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먹고 입을지 궁금해' 삼성 미래를 연구하는 곳 가보니

머니투데이 런던(영국)=심재현 기자 | 2018.09.05 11:51

[르포]삼성 유럽디자인연구소 탐방, IT 가전회사서 미래학 탐구하는 글로벌 별종들의 집합소

삼성전자 유럽디자인연구소. /사진=삼성전자 뉴스룸
영국 런던의 중앙형사법원을 중심으로 수백개의 로펌이 들어선 플리트 플레이스. 영국 법조계의 중심가인 이곳에 자리 잡은 삼성전자의 유럽디자인연구소엔 '트렌드랩'이라는 특수조직이 있다.

이곳에선 패션을 비롯해 인류·건축·경영학을 망라한 전문가가 미래 생활상과 행동양식을 연구한다. IT 가전회사와 인류의 미래생활 연구라니…. 다소 느닷없는 교집합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지난 3일(현지시각) 디자인연구소라는 간판 아래 모인 40여명의 글로벌 별종들을 만났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칸막이 없는 책상 너머 한 켠에 놓인 3D 프린터 2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직접 만들어보기 위해 작동을 멈추는 날이 드물다고 한다. 세계 3대 디자인 공모전으로 꼽히는 iF 어워드에서 금상을 받은 게이밍 PC 오디세이의 견본품이 만들어진 게 이 프린터다.

이 PC는 기존 게이밍 PC와 다르게 곡선을 이용해 약간 틀어진 6각형의 헥사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 초기 제품 개발 단계부터 PC사업팀과 유럽디자인연구소가 협력했다. 사각형으로 정형화된 PC 부문에서 디자인상이 나온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삼성전자가 업계 최초로 선보인 IoT(사물인터넷) 가전 패밀리허브 냉장고에도 유럽디자인연구소의 감수성이 대거 반영됐다. 가족간 소통을 지향하는 패밀리허브를 직관적이고 감성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국내 디자인팀과 유럽디자인연구소가 시차를 넘어선 토론으로 밤을 지새운 날이 숱하다고 한다.

몇년 전만 해도 사무실 한켠에 '마법이 일어나는 곳'이라는 글귀가 걸렸다는 얘기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펠릭스 헤크 유럽디자인연구소 소장은 "관찰에서 나오는 디자인과 경험에서 우러나는 디자인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며 "문화와 트렌드를 이해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때 그에 맞는 디자인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유럽디자인연구소 내부 전경.

트렌드랩의 비밀이 숨겨진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생활가전의 경우 단순한 시장조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세탁기를 예로 들면 그 지역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먹는지는 물론, 대중교통을 얼마나 이용하는지까지 알아야 제대로 된 해법을 낼 수 있다. 냄새가 강한 음식을 많이 먹고 버스를 주로 타는 지역에선 옷에 밴 냄새를 없애는 기능이 중시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도자기 소재를 접목해 냉장고에 밴 음식 냄새를 최소화하는 기술이 이런 경험과 고민에서 나왔다. 냉장고 문의 손잡이를 누르면 센서가 감지해 문을 가볍게 밀어줘 힘들이지 않고 열 수 있는 이지핸들 기능도 이런 경험의 산물이다. 이지핸들 기능이 나오기 전까지 밀레나 리페르 같은 유럽 제조사의 냉장고와 국내 냉장고는 문을 여닫는 데서부터 차이가 컸다.

냉장고 문은 내부 온도 유지를 위해 묵직하고 밀착되게 만드는데 힘들이지 않고 부드럽게 여닫는 것은 국내 제조사들이 미처 신경쓰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트렌드랩을 이끄는 까밀 해머러 파트장은 "최근엔 밀레니얼 세대(1982~1990년 태어난 유럽의 젊은 세대)의 행동양식을 파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이들의 사고방식에 따라 바뀌는 문화와 트렌드를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제품을 낼 수 없다"고 말했다. 여홍구 부소장은 "직원들에게 근무시간 중이라도 유럽 최고의 맛집이나 유명 디자이너의 전시를 가보라고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디자인에 방점을 찍기 시작한 것은 2005년 4월 이건희의 삼성전자 회장이 '0.6초 디자인 승부론'을 꺼내든 밀라노 선언부터다. "제품만 잘 만드는 1.5류는 디자인 감성을 겸비한 1류를 넘어설 수 없다", "0.6초만에 고객의 발길을 붙잡지 못하면 마케팅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얘기가 이때 나왔다.

이듬해 와인잔을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12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글로벌 TV시장 1위의 출발을 알린 '보르도TV'가 출시됐다.

삼성전자는 서울을 포함 런던·샌프란시스코·노이다·상파울루·베이징·도쿄 등 총 7개의 글로벌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외 디자인 인력은 1990년대 초반 100여명에 불과했지만 현재 1500명을 훌쩍 넘는다. 서울 디자인 경영센터가 중추 역할을 하고 해외 연구소는 거점으로 지역별 트렌드를 분석한다.
펠릭스 헤크 삼선전자 유럽디자인연구소장이 3일(현지시각) 게이밍 PC 오디세이의 디자인 배경과 향후 전략 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펠리스헤크 소장(왼쪽)과 여홍구 부소장이 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플리트 플레이스(Fleet Place)에 위치한 삼성전자 유럽 디자인 연구소에서 오디세이 게이밍PC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 유럽디자인연구소의 펠릭스 헤크 소장(오른쪽)과 까밀 해머러 트렌드랩장. /사진제공=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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