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사를 잘 모를 수 있겠군'하는 생각이 들어 반박했다. "물론 박 후보가 될 수는 있는데… 박 후보에 대해선 과거사 공격이 끊이질 않아. 아버지가 박정희 전 대통령인데, 독재자란 비판을 받고 있고 박 후보도 이를 옹호하는 발언을 수차례 한 적 있거든. 한국인들의 민주주의 수호 의식이 강한 만큼 그리 쉽게 승패가 결정나진 않을 것 같은데 말야"라고. (☞"아시아 국가는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이 없다" [이재은의 그 나라, 싱가포르 그리고 치킨라이스 ②] 참고)
그런데 친구가 "알고 있어, 그게 바로 현실 정치에서 국민들이 그 후보를 매력적으로 느끼는 이유야"라고 말하는게 아닌가. 친구는 "페루에도 똑같은 사례가 있다"면서 "2011년 치러진 페루 대선에선 아주 근소한 차이로 '독재자의 딸'이 떨어졌는데, 아마 다음 대선에선 대통령이 되겠지. 한국에선 아마 이번에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될거야"라고 답했다. 친구의 말처럼 박 후보는 득표율 51.55%로 대통령으로 뽑혔다. 반면 문 후보는 득표율 48.02%로 대선 재수를 해야만 했다.
'조국 근대화'를 외치며 경제개발에 집중한 박정희 전 대통령(제5·6·7·8·9대 대통령, 1963년 12월17일~1979년 10월26일 재임)과 '페루의 근대화'를 줄기차게 외친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1990~2000년 재임)도 유사한 점이 많다. 알베르토 후지모리는 페루에 대거 이주한 일본인의 이민 2세대로, 토착인 45% 메스티소(토착인과 백인 혼혈) 37% 백인 15% 그리고 흑인과 일본계 위주의 아시아인 등이 3%인 다인종 국가 페루에서도 소수자였다.
하지만 후지모리는 '변화 90'(Cambio 90)당을 만들고 '가난한 자의 혁명' 슬로건을 내세우며 오히려 소수자인 걸 선거에 이용했다. 페루는 15%에 불과한 백인이 사회 기득권을 모두 가지고 있다. 후지모리는 이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큰 것을 이용해 이 같은 구조를 강력 비판했고, 결국 대통령이 됐다. 후지모리는 임기 중 연 7000%에 이르는 초인플레이션을 진정시켰고, 경제개방 등의 전략을 통해 -4.2%였던 경제성장률을 1994년 최대 12.9%으로 끌어올렸다. '빛나는 길' '투팍 아마루' 등 반정부 무장게릴라를 소탕해 고질적인 치안 불안도 안정시켰다. 안정적 경제 성장과 치안 불안 해소가 후지모리의 업적으로 꼽히면서 수 많은 후지모리주의자(후지모리 지지자)를 낳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전형적 독재자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그는 1992년 4월 군부 지원을 받아 국회를 해산하고 헌법을 정지하는 긴급조치를 발령, 여소야대 국회를 정리했다. 1995년 12월엔 연임을 보장하는 새헌법을 제정했고, 좌파 무장조직 '빛나는 길' 소탕 명목으로 정적과 반대파 수천명을 학살했다. 비밀 정치범 수용소도 만들어 이들을 가뒀다. 언론을 통제하는 와중에 3선 연임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이를 반대한 헌법재판관은 파면됐다. 후지모리는 그렇게 2000년 3선 대통령이 됐다.
일본·페루 '이중국적' 소유자 후지모리는 의회에서 탄핵되자마자 일본으로 망명했다. 재기를 노리며 칠레로 입국하자마자 체포, 페루로 송환됐지만 말이다. 그는 2007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고 뇌물을 받는 등 각종 부패를 저지른 혐의로 6년 형을 선고받았다. 2009년에는 암살부대를 운영해 반대세력을 제거하는 등 인권을 탄압한 혐의가 인정돼 추가로 25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그는 2017년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대통령이 그의 난치병을 이유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그를 사면하기 전까지 쭉 옥살이를 해왔다. (여기엔 아들 겐지 후지모리가 관여해 쿠친스키 대통령과 일종의 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있다.)
후지모리가 두 번의 대선에서 좌절을 겪은 가장 큰 이유는 '과거사' 문제였다. 박 전 대통령은 결국 대선에서 당선되며 언뜻 과거사 문제를 정면으로 이겨낸 듯 보이지만, 후지모리는 결국 과거사를 이겨내지 못했다. 현재 후지모리는 3번째 대선 도전을 준비중이다. 결국 권좌에 오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인지, 후지모리는 아버지에 대한 태도를 전면적으로 수정했다. 간단히 말해 '반성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대선 직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한 일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한 박 전 대통령에 비해 조금 더 절박한 태도다. 박 전 대통령은 2012년 9월24일 대선을 세달여 앞두고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며 "(과거사 문제 등)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게이코 후지모리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에서야 내내 반성한다는 태도를 보이지만 후지모리도 처음엔 "(아버지의 3선 개헌은) 우리가 테러와 초인플레이션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특별하고 예외적인 상황이었다"거나 "대통령에 당선되면 아버지를 사면하겠다"는 발언을 끊임없이 했다. 물론 2011년 대선에서 과반을 얻은 후보가 없어 결선투표로 가야할 상황이 되자 '과거사 반성'을 필승 카드로 꺼내들었지만 말이다. 당시 후지모리는 "대통령에 당선돼도 아버지를 사면하지 않을 것이며, 아버지 재임 시절 일어났던 잘못을 인정하고 페루 국민들에게 사죄한다"고 밝혔다. 물론 후지모리는 아직까지 대선 승리를 얻지 못하며 이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여전히 진위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많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게이코 후지모리가 당선되면 분명 알베르토 후지모리를 사면할 것이고 (이 시점에선 이미 사면됐지만), 페루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자유에 대한 약속을 어길 것"이라고 강력 비판했듯이.
참고문헌
페루 아시아계 이주민의 정치적 성공과 인종 갈등: 후지모리 사례를 중심으로, 중남미연구, 박윤주
페루 대통령 선거 결과와 향후 경제정책 전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박미숙
페루 정당체제의 탈제도화와 민주주의의 지연, 라틴아메리카연구, 김유경
페루의 이중적 부패 구조와 반부패정책의 한계, 글로벌정치연구, 김유경
☞[이재은의 그 나라, 페루 그리고 박근혜 ②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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