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날] "'오빠야~' 해봐"… 사투리 신기하세요?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 2018.09.16 05:01

'신기하다' '해보라' 사투리에 대한 차별적 시선 여전… 대중매체에선 악역만 사투리 구사… 진로장벽으로 기능하기도

'서울 공화국'에서 지방 거주자들은 지방차별을 느끼는 일이 잦다고 토로한다. 삽화는 "너희 동네에 스타벅스 있어?" "제주도에서 왔으면 집에 감귤나무 키워?" 등 지방 거주자들이 들어본 차별적 발언 사례다. /삽화=임종철 디자인 기자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나 쭉 살다가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진학한 대학생 한모씨(25). 그는 '사투리'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사투리를 사용하는 한씨를 향해 '귀엽다'거나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많아서다. 그는 "신기할 수는 있는데 이를 입밖에 내는 게 싫다"고 말했다. 이어 "가끔 친한 사람들이 장난으로 '오빠야~' 해달라고 하는데, 유쾌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본인을 충청북도 청주시 토박이라 소개한 직장인 김모씨(29). 그는 군대를 가서 본인이 사투리를 쓴다는 걸 처음 알았다. "선임이 자꾸만 '왜 이렇게 말을 느리게 하냐. 대체 뭔 생각 중이냐'고 말해서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냥 충청도 사람이라 충청도 사투리를 쓸 뿐인데 이를 지적하는 선임 때문에 나중에는 말을 가급적 안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지방 사투리를 사용하는 이들을 향한 차별적 시선이 여전하다. 사투리 화자들은 표준어 화자들로부터 작게는 신기하다는 시선을 받고, 심하게는 사투리를 '교정'하라는 사회적 압박을 받는다고 호소한다. 취업시 차별도 있다는 게 이들 설명이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내는 '국민의 언어 의식 조사 보고서' 최신 버전(2015년)에 따르면 '평소에 사용하는 말'로 표준어를 꼽은 이들은 54.5%에 불과했다. 나머지 절반(45.5%)에 해당하는 국민은 평소에 그 지역 사투리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국민의 절반인 사투리 화자들은 이들을 향한 차별적 시선이 심각하다고 입을 모은다. 직장인 박모씨(27)는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나 쭉 살았다. 그런데 서울에 있는 대학을 진학해서 '왜 아직도 사투리를 쓰냐'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라도 사투리를 따라하거나, 해보라는 등 차별적 인식이 싫어 서울말을 구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같은 지방 출신 사람들끼리 사투리 화자에게 표준어를 구사하라고 압박하는 일도 적지 않다. 박씨는 "대학 선배 중에 역시 목포 출신인 사람이 있었는데, 그 선배가 내게 '나는 KTX 타면 바로 전라도 사투리 말고 서울말로 바꾼다. 너도 노력해보라'고 조언하더라"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일이 '서울'을 최고로 생각하는 서울 헤게모니적 시선에서 비롯했다고 분석한다. 정진웅 덕성여대 인류학 교수는 인문사회비평지 '당대비평'에서 "우리는 이분법적 사고에 기반해 중심지를 서울로 잡고 지방을 '주변'으로 바라본다. 마치 서양이 동양을 바라보듯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서울이 지방을 바라보는 차별적 시선이 사투리에도 그대로 투영돼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방의 고유한 언어관습은 사실 어디에나 존재하고, 서울말까지 모든 언어는 원론적으로 다 방언에 속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사투리는 웃기거나 야비하거나 촌스러운 말처럼 여겨진다"고 밝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투리가 인물을 부정적으로 묘사할 때 빈번히 사용되는 점도 이 때문이다. 사투리가 부정적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부정적 인물에 자주 사용된다. 1996년, 김창남 문화비평가는 '월간 말'에서 "우리나라 정통 멜로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절대 사투리를 쓰지 않고, 멜로드라마 주인공은 절대 사투리를 쓰지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사투리'가 드라마에서 악당, 단역, 영구 등 주변인을 위한 말로 여겨진다고 설명했다.


김 비평가는 "MBC 드라마 '아들과 딸'(1992)에서 최수종·김희애 두 주인공의 부모는 시골 출신으로 현재도 진한 사투리를 쓰고 있음에도 주인공들은 사투리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SBS 드라마 '모래시계'(1995)를 사례로 들어 "조폭 세계의 비정함과 야비함을 표현했던 조연 이종도(정성모 분)는 진한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데 반해 그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고 역시 조폭인 주인공 박태수(최민수 분)는 결코 사투리를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사례는 많다. KBS2 드라마 '야망의 전설'(1998)에서 주인공 이정태(최수종 분)와 마달수(조재현 분)는 똑같이 고향이 마산인데, 조연이자 뺀질대는 악역으로 나오는 마달수는 고향말인 경상도 사투리를 그대로 구사하고, 주인공이자 선한 역할로 나오는 이정태는 표준말을 구사한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이 같은 현상은 현재진행형이다. 오는 10월 개봉을 앞둔 영화 '암수살인'에서 배우 주지훈은 비열하고 치졸한 살인범 강태오 역을 맡았다. 감옥에서 7건의 추가 살인을 자백할 정도로 뻔뻔한 인물인 강태오를 표현하기 위해 주지훈은 삭발을 하고, 매일 2~3시간씩 부산 사투리를 연습해 연기했다. 김 비평가는 이 같은 현상이 사투리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강화하고 지역에 대한 왜곡된 편견을 만들어낸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사투리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만연한 데다가 대중매체를 통해 편견이 강화되기 때문에 실질적 피해를 입는 일도 생긴다. 취업시 직·간접적으로 차별당해 피해를 입는 사례다.

박씨는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했었는데, 리포트를 읽어보라고 시켜서 읽었는데 중간에 나도 모르게 끝 부분 억양에 조금 전라도 사투리가 나왔던 것 같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면접관이 '사투리 어떻게 좀 안되겠냐'고 지적했다. 나는 이제 표준말 구사자라고 생각해왔는데, 사투리를 완전히 고치지 않으면 취업이 안된다는 생각에 좌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2011년 한국산학기술학회(오현주·홍경완·김현철)가 대구 사투리를 사용하는 대구 지역 대학생을 중심으로 사투리가 항공사 객실승무원 면접에서 영향을 끼치는지 분석한 결과도 이 같이 나타났다. 사투리 구사집단은 사투리 비구사집단보다 불안을 더 느끼는고 있었고, 이 때문에 궁극적으로 사투리가 진로 장벽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즉 대다수의 지원자들이 (사회적 기준에 맞게) 자연스런 표준어를 구사하기 때문에 지원자가 사투리를 썼을 때 스스로 이질감과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되고, 이로 인해 더 많은 긴장감을 느껴 본인의 본래 역량을 발휘하기가 어렵다는 분석이다.

조태린 국어학 교수는 '당대비평'에서 "한 개인이 자신이 태어난 가정에서 모어로서, 자신이 자라면서 살아온 마을에서 공통어로서 사용해온 말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수 있는 건 자신의 피부색이나 성별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수 있는 것 만큼 인권의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라고 밝혔다. 그는 "기본권으로서의 모어 사용권리라는 차원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자신의 모어를 긍정적으로 여길 수 있는 '언어적 인권'을 가지고 있다. 개개인의 정체성이 타인들로 부터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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