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간 없는 청계천, '시각장애인'들은 무섭다

머니투데이 김건휘 인턴기자 | 2018.08.31 05:30

2008년 시각장애인 4명 서울시에 '접근권 보장' 소송 끝 패소…10년 지났지만 안전문제 '여전'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내려진 25일 오후 서울 청계천에서 시민들이 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고 있다. 2018.7.25 /사진=뉴스1
# 지난 2008년, 시각장애인 4명이 서울시와 시 시설관리공단에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청계천과 주변 시설에 자유롭게 접근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당시 법원은 "구체적인 하위 법령 규정이 없다"며 "헌법과 장애인복지법을 근거로 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인정할 수 없다"고 소송을 기각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하지만 청계천은 시각장애인들이 찾기 어려워보였다. 안내는 엉망이었고, 안전 문제는 더 커 보였다.

◇시각장애인은 청계천 진입조차 어려워 … 안내시설 절대 부족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22일, 청계천을 걸었다. 청계광장에서 시작했다. 동대문패션타운이 있는 오간수교까지 약 3km의 구간을 살폈다.

청계천 진입로 난간에서 점자로 된 시각장애인 안내표시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들이 이러한 점자 안내 표시를 이용하는 건 쉽지 않은듯 했다. 점자는 진입로의 처음과 끝부분에만 있었다. 정작 산책로에는 점자판이나 점자블록이 없었다.
청계천 진입로 난간에 붙어 있는 점자 안내 표시판. /사진=김건휘 인턴기자
시민들 역시 점자 안내판이 있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대학생 최모씨(24)는 "평상시에는 눈여겨보지 않아서 잘 몰랐다"고 말했다. 최씨는 "안전을 위해서는 점자 안내판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산책로 안전문제 곳곳에… 인명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 있어

근처에 사무실이 있어 청계천에 매일 온다는 홍모씨(70)는 안전사고를 우려했다. 부족한 안내 표시도 문제지만, 설령 들어온다고 해도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다. 홍씨는 동행하는 사람 없이는 산책로를 걷는 게 무리라고 했다.

실제 청계천을 걸으며 살펴보니, 시각장애인들을 위협하는 요소가 많았다.
청계천 산책로에는 급격히 좁아지는 지점이 있다. 일반인도 발을 헛디디면 하천에 떨어져 크게 다칠 수 있는 높이다. /사진=김건휘 인턴기자

청계천의 산책로와 하천 사이엔 특별한 경계가 없었다. 난간 등 안전장치는 보기 어려웠다. 덕분에 자연 친화적인 산책로가 조성되긴 했다. 바로 옆에 하천이 흐르니 경치가 좋았다. 하지만 위험해 보였다. 길폭이 좁아지는 지점이 몇 군데 있었다. 잘못 디디거나 미끄러지면 크게 다칠 것 같았다. 높이도 제법 됐다.

납작한 돌이 다리 밑에서 통행을 방해하고 있다. 조사 결과 광교의 '유구(遺構)'라고 한다. /사진=김건휘 인턴기자
점자 띠가 엉망으로 붙어 있다. 바깥에 붙어야 하는데 돌 안쪽으로 둘려 있다. /사진=김건휘 인턴기자
안전 문제는 청계천 곳곳에서 발견됐다. 광교 밑에는 납작한 돌이 무더기로 방치돼 있었다. 그대로 두면 위험할 것 같았다. 돌에 둘려 있는 노란색 테두리는 이미 깨져 있었다. 애초부터 제대로 둘리지도 않았다. 이게 만약 점자 테두리라면,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지 않게끔 미리 알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장애물 안쪽에 부착됐다. 부딪치고 나서야 알아차릴 것 같았다.
청계천 곳곳에는 우천시 대피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사진=김건휘 인턴기자
하천이 범람할 경우를 대비하여 놓여 있는 사다리. 청계천 밖으로 탈출하기 위한 도구다. 하지만 시각 장애인들이 사다리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사진=김건휘 인턴기자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에 하천이 범람한다면 어떨까.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비가 오면 대피하라는 안내문이 여기저기 붙어 있긴 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들은 눈으로 표지를 볼 수 없다. 대피를 따로 안내하는 시설은 찾을 수 없었다. 대피용 사다리 역시 벽을 더듬지 않으면 찾기 어려워 보였다.

◇서울시설공단 "지속적으로 확충 위해 노력 중"


이와 관련해 서울시설공단 입장을 들었다.

먼저 청계천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지만 '공원'은 아니라는 점을 밝혔다. 관련 법령상 '지방하천'으로 관리가 된다는 것이다. 이에 청계천은 장애인 편의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구간은 아니다. 진입로의 점자 안내판은 일종의 배려로 설명했다. 시각장애인이 방문할 경우를 배제하지는 않았기에 배려 차원에서 설치했다는 것이다.

지적한 안전 문제에 대해서는 청계천 전 구간에 시설안전요원 10명이 항상 배치돼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기상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상황센터가 있어, 긴급 상황에는 음성 안내가 나간다고 했다. 또 호우 예고시 장애인 같은 경우 사전에 시설안전요원이 대피를 돕는다고도 했다.

관계자는 시설물 하자로 인한 사고는 13년 동안 한 번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산책로와 하천 사이에 난간을 설치할 수 없는 이유도 밝혔다. 하천에 난간을 설치하면 물이 흘러가는 면적이 줄어들어 침수가 가속된다는 것이다.

광교 밑에 방치된 납작한 돌 무더기는 청계천 유구(遺構, 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이며 복원 당시부터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안전 테이프가 잘못 둘린 점은 인정하며 정비반을 통해 추후 고치겠다고 답했다.

◇"떨어질까 무서워"… 일행 없이는 청계천 좀처럼 오지 않아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 문의했다. 홍서준 편의시설지원센터 연구원은 "청계천 쪽은 사실 별로 진전이 없다"고 설명했다. 2008년 시각장애인 4명이 서울시에 소송을 걸었다 패소한 이후 청계천에 대해 따로 다룬 적은 없다고 했다.

그는 "시각장애인들도 물론 청계천에 가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좁은 산책로가 문제라고 한다. 실수로 낙상이라도 입는다면 크게 다칠 수 있다. 이에 혼자서는 발걸음을 꺼린다고 한다. 꼭 가고 싶을 때는 보통 일행이나 안내견을 동반한다고 한다. 홍씨는 "어디든 가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데"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시민들은 장애인들도 청계천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당연한 권리'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광교 앞에 운영하는 매장이 있어 두 딸과 자주 놀러 온다는 이초승씨(43)는 "정상인도 언제든 간에 장애인이 될 수 있다"며 장애인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복무요원 임원묵씨(23)도 "장애인 목소리가 정책 입안에 반영돼야 한다"며 "시설의 접근성 향상을 위해 추가예산편성이 필요할 것"이라는 의견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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