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규제 혁파만큼 중요한 과제는 없다. 급격한 기술 변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황당한 규제를 양산한다. 19세기 후반 영국이 시행한 ‘붉은 깃발법’(자동차 앞에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이 걸어가도록 의무화한 조치)은 기술에 대한 두려움이 불러온 희대의 촌극이다. 이후 150여년간 붉은 깃발법 세력들이 기술 혁신을 가로막는 사례가 끊임없이 반복됐다. 전 세계에 4차 산업혁명 열풍이 불어닥치고 있는 오늘날에도 어깃장 규제가 만연하다. 승차공유, 숙박공유, 식품배송 등 세계 각국에서 검증된 사업모델마저 규제 여파에 휩쓸린 상태다. “창업부터 폐업할 때까지 규제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한 벤처기업인의 말처럼 곳곳이 규제 투성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특구법, 정보통신융합법, 산업융합촉진법,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 등 규제 개선 관련 법안들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건 다행이다. 하지만 이들 법안들이 실효성 있는 제도로 자리 잡으려면 관련 부처, 지방자치단체 등 규제 당국의 의지가 중요하다. 공무원들이 규제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 그 어떤 규제혁신 제도도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장기적인 규제 패러다임 변화도 필요하다. 규제 혁신 법안의 세부 내용을 뜯어보면 규제 특례 유효기간과 같은 제약들이 많다. 유효기간이 끝나면 또 다시 규제 대상이 되는 식이다. 혁신가들의 불안감이 여전한 이유다. 임기응변적 속성에서 벗어나려면 규제 혁신이 규제 철폐로 이어지는 로드맵이 마련돼야 한다. 붉은 깃발법의 망령을 떨쳐내기 위해선 시대적 변화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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