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에는 예언자가 산다… "박근혜, 대통령 된다"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 2018.09.10 05:00

[이재은의 그 나라, 페루 그리고 박근혜-①] 박정희-박근혜 부녀와 꼭 닮은 페루의 알베르토-게이코 후지모리 부녀

편집자주 |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그래픽=유정수 디자인 기자
"이번 대선(제 18대 대통령 선거·선거일 2012년 12월19일)에서 누가 뽑힐 것 같아?" 2012년 9월, 아직은 더운 날이었다. 페루비안(Peruvian·페루인) 친구가 함께 비빔밥을 먹던 내게 질문을 던졌다. 페루를 떠나 미국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던 친구였기 때문에 '이런 이슈에 꽤 관심이 있구나' 싶었다. 친절하게 "지금 박빙의 두 후보가 있어.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랑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 근소하게 박 후보가 지지율이 높은 것 같긴 한데, 뚜껑은 열어 봐야 알지"라고 설명해줬다. 그런데 그 뒤 이어진 말들은 예상을 깨는 이야기었다. 친구는 환히 웃으며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될거야. 장담할 수 있어"라고 답했다.

'한국 근대사를 잘 모를 수 있겠군'하는 생각이 들어 반박했다. "물론 박 후보가 될 수는 있는데… 박 후보에 대해선 과거사 공격이 끊이질 않아. 아버지가 박정희 전 대통령인데, 독재자란 비판을 받고 있고 박 후보도 이를 옹호하는 발언을 수차례 한 적 있거든. 한국인들의 민주주의 수호 의식이 강한 만큼 그리 쉽게 승패가 결정나진 않을 것 같은데 말야"라고. (☞"아시아 국가는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이 없다" [이재은의 그 나라, 싱가포르 그리고 치킨라이스 ②] 참고)

그런데 친구가 "알고 있어, 그게 바로 현실 정치에서 국민들이 그 후보를 매력적으로 느끼는 이유야"라고 말하는게 아닌가. 친구는 "페루에도 똑같은 사례가 있다"면서 "2011년 치러진 페루 대선에선 아주 근소한 차이로 '독재자의 딸'이 떨어졌는데, 아마 다음 대선에선 대통령이 되겠지. 한국에선 아마 이번에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될거야"라고 답했다. 친구의 말처럼 박 후보는 득표율 51.55%로 대통령으로 뽑혔다. 반면 문 후보는 득표율 48.02%로 대선 재수를 해야만 했다.
알베르토 후지모리(왼쪽), 게이코 후지모리 부녀./AFPBBNews=뉴스1
박근혜 전 대통령과 게이코 후지모리 페루 민중의힘 대표는 여러 측면에서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박근혜는 이제 불명예를 안은 전 대통령이라는 점이고, 게이코 후지모리는 아직도 유력 대선후보라는 점 정도다. 두 사람은 모두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는' 독재자의 장녀로, 영애로서 영부인을 대행했다. 정치와는 그리 관련없는 삶을 살다가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정치에 입문하고, 아버지 지지자들의 힘을 받아 곧바로 유력 정치인으로 성장한 점도 같다. 사소하지만 두 사람 모두 남동생과는 사이가 그리 돈독하지 않은 것도 공통점이다.

'조국 근대화'를 외치며 경제개발에 집중한 박정희 전 대통령(제5·6·7·8·9대 대통령, 1963년 12월17일~1979년 10월26일 재임)과 '페루의 근대화'를 줄기차게 외친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1990~2000년 재임)도 유사한 점이 많다. 알베르토 후지모리는 페루에 대거 이주한 일본인의 이민 2세대로, 토착인 45% 메스티소(토착인과 백인 혼혈) 37% 백인 15% 그리고 흑인과 일본계 위주의 아시아인 등이 3%인 다인종 국가 페루에서도 소수자였다.

하지만 후지모리는 '변화 90'(Cambio 90)당을 만들고 '가난한 자의 혁명' 슬로건을 내세우며 오히려 소수자인 걸 선거에 이용했다. 페루는 15%에 불과한 백인이 사회 기득권을 모두 가지고 있다. 후지모리는 이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큰 것을 이용해 이 같은 구조를 강력 비판했고, 결국 대통령이 됐다. 후지모리는 임기 중 연 7000%에 이르는 초인플레이션을 진정시켰고, 경제개방 등의 전략을 통해 -4.2%였던 경제성장률을 1994년 최대 12.9%으로 끌어올렸다. '빛나는 길' '투팍 아마루' 등 반정부 무장게릴라를 소탕해 고질적인 치안 불안도 안정시켰다. 안정적 경제 성장과 치안 불안 해소가 후지모리의 업적으로 꼽히면서 수 많은 후지모리주의자(후지모리 지지자)를 낳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전형적 독재자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그는 1992년 4월 군부 지원을 받아 국회를 해산하고 헌법을 정지하는 긴급조치를 발령, 여소야대 국회를 정리했다. 1995년 12월엔 연임을 보장하는 새헌법을 제정했고, 좌파 무장조직 '빛나는 길' 소탕 명목으로 정적과 반대파 수천명을 학살했다. 비밀 정치범 수용소도 만들어 이들을 가뒀다. 언론을 통제하는 와중에 3선 연임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이를 반대한 헌법재판관은 파면됐다. 후지모리는 그렇게 2000년 3선 대통령이 됐다.
사진은 2007년 12월10일 후지모리 전 대통령이 재판정에서 흥분해 인권침해 및 권력남용 혐의를 부인하는 장면이 TV로 중계되고 있는 모습./사진=뉴시스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후지모리의 끝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2000년 9월, 페루 언론이 비선 실세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 전 국가정보국 총수가 야당 의원을 대선 뇌물로 매수하는 장면을 공개하면서 그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첫 보도 이후 후속 보도가 이어지면서 몬테시노스가 그동안 비밀암살단을 조직해 후지모리의 반대파를 사살했고, 그 대가(代價)로 마약·무기 밀매에 관여해 엄청난 재산을 치부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사건 이후 후지모리의 독재를 반대하는 시위가 잇따라 발생했다.

일본·페루 '이중국적' 소유자 후지모리는 의회에서 탄핵되자마자 일본으로 망명했다. 재기를 노리며 칠레로 입국하자마자 체포, 페루로 송환됐지만 말이다. 그는 2007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고 뇌물을 받는 등 각종 부패를 저지른 혐의로 6년 형을 선고받았다. 2009년에는 암살부대를 운영해 반대세력을 제거하는 등 인권을 탄압한 혐의가 인정돼 추가로 25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그는 2017년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대통령이 그의 난치병을 이유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그를 사면하기 전까지 쭉 옥살이를 해왔다. (여기엔 아들 겐지 후지모리가 관여해 쿠친스키 대통령과 일종의 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있다.)
2015년 4월18일(현지시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페루 리마 공군 제2비행단 비행장에 도착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여기까진 흔하디 흔한 남미의 독재자 이야기 같겠지만, 장녀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박근혜 전 대통령과 게이코 후지모리는 거의 운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겹쳐보인다. 육영수 여사가 사망하면서 22세라는 어린 나이 때 영부인 역할을 수행한 영애 박 전 대통령처럼, 열일곱 때 부모가 이혼한 게이코 후지모리도 영부인을 대행했다. 이후 두 사람이 정치에 발을 들인 건 모두 아버지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두터운 고정 지지층 덕택이었다. 박근혜는 1997년 12월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 선대위 고문으로 정계에 들어섰고, 1998년 대구 달성 재보선에서 61%의 압도적 지지율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게이코 후지모리도 2006년 총선에서 부친의 후광 아래 보수층의 지지를 얻어 정치에 입문했다. 2011년 대선에서는 오얀타 우말라 전 대통령(득표율 51.45%)에게 결선투표 끝에 48.55%의 득표율을 얻어 근소한 차이로 석패했지만, 전국적 대권 주자로 자리 잡아 2016년 대선에 다시금 도전했다. 물론 이때도 49.88%를 얻어 50.12%를 득표한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대통령에 밀려 아쉽게 떨어졌다.

후지모리가 두 번의 대선에서 좌절을 겪은 가장 큰 이유는 '과거사' 문제였다. 박 전 대통령은 결국 대선에서 당선되며 언뜻 과거사 문제를 정면으로 이겨낸 듯 보이지만, 후지모리는 결국 과거사를 이겨내지 못했다. 현재 후지모리는 3번째 대선 도전을 준비중이다. 결국 권좌에 오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인지, 후지모리는 아버지에 대한 태도를 전면적으로 수정했다. 간단히 말해 '반성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대선 직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한 일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한 박 전 대통령에 비해 조금 더 절박한 태도다. 박 전 대통령은 2012년 9월24일 대선을 세달여 앞두고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며 "(과거사 문제 등)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2016년11월28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국정 역사 교과서 현장검토본과 편찬기준(안)을 언론에 배부하고 있다. /사진=김창현 기자
물론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박 전 대통령이 해온 숱한 발언들 때문에 이를 진심으로 믿은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박 전 대통령은 △2004년8월 한나라당 의원연찬회에서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라는 얘기가 많은데 이미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했다. 그런데도 또 사과해라, 사과해라 하는 것은 순수한 뜻이 아니라 대표 헐뜯기다" △2007년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사실 아버지 시절에는 북한의 남침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가난과 배고픔에서 벗어나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였기에 '민주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부족한 면도 있었다" △2007년 7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검증회에서 "5·16은 구국의 혁명이었고, 유신체제는 역사에 판단을 맡겨야 한다" 등 한결같은 발언을 해왔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결국 임기 중 국정교과서를 강력 추진하며 부친의 명예회복을 노린다는 비판을 받았다.

게이코 후지모리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에서야 내내 반성한다는 태도를 보이지만 후지모리도 처음엔 "(아버지의 3선 개헌은) 우리가 테러와 초인플레이션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특별하고 예외적인 상황이었다"거나 "대통령에 당선되면 아버지를 사면하겠다"는 발언을 끊임없이 했다. 물론 2011년 대선에서 과반을 얻은 후보가 없어 결선투표로 가야할 상황이 되자 '과거사 반성'을 필승 카드로 꺼내들었지만 말이다. 당시 후지모리는 "대통령에 당선돼도 아버지를 사면하지 않을 것이며, 아버지 재임 시절 일어났던 잘못을 인정하고 페루 국민들에게 사죄한다"고 밝혔다. 물론 후지모리는 아직까지 대선 승리를 얻지 못하며 이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여전히 진위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많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게이코 후지모리가 당선되면 분명 알베르토 후지모리를 사면할 것이고 (이 시점에선 이미 사면됐지만), 페루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자유에 대한 약속을 어길 것"이라고 강력 비판했듯이.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11월4일 오전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파문과 관련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는 가운데 시민들이 TV를 통해 지켜보고 있다./사진=홍봉진 기자
결국 게이코 후지모리는 끝내 대통령이 되어 박 전 대통령처럼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노리게 될 수 있을까? '반 후지모리주의자'라 할 수 있는 친구가 자조적으로 게이코의 당선을 확신한 이유는 무엇일까? 박정희 전 대통령,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 셋의 최후는 모두 다 좋지 않았지만 게이코 후지모리만은 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다음 편에서는 물음에 대한 답을 강구해본다.

참고문헌
페루 아시아계 이주민의 정치적 성공과 인종 갈등: 후지모리 사례를 중심으로, 중남미연구, 박윤주
페루 대통령 선거 결과와 향후 경제정책 전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박미숙
페루 정당체제의 탈제도화와 민주주의의 지연, 라틴아메리카연구, 김유경
페루의 이중적 부패 구조와 반부패정책의 한계, 글로벌정치연구, 김유경

☞[이재은의 그 나라, 페루 그리고 박근혜 ②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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