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무엇이 진짜인지 의심이 들게 된다. 40%가 진짜 여론인가, 아니면 70%가 진짜인가? 한 주에도 몇 차례씩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여론조사가 이루어진다. 언론에 공개되는 것 외에도 각 정당과 여러 정부기관에서 수많은 비공개 조사가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다. 청와대에서도 수시로 자체 여론조사를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변화의 시기에 서로 엇갈리는 상이한 결과를 접하게 되면, 조사가 진실을 드러내기보다 도리어 가리는 역할을 한다.
조직에서 일하다 보면 아래의 대다수 사람 누구도 어렵지 않게 알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을 상층부의 의사결정권자가 잘 모르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실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 정보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많아서 문제고, 그래서 판단을 그르친다. 왜 정보가 많은데 실패하는가? 서로 엇갈리는 정보들 때문이다. 다른 이들에게 말하기 어려운 수많은 비밀스러운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진짜인지, 중요한지 판단하기 어렵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를 더 가치 있고 올바른 정보라고 생각하게 된다. 조그만 조직에서도 그런데 하물며 비밀스럽고 고급한 정보가 넘쳐나는 청와대와 같은 최고 권력기관은 어떻겠는가. 정보 과잉에 따른 엉뚱한 판단의 위험성은 청와대라고 예외는 아니다.
여론은 일종의 평가고 측정의 결과다. 기억할 것은 어떤 대상도 그 자체 전부를 평가하고 측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평가하고 측정하는 것은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의 어떤 구체적 속성이다. 대상 전체가 아니라 대상의 어떤 부분, 속성을 평가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우리의 태도나 평가도 그의 어떤 속성에 관한 것이다. 대상 자체에 대한 전반적인 태도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은 지배적인 몇 가지 속성들에 대한 평가의 조합이다. 엉터리 부실 조사도 적지 않지만 그것은 일단 논외로 하고, 제대로 적합하게 조사된 여론이 요동치는 것은 바로 평가 기준이 되는 이런 속성들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대상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측정하는 잣대의 차이가 여론의 변동을 설명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크게 상승한 것은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높은 평가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평가 속성이다. 대북정책이라는 특정 속성이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를 위한 주도적 잣대로 사용된 것이다. 반대로 불과 한 달 전의 낮은 지지도는 지금과 달리 경제문제가 중요한 평가 속성으로 사용된 결과다. 그중에서도 부동산 문제와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입장이 중요한 평가 잣대였고, 소득주도성장은 다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문제라는 하위 속성에 의해 평가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마찬가지로 대통령 임기 1년차의 80%에 달하는 높은 지지도는 당연히 구정권의 적폐청산 이슈와 관련된 속성들이 주로 부각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평가 속성들은 서로 위계적 계층 구조를 가지면서 동시에 상호 의존적인 연결망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는다.
정치인마다 자신에게 유리한 평가 속성이 다를 수 있다. 어떤 이는 경제문제가 평가 속성이 될 때 유리하고 다른 이는 통일이나 대북문제가 평가 속성이 될 때 유리하다. 정치캠페인이라는 것도 많은 부분이 결국 후보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평가 속성을 유권자들의 마음속에 부각하려는 체계적 노력과 결부된다. 선거는 그런 속성의 의제화를 위한 경쟁이고 싸움이다. 문제는 속성 의제들 간의 주도권 경쟁이 치열한 만큼 의제 지속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수학을 잘하는 학생은 항상 수학 점수로만 평가 받고 싶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영어 점수도 중요하고, 국어 점수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들어 관찰된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지지도의 급격한 변동은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말해준다. 문 대통령은 잘하는 과목과 못하는 과목의 점수 차가 큰 학생이라는 점이다. 골고루 못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먼저 문 대통령이 높은 평가를 받는 대북문제는 일종의 국제적 이슈인데 이것이 상대적으로 쉽게 점수를 딸 수 있는 영역이라는 점이다. 국제 문제는 일반 대중이 직접 경험하고 접할 수 있는 정보가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기에 배타적 교섭력을 가진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의제를 설정하고 끌고 나가기에 유리하다. 여기서는 대통령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가에 따라 여론이 손쉽게 요동친다. 과거 김영삼 대통령이 “일본 놈들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말 한마디로 여론의 환호를 받았던 것이 좋은 예다. 이와 달리 문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경제부문은 가장 점수 따기가 어려운 영역이다. 경제란 것은 대중이 실제로 매일 접하고 체험하는 이슈이기에 전문적 홍보 기술을 가진 스핀닥터들이 실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정부가 내놓는 가공된 통계자료보다 대중은 자신들의 경험을 우선한다. 경제 정책의 대국민 홍보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정책의 결과인 살림살이는 홍보로 해결되지 않는다. 임기 중 탄핵된 박근혜 대통령을 제외하고 가장 여론 지지도가 낮았던 김영삼 대통령 역시 문제는 경제였다.
당연히 어려운 과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 진짜 실력이다. 쉬운 과목에서 받는 높은 점수는 개인적 위안이 되고 격려도 되기에 긍정적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실력을 착각하게 하는 가림막이 되어서는 안 된다. 좋은 평가를 받을 때 더 열심히 하고 싶고 낮은 평가를 받는 것은 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렇다고 낮은 평가 때문에 중요한 과목을 포기할 수는 없다. 결국 문제는 무엇이 중요한지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다. 권력 주위에는 이런 중요성의 우선순위를 혼란스럽게 하는 이들이 득실거린다. 요즘 세상에 대놓고 아부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보다 진짜 중요한 것을 밀어내고 자신이나 대통령에게 유리한 것을 중요하다며 슬쩍 들이미는 이들, 저것은 엉터리 가짜 여론이고 이번 것이 진짜 여론이라며 귓속말하는 이들이 더 위험하다. 결국 입맛에 맞는 정보와 해석을 제공하는 이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가 권력운용의 요체가 된다.
돌이켜보면, 지난 대선기간 중 문재인 후보에 대한 악의를 애써 감추려하지 않는 막무가내 식 비난이 많았다. 전문가라고 미디어에 나오는 이들 중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주장과 편파적 의견을 쏟아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 엉터리 패널들은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 여론을 바꾸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정파적인 엉터리 패널들이 영향을 미친 것은 일반 대중의 여론이 아니라 도리어 당시의 권력이었다. 권력으로 하여금 여론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하게 했고 결국 문 대통령의 당선에 그것은 도움이 되었다. 그런 것이 여론이다.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데 정치나 여론도 매한가지다.
안민호 교수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 학부 교수
언론학 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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