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촌·여의도 한강공원에 가면 대형 설치 예술품 37점이 잔디, 강 위에 '놓여져' 있다. 작품이라면 응당 '눈으로만 보세요', '만지지 마세요' 등 경고 문구나 주변에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어야 하는데 없다. 아이들이 올라가 뛰어 놀고, 연인들은 그 위에 누워 하늘과 강을 바라본다. 자전거 타던 이들은 작품에 걸터 앉아 땀을 식힌다. 지난달 25일 일반 시민들에 공개된 서울시 공공예술 프로젝트 '한강_예술로 멈춰. 흐르다,'의 풍경이다.
프로젝트 총감독을 맡은 은병수 은카운슬 앤 비움 대표디렉터는 지난달 31일 인터뷰에서 "자전거 타고, 치맥 먹고, 텐트에서 쉬고, 음악을 듣는 등 한강을 찾는 사람들의 패턴에 '예술성'을 가미했다"며 "보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만지고 올라타고 누워 있으면서 '쉼'을 제공하는 것, 이것이 일반 도심 속 공공예술과의 차별점"이라고 설명했다.
2년 전 이 프로젝트를 맡은 후 은 감독 귀엔 우려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동안 시민들을 위해 만든 공공예술품이 오히려 흉물이 돼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 지난해 '서울로 7017'에 설치됐던 헌 신발 3만켤레로 만든 '슈즈트리' 작품이 대표적이다. '악취 나는 신발 폭포'라는 오명을 쓰고 조기 철거 됐다.
"대중 속에 스며드는 예술이 공공예술의 기본이라 생각합니다. 격리되거나 피사체가 되어선 안되고, 함께 공유하고 합일이 되어야하죠. 대부분의 작품이 아이들이 뛰어 놀고, 성인이 누워 있을 수 있도록 설계됐죠. 예술작품으로서의 '창의성'은 기본으로 갖추고, 시민들에게 쓰임이 있어야 한다는 '기능성', 범람이 잦고 바람이 강한 한강의 특수 환경을 버틸 수 있는 '내구성', 3가지 조건을 모두 갖춰야만 했죠."
은 감독은 공공예술이 사회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덴마크 '슈퍼킬렌'(Superkilen)과 프랑스 '에스튜에르'(Estuaire) 프로젝트가 대표적 사례"라며 "'공공예술'이 침체된 지역을 살리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명소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기쁨이든 슬픔이 됐든, 시민들이 한강예술공원에서 무언가 느낀다면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한 게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30여년간 디자인·예술분야에 활동해온 베테랑이지만 "공공예술 프로젝트는 쉽지만은 않았다"면서 "초기 10~15년은 기업을 위해, 이후 10여년을 공예 분야에서 일했다면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창의적 방법'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 예술' 외에 '사회에 쓰임이 있는 예술'에도 관심 갖는 예술가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는 은 감독. 조만간 자신의 회사 이름 '은카운슬 앤 비움' 뒤에 '앤 소사이어티'(and Society)도 추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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