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언제 끝나요?" 묻는 아이들, 오후 3시까지 학교에?

머니투데이 김태은 , 안채원 인턴 기자 | 2018.09.07 05:01

[the L] [Law&Life-학교와 집 사이 ①] 학교 들어가는 아이, 직장 떠나는 엄마…"하교시간 연장, 학생·학부모 의견수렴이 먼저"


#. 30대 후반의 여성 A씨는 올해 대기업 과장 승진을 앞두고 퇴직을 결심했다. 지난해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더이상 '워킹맘'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어린이집에 오후 5시까지 아이를 맡길 수 있었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아이를 데리러 가야할 시간이 점심 때로 당겨졌다. 직장에서 아무리 서두른다해도 도저히 맞출 수 없는 시간이다.

하교 후 아이를 혼자 둘 수 없으니 대신 학원을 찾았다. A씨가 직장에서 퇴근할 때까지 3~4시간의 공백을 메우려면 학원 한 군데로는 어림도 없다. 결국 A씨가 퇴근할 때까지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는 2∼3곳의 학원을 전전하며 엄마를 기다렸다.

1년간 이런 생활이 이어지다 보니 학원비 부담에 허리가 휠 지경이었다. 게다가 내년엔 둘째아이까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학원비가 2배로 늘어날 터였다. 아이가 학원 수업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도 A씨에겐 마음의 짐이 됐다. A씨는 남편과 상의한 뒤 '차라리 전업 주부가 돼 아이를 돌보는 것이 아이에게도, 부부에게도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퇴직을 결정했다.

◇학교 들어가는 아이, 직장 떠나는 엄마

A씨처럼 초등학교 신학기가 시작되는 2~3월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의 수는 한해 평균 8000명을 넘는다. 국민연금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20~40대 직장 여성 1만5842명이 회사를 그만두고 남편이나 다른 가족의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얹혔다. 이들 중 상당수는 초등학생 자녀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 둔 것으로 분석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으로 7~12세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면서 직장을 떠난 여성은 33만2000명으로 전년보다 2000명 늘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가 최근 초등학교 저학년 하교시간 연장 대책을 들고 나온 건 이런 배경에서다. 위원회는 현재 점심 전후인 초등학교 1~3학년의 하교 시간을 오후 3시로 늦춰 학교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고 그 시간에 놀이 학습 등 아이들의 정서 발달을 돕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문제는 이게 정말 아이들의 정서 발달에 좋으냐는 것이다.

이미 초등학생 자녀 돌봄 문제에 어려움을 겪는 맞벌이 가정을 위해 방과 후 아이들을 돌봐주는 '초등학교 돌봄교실'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비용도 저렴해 부모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이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자 교육부는 지난 5월 현재 33만명 수준인 초등학교 돌봄 서비스 대상자 수를 55만명으로 확대하고, 운영 시간도 오후 5시에서 오후 7시로 연장하는 '온종일 돌봄체계 운영·구축 계획'을 발표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하교시간 연장 대책이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교육 전문가들은 집중력 유지시간이 짧은 초등학교 저학년 연령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이뤄지는 수업을 일정 시간 이상 따라가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김왕준 경인교육대 교수는 “많은 아이들은 거의 매일 선생님에게 '학교 언제 끝나요?'라고 묻는다"며 "이 질문이 학교 교육과정이 부적절하거나 선생님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의 심적 부담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학생·학부모 의견수렴이 먼저"

위원회는 하교시간 연장이 단순히 수업시간 확대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위원회 관계자는 "수업 시수는 변동 없이 쉬는 시간이나 점심 시간의 연장을 통해 '놀이 학습'을 늘리는 '더 놀이학교'를 도입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에게 부족했던 놀이를 공교육의 장에서 실현, 학습과 놀이의 균형을 이뤄나갈 수 있다는 취지다.

위원회가 모델로 삼고 있는 것은 독일의 '전일제 학교'(Ganztagsschule)다. 독일은 2004~2009년 전일제 학교 확대 정책을 펴면서 초등학교 수업을 오후 3~5시에 마치는 학교가 대폭 늘었다. 전일제 학교에서는 정규 수업 내용과 달리 놀이 수업이 주로 이뤄진다. 독일 정부는 전일제 학교 도입율을 현재 40%에서 2020년까지 70%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올해부터 '전일제 학교'를 시범 실시하는 곳이 생겼다. 강원도 41개 초등학교에서는 '놀이밥 공감학교'라는 시범사업이 시작됐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학교 울타리 속에서 놀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를 통해 정규 수업시간이 2~3시간 늘어나면서 결과적으로 하교시간은 오후 3~4시로 늦춰졌다. 학부모들의 좋은 반응에 강원도교육청은 이를 2020년까지 383개 전체 초등학교로 확대할 방침이다.

그러나 학교가 '놀이 수업'으로 아이들을 관리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아이들이 마음껏 놀도록 하고 이를 정서 함양과 창의성 고양이라는 교육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만큼 교육적인 인프라가 갖춰졌느냐는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고 싶은 학부모들의 선택권을 뺏는 조치라는 반발도 나온다. 학교 폭력 등에 노출되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이들도 있다.

홍소영 서울 고덕초등학교 교사는 "놀이시간을 통한 저학년 하교시간 연장은 일률적 시행 보다는 학교별 교육공동체가 선택할 문제"라며 "충분한 연구와 학생·학부모의 의견수렴, 안전한 학교환경 조성 등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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