. 1995년 기존의 평등법을 개정하며 마련한 것으로 정부기관과 지방단체 등 일자리의 40%를 여성에게 의무적으로 할당하는 제도였다. 2014년에는 여성임원할당제도 도입했다. 유럽연합(EU)이 회원국 내 상장사를 대상으로 이사회 여성할당제 의무화를 추진한 데 따른 것인데, 2003년 노르웨이가 최초로 공기업과 상장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을 최소 40%로 의무화한 이후 프랑스·스페인·네덜란드에 이어 핀란드도 이를 도입했다. '원칙준수·예외설명'(comply or explain)제도에 따라 만일 여성 임원 비율 40%를 달성하지 못하면 사측은 그 이유를 설명해야한다.

이로써 핀란드에서 여성 임원의 비율은 2014년말 기준 32.1%에 달할 정도로 높아졌다. (같은 해 노르웨이 29.9%, 스웨덴 27.5%, 프랑스 28.5%다. 반면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2014년 기준 국내 상장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1.64%에 불과했다.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는 기업도 89.5%였다.)
지난 9월1일 핀란드 국영방송 일레(YLE) CEO로 취임한 Merja Yla-Anttila /사진=일레
하지만 핀란드 내에선 아직까지 차별이 공고하며, 이를 철폐하기 위해선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가장 잦은 지적은 '성별 임금 격차'다. 2011년 10월 핀란드 국영방송 일레(YLE)에 따르면 핀란드 여성은 남성의 82%에 해당하는 금액만 벌어들인다. 당시 일레는 "2011년 유럽 평균 성별 임금 격차는 17.5%인데, 이 보다 핀란드에서의 성별 임금 격차(18%p)가 크다"고 지적했다. 당시 핀란드 보건복지부 관계자 오우띠 비따마 떼르보넨(Outi Viitamaa-Tervonen)은 "이는 양성평등 국가 핀란드의 명성에 얼룩을 남겼다"면서 "앞으로 성별 격차를 최대 15%까지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이 목표가 제대로 이뤄진 것 같지는 않다. 지난 2월8일 일레(YLE)는 보도에서 "핀란드에서 남성이 1유로를 벌 때 여성은 83센트밖에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성별 임금 격차는 왜 나타나는 것일까. 떼르보넨은 그 이유를 "여성이 리더의 자리에 오르는 일이 남성 보다 적고, 육아 책임도 가족 내에서 불균등하게 분배돼있다. 또 여성들은 보통 남성 보다 더 낮은 임금을 받는 직책에서 주로 근무한다"고 설명했다.

핀란드 보건복지연구원은 "핀란드는 노동환경에서 성별에 따른 분리 문제가 심각하다"며 "여성들은 여전히 육아, 건강관리, 사무, 청소, 간호 등의 분야에 집중 근로한다. 이 직업 집단에서 여성의 비율은 90% 이상이다. 반면 기계, 전기전자, 건설, 설치 및 수리, 트럭 운송 등의 분야에서는 남성이 90% 이상 근무한다"고 설명한다. 연구원은 이 같은 성별 직업구분은 개인의 선택을 제한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축소하며, 능력의 효율적인 분배를 막는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연구원은 여성이 주로 종사하는 업종에는 낮은 임금이 지불된다며 이를 문제라고 봤다. 또 출산·육아 등으로 보통 남성 평균 경력보다 여성 평균 경력이 1년쯤 짧은 점도 여성 경력개발과 임금 상승을 방해하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핀란드의 모든 기업은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를 휴직 전과 동등한 직급에 배치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어 실직이나 승진차별 등에 대한 우려는 없다. (사실 이 또한 오래된 일은 아니다. 10년 전까지만해도 엄연히 차별이 있었다. 책 '핀란드 들여다보기'(2006년 발매)의 저자 이병문은 "핀란드에서도 기업이 편법을 동원해 출산·육아휴직후 돌아온 여성의 복직을 불허하기 위한 법정 소송이 일어나고,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역차별을 받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 때문에 핀란드 여성들은 기업 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취업하기를 선호하며, 실제로 이곳에선 여성이 전체직원중 각각 70%, 77%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출산과 육아를 마친 여성들이 다른 동료들에 비해 커리어 측면에서 불리한 건 핀란드도 마찬가지다. 친구는 "아무래도 회사 내에서 커리어 경쟁이 치열하니까, 아기를 안 낳는 여성들도 있다"고 말했다.

핀란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육아와 관련한 휴직 제도가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 두 가지로 나뉜다. 핀란드의 출산 휴가는 총 4개월로 대개 출산일 5주 전에 휴가를 낸다. 기업에서 출산휴가 기간 임금 전액을 부담한다. 남편도 아내의 출산휴가 기간동안 최장 18일간 부성 출산휴가를 낼 수 있다. 이 기간도 임금이 전액 지급되므로 핀란드에서는 90% 이상의 아빠가 부성 출산휴가를 낸다. 출산 휴가 기간이 끝나면 부모 중 한 사람이 직후 6개월간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 두 사람이 기간을 나눠 사용할 수도 있다. 육아 휴직 기간동안 임금은 60~70%가 지급된다. 기업과 정부가 나눠 부담하는데, 주로 여성 쪽의 임금이 적기 때문에 임금이 적은 엄마 쪽이 육아휴직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핀란드 전체 근로자 중 남성이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비율은 약 32% 정도에 그친다.


아이가 생후 10개월이 됐을 때 육아휴직을 더 사용하고 싶으면 아이가 3살이 될 때까지 육아휴직을 추가로 사용할 수 있다. 핀란드에서는 '아이가 태어나서 세 살이 될 때까지는 한 사람이 키우는 게 아이 정서 발달에 좋다'는 분위기가 있어 엄마가 연이어 육아휴직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핀란드에서는 남성들이 육아휴직을 너무 짧게 사용하고 이점이 여성들에게 차별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1년 아르토 사토넨 핀란드 국회 고용평등위원회 의장은 "엄마들의 육아휴직 사용 기간이 아빠들보다 절대적으로 길어 여성들의 커리어가 손해를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2008년 그는 "성별 임금 격차가 매우 크며, 여성들의 임금을 남성 수준으로 높이도록 노력해야한다"고도 강조한 바 있다.)
Rovaniemi의 한 디자인호텔 /사진=핀란드관광청
그와 대화를 나눈 뒤 한동안 멍했다. '세계 최고 양성평등 국가에서도 아예 차별이 없진 않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하지만 핀란드는 완전 평등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큰 문제가 없어보이는 데도 이를 문제로 인식하는 점에서 그러하다. 사실 인구의 반인 여성이 가사와 육아에만 매달려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복지 효율성 측면에서 좋지 않고 결국 이는 국가적 손실로 이어진다. 이미 우리보다 한참 앞선 핀란드는 노력하고 있다.

참고문헌
핀란드, 가지, 데보라 스왈로우
핀란드에서 찾은 우리의 미래, 맥스, 강충경
북유럽의 외로운 늑대 핀란드, 언어과학, 정도상
핀란드의 마음, 책과 나무, 방민수
핀란드 들여다보기, 매일경제신문사, 이병문

☞[이재은의 그 나라, 시리아 그리고 꿈의 여행지 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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