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글로벌 금융위기의 소방수들 말 들어 보니...

머니투데이 한고은 기자, 세종=정현수 기자 | 2018.09.14 03:33

'위기의 돌파구'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의 주역…긴박했던 한달여의 여정

위기의 순간에는 늘 소방수가 등장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예외는 아니다. 위기의 돌파구는 그해 10월30일 체결한 한미 통화스와프였다. 알려진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소방수로 뛰었다.

#한은의 소방수, 美 연준을 설득하라

한은의 공략대상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였다. 직접적인 계약당사자를 공략한 정공법이다. 이광주 전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2008년 당시 한은의 국제담당 이사였다. 그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핵심 멤버였던 도널드 콘 당시 연준 부의장과 접촉했다. 돌아온 대답은 “힘들다”였다.

이 전 부총재보는 “우리가 왜 미국의 캐시 디스펜서(Cash Dispenser·현금인출기)가 돼야 하느냐”고 맞섰다. 콘은 네이든 쉬츠 연준 국제국장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이 전 부총재보는 국제통화기금(IMF) 미국 대표부 사무실에서 쉬츠를 만났다. 노트북을 든 연준 실무진들도 함께였다.

이광주 전 한국은행 부총재보와 윤용진 전 한국은행 뉴욕사무소 운융데스크 팀장 /사진제공=한국은행
이 전 부총재보는 미국이 호주와 체결한 통화스와프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가 호주보다 외환시장이 크다”는 이 전 부총재보의 논리에 실무진들은 노트북으로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그들은 “호주가 훨씬 크다”고 반박했다. 이 전 부총재보는 “NDF(역외차액선물환) 시장을 감안하면 한국이 더 크다”고 재반박했다.

이후 꽤 오랜 시간 질문과 답이 오갔다. “그 때 일생에 내가 할 밥값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게 이 전 부총재보의 기억이다.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어려울 것 같던 한미 통화스와프에 빛이 보였다. 하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

이 전 부총재보는 “공동성명에 미 연준과 한은이 ‘한국경제는 건전하다’(Sound and well managed economy)라는 한 마디를 넣어서 시장에 안심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게 핵심이었다”며 “통화스와프 규모가 얼마인지는 그 뒤의 문제였다”고 말했다. 이 문구는 체결 발표문에 그대로 들어갔다.

윤용진 전 한은 뉴욕사무소 운용데스크 팀장(부국장)도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한국의 유동성 문제가 불거진 초기 뉴욕 연준을 통해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가능성을 타진했다. 당시 윌리엄 더들리 뉴욕 연준 부총재가 2003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맺은 인연도 있었다.

윤 전 부국장은 더들리와 만나 “외환시장이 큰 한국, 싱가포르, 홍콩과는 꼭 통화스와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면담 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윤 전 부국장에게 더들리가 말을 건넸다. “얼마 정도면 되겠느냐”. 윤 전 부국장은 “200억~300억달러 수준”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당시 연준은 ‘헬리콥터 벤이’라고 불릴 정도로 돈을 푸는 정책에 초점이 있었다”며 “연준에서도 ‘통화스와프라는 아이디어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응백 한은 투자운용실장, 김명기 워싱턴D.C. 사무소장, 강순삼 국제국 차장도 한은의 숨은 소방수들이다.


2008년 10월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사진)이 로버트 루빈 전 미국 재무부 장관과 면담하는 모습 /사진제공=기획재정부
#기재부의 소방수, 美 재무부를 뚫어라

기획재정부도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거지기 시작한 2008년 초 기재부의 국제금융 라인은 ‘최·신·최·강’으로 불린다. 당시 최종구 국제금융국장, 신제윤 전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 최중경 차관, 강만수 장관을 일컫는다.

한미 통화스와프의 최전방은 강 장관과 신 차관보가 맡았다. 강 장관은 2015년 발간한 저서 ‘현장에서 본 경제위기 대응실록’에서 당시의 상황을 전한다. 그는 9월19일 신 차관보에게 통화스와프 추진을 지시했다. 신 차관보는 클레이 라우리 미국 미국 재무부 차관보와 협의에 나선다.

반응은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한국의 낮은 신용등급이 문제였다. 강 장관은 로버트 루빈 전 미국 재무부 장관을 접촉했다. 루빈은 당시 씨티은행의 고문을 맡고 있었다. 만남의 주선자는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이었다. 면담에는 윌리엄 로즈 씨티은행 부회장이 동석했다.

이 자리에서 강 장관은 한미 통화스와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마침 로즈는 티모시 가이트너 뉴욕 연준 총재와의 오찬이 예정돼 있었다. 로즈는 강 장관의 의중을 가이트너에 전달했다. 긍정적인 답이 왔다. 10월14일의 일이다. 강 장관은 열흘 뒤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사실을 보고받았다.

빛나는 성과였지만 부침도 있었다. 한미 통화스와프 공식 발표 전 체결 사실이 국내 언론에 전해졌다. 출처는 기재부였다. 강 장관의 무용담에 무게가 실렸다. 한은은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후에도 통화스와프가 체결될 때마다 기재부와 한은의 어색한 협업이 이어지고 있다.

윤 전 부국장은 "중앙은행도 넓은 의미에서 국가인데, 통화스와프를 체결해서 위기에서 벗어났으면 된 거 아닌가"라며 "내가 했니, 네가 했니 하면서 다투는 건 창피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뉴욕 시장 사람들을 만나면 가계부채와 산업경쟁력 약화, 최근의 부동산 시장 과열 같은 문제들을 이유로 2023년쯤 한국에 위기가 올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한다"며 "궁극적으로 연준과의 통화스와프를 준비해야 하고, 최소한 양해각서라도 맺어서 선언적이나마 우리가 대비돼 있다는 메시지를 주면 시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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