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미, 가마솥에 지은 밥처럼

박희아 ize 기자 | 2018.09.05 09:12
“넌 니네 엄마나 할머니가 자격증 가지고 너 밥 해 처먹였냐?” tvN ‘수미네 반찬’에서 김수미가 “한식 관련 자격증 같은 게 있으시냐”고 묻는 장동민에게 한 말이다. 김수미의 말처럼 한 끼 식단의 가치는 각종 조리 자격증과 값비싼 식재료만으로 계산되기 어렵다. 만드는 이의 정성과 요리하는 행위에 대한 애정, 노동의 가치가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의 요리에도 정량과 정답이 없다. 계량컵이나 수저 대신 “이 정도”가 그의 비법이며, 보리굴비와 고사리처럼 도통 섞일 것 같지 않던 재료들도 어느새 한데 모여 맛깔스럽게 버무려져 식탁에 오른다.

자격증과 정답이 없는 그의 요리처럼, 여성 배우이자 연예인으로서 김수미가 살아온 삶 또한 모범적인 답안과는 거리가 멀었다. 젊을 때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서구적인 외모라는 평을 받았지만, 정작 그가 지금의 유명세를 얻은 것은 MBC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귀 얇고 수다스러운 ‘일용엄니’를 연기하면서였다. 30대를 갓 넘긴 나이에 아들, 며느리와 손주까지 딸린 할머니 역할을 맡으면서 할머니 캐릭터로 대중에게 각인됐다. 그 후에는 ‘욕 배틀’의 승자가 된 할머니나 교양 없는 졸부, 냉철해 보이지만 화가 나면 한바탕 욕을 해대는 등 ‘일용엄니’ 캐릭터를 바탕으로 좀 더 괴팍하게 변주한 캐릭터들을 연기하곤 했다. 일반적인 배우들과는 전혀 다른 궤적. 어느새 김수미는 어디로 튈지 모를, 이른바 ‘욕쟁이 할머니’처럼 여겨졌고, MBC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젠, 젠, 젠틀맨이다”로 화제가 되며 이런 이미지는 더욱 굳어졌다. 또한 KBS ‘나를 돌아봐’ 제작발표회에서 조영남과 말다툼을 벌여 행사가 중단되는 사건 등은 괴팍하다는 그의 이미지를 굳혔다. 김수미의 캐릭터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웃음을 위한 엔터테인먼트처럼 여겨졌고, 그가 만드는 음식 역시 부분적으로 ‘욕쟁이 할머니’가 만드는 음식이라는 캐릭터가 붙었다.

그러나 김수미는 1982년부터 약 3년간 MBC ‘오늘의 요리’를 진행했고, 1998년에는 ‘김수미의 전라도 음식 이야기’를 펴냈다. 홈쇼핑에서 ‘간장게장’을 판매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수미네 반찬’에서 그의 위치는 이런 그의 역사가 반영된 결과다. 그는 유명 셰프들을 세워놓고 자신을 스승으로 모시겠다는 선서를 받을 만큼 자기 요리에 자신감이 있지만, 양식 편을 특집으로 하자고 할 때는 “그땐 너네가 나 조져버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이제 대중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캐릭터와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함께 보여준다.


‘수미네 반찬’을 연출하는 문태주 PD는 이 프로그램의 성공 요인에 대해 “김수미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콘텐츠 덕분이다. 50년 동안 만드신 반찬과 50년 동안 연기를 하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는 욕 잘하는 할머니 캐릭터가 시너지를 이룬 게 아닌가 싶다.”(‘OSEN’)라고 말했다. 맛 좋은 끼니의 기본이 되는 밥부터 맛있게 짓는 게 중요하다. 이 사실을 아는 김수미는 50년 동안 자신의 장점을 갈고 닦았고 이제서야 그 재능을 아낌없이 펼쳐 보이는 중이다. 가마솥에 앉힌 뜨끈하고 고소한 밥처럼 천천히 익어온 인생. 그 앞에 드디어 제대로 차려진 밥상이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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