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가방이 8kg…마음은 더 무거웠다[남기자의 체헐리즘]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 2018.09.01 06:10

고2, 고3 가방 무게 재보니, 평균 4.46kg…"밤 10시까지 학원, 새벽까지 공부…학교 가기 싫어요"

편집자주 | 수습기자 때 수동 휠체어를 직접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보이지 않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하고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매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고 다니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전달하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중3 조카가 메는 책가방을 메고 등굣길 체험에 나섰다. 학생들처럼 천진난만하게 걸었다. 마음은 여전히 10대다. 정문에 선생님과 선도부가 서 있었다. 괜히 움찔하게 됐다. 사진만 찍고 재빨리 뒤돌아섰다./사진=남형도 기자 조카
"가방 좀 메봐도 될까요?"

등교하던 여중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키 150cm 남짓, 자그마한 체구였다. 가느다란 팔목으로 가방을 건넸다. 한 손으로 받으니 웬걸, 팔목이 밑으로 뚝 떨어졌다. 돌덩이인가. 노트북이 담긴, 기자 가방(4.2kg)보다 무거웠다. 메보니 상당히 묵직했다. 발걸음을 옮겼다. 땅에 붙는 듯 했다.

바닥에 놓인 체중계에 가방을 올렸다. 무게를 재봤다. 잠시 뒤 숫자가 떴다. 6.8킬로그램(kg). 꽤 놀랐다. 1.5리터(ℓ)짜리 물통이 통상 1.5kg. 이 물통 4개 이상을 메고 다닌 셈이다. 중3 여학생 평균 몸무게가 54.5kg(교육부 지난해 통계), 이의 12%에 달하는 걸 지고 다닌 셈. 게다가 손엔 또 다른 짐들도 있었다.

대체 왜 이리 무거울까. 궁금했다. "죄송한데 가방 좀 봐도 될까요?" 학생이 열어줬다. 책과 노트가 8권, 파일철 1개, 그리고 여러 물품들. 뭐가 이렇게 많냐 물었다. "학교 책과 학원 책들"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사물함에는 못 넣는다고 했다. 공부도 해야하고, 숙제도 해야 한다면서.

이 학교 하교 시간은 오후 4시 정도.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간단다. 4과목을 한 번에 듣는다 했다. 모두 마치면 밤 10시. 녹초가 된 채로 이걸 메고 집에 올 터였다. 그 때 학생이 말했다. "많이 무거워요." 뒤 따른 한 마디. "오늘은 그래도 가벼운 편이에요." 학생은 뒤돌아 교문으로 향했다. 속상한 의젓함이었다.
출근, 퇴근길 오가며 만난 학생들이 멘 책가방. 체구에 비해 가방이 크고 상당히 무거워보인다. 학생들이 짊어진 무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지는듯 싶었다./사진=남형도 기자

학창 시절이 끝나면 그 때 멨던 가방 무게를 잊는다. 기자도 2002년 2월이 마지막이었다. 고3 땐 상당히 무거웠었다. 침 묻은(엎드려 자서) 교과서·학원 교재가 뒤범벅 됐었다. 어깨가 축 처졌었다. 그땐 다 그러려니 했다. 당연한 거라 여겼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가물가물해졌다.

학생들 가방이 다시 눈에 들어온 건 한 여학생 때문이었다. 큰 가방을 앞으로 멘 채 뒤뚱뒤뚱 걷고 있었다. 다가가 "왜 그렇게 멨느냐" 물었다. 그러자 "뒤로 메면 근육이 너무 답답하게 아프다"고 했다. 잠깐 들어보니 묵직, 메보니 어깨가 뻐근해왔다. "야자(야간 자율학습)나 시험 기간이면 진짜 엄청 무겁다"는 설명도 들었다. 고등학교 1학년, 불과 17살이었다.

한창 클 때인데, 안타까웠다. 학생들 가방이 새삼 낯설어졌다. 뭐가 문제일까. 궁금해졌다.

등굣길을 따라가보기로 했다. 중3 조카에게 연락했다. 서울 성동구 소재 중학교에 다닌다. 지난달 29일 오전 7시30분, 집으로 갔다. 등교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방 무게를 쟀다. 3.8kg이었다. 다행히 학교 책은 사물함에 넣고 다닌단다. 근데 그게 다가 아녔다. 학원 가방이 여러개 더 있었다. 하교한 뒤 바꿔 메고 간다고 했다.
29일 오전 서울 성동구 한 중학교 인근서 등굣길을 가던 여중생의 책가방. 무게는 6.8kg. 어깨가 축 처질만큼 무거웠다. 안을 보니 책과 공책, 프린트 등이 가득차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하루 쯤 무게를 덜어주고 싶었다. 직접 가방을 메고 학교로 향했다. 등굣길은 거의 17년 만이었다.

중학교 때 기자 가방도 꽤 무거웠었다. 책 때문은 아녔다. 도시락통이 반에서 제일 컸었다. 밥이 제일 중요했다. 2교시만 끝나도 배고파서 밥을 까먹었었다. 밥심(心)으로 푹 잤다. 사물함 같은 건 없었다. 책을 서랍에 다 쑤셔넣고 다녔었다. 공부 안했단 뜻이다. 축구를 더 좋아하던 시절이었다.

요즘은 어떨까. 등교하며 조카에게 그동안 몰랐던, 아니 무관심했던 이야길 들었다. 학원 몇 개 다니냐 물으니 "4개 다닌다"고 했다. 영어·수학은 필수고 과학 등도 다닌다고 했다. 다 끝나면 밤 10시. 힘들지 않냐하니 "친구들도 다들 이렇게 다닌다"고 했다. 10분 남짓한 등교길에서 많은 얘길 들었다. 몰랐던 걸 알게 됐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인기자

학교 근처서 등교하던 중학생 10명에게 요청해 가방 무게를 재봤다. 가볍게는 2.3kg에서 무겁게는 6.8kg까지 나갔다. 평균 무게는 4.6kg이었다. 대부분 학교 책과 학원 책이었다. 그나마 이 학교는 사물함이 있어 가방 무게를 다소 덜 수 있는듯 했다. 학원에는 사물함이 없다고 했다.

고등학생들은 어떨지 궁금했다. 학업 부담이 더 클 터. 서울 서초구 소재 여고를 찾아 가방 무게를 재봤다. 정모 선생님(학생들 인증 미인) 협조로 3학년 한 반(28명), 2학년 한 반(29명) 학생들 가방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아봤다.

고3 학생들부터 시작했다. 가방 무게를 잰다 하니 교실이 떠들썩해졌다. "학생들 가방이 많이 무거워보였다"며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자 "맞아요, 무거워요"란 환호성이 교실을 떠들썩히 울렸다. '얼마나 무거웠니'. 그 말 한 마디로도 위로받는 듯 했다.

차례로 체중계에 가방을 올렸다. 불과 두 번 만에 뜬 숫자를 보고 놀랐다. 8kg. 가방을 메봤다. 지난번 소방관 체험 때 멨던 소방용 배낭(소방 파이프 등이 담긴 것) 같았다. 그때 무게가 10kg 남짓이었다. (☞ [남기자의 체헐리즘]'35kg 방화복' 입고 계단 오르니…온몸이 울었다 참고) 3학년 교실 위치는 5층, 엘리베이터는 없다. 이를 메고 계단으로 다녔을 터. 가방 속을 보니 책은 3~4권, 프린트와 시험지 등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가방 주인인 학생은 "학원에 다녀올 때마다 책이 계속 늘어나 그렇다"고 겸연쩍게 웃었다.

8kg짜리 학생 가방을 메보는 기자. 소방관 체험 때 멨던 소방배낭(소방파이프가 든)과 체감 무게가 비슷했다. 마치 돌덩이 같았다. 아직 한창 자라야 할 학생들이 메기엔 너무 무거웠다. 이 반 교훈이 눈에 띈다. '80년을 위한 1년'./사진=정모 선생님

고3 학생 28명 가방 무게를 모두 쟀다. 2.4kg에서 8kg, 평균 무게는 4.76kg이었다. 고2 학생 29명 가방 무게는 2kg에서 7.45kg, 평균 4.17kg으로 고3 학생들 보단 다소 적었다.

평소에 가지고 다니면 어떻냐고 물었다. "어깨가 아프다", "학교 오기 싫다"는 답이 많았다. 평균 등교 시간은 고3 학생 28명 중 16명(57%)이 30분 이상이었다.

가방 속에 든 건 학원책·프린트가 많았고, EBS 연계 교재가 너무 많다는 불만도 있었다. 들고 올라오면 어떻냐 묻자 "집에 가고 싶다", "심장이 아프다", "키가 작아진다", "등하고 허리에 엄청 부담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계속 마사지를 하고, 병원서 물리치료도 하고, 침을 맞기도 한단다.

일상은 가방보다 더 묵직했다. 오후 4시30분에 하교하면, 곧장 학원에 간다. 평균 3~4개씩은 다닌다고 했다. 통상 밤 10시까지다. 끝나고 집에 가도 못 잔다. 학원 숙제 등 공부를 더해야 한다. 대다수가 새벽 1~2시에 잔다고 했다. 사물함이 있어도 책을 못 놓고 다니는 이유다. 그리고 새벽 6시면 일어난다고 했다.
서울 서초구 소재 한 여고 3학년 학생들에게 평소 힘든 점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있다. 교사인 척 하면서 서 있는 게 기자다. 여기 서보니 딴짓 하는 것 다 보인다던 옛 스승님 말씀이 뭔지 알게 됐다./사진=정모 선생님

가방보다 더 무거운 건 학생들 마음이었다. '부담감'이다. 선생님들 "수능 며칠 남았다"고 하는 얘기가 힘들다고 했다. "이렇게 하면 망한다, 망하는 지름길이다"란 얘기도 기분 나쁘단다. 수능 부담은 기본, 수시 자기소개서도 중압감이다.

부모·친척들 기대도 힘들다. "기대·희망을 품는 건 기본적으로 부담"이라고 입을 모았다. 돌아오는 추석은 고비라고 했다. "누구누구처럼 대학 잘 가야지", "잘하고 있니"라는 말이 힘들단다. "그냥 바라봐주는 게 좋냐"고 물었더니,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냥 무관심했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학생들은 지쳐 있었다.

가방 무게를 어떻게 줄일 수 있겠냐 물으니 학생들은 "방법이 없다"고 했다. 정 선생님은 "애들 문제가 아니라 저희들(어른들) 문제"라며 "삶의 질, 복지 좋아지지만 학생들 책가방 무게를 아직도 못 줄이고 있다. 1970년대나 4차 산업혁명 시대나 똑같다"고 말했다. 사회 나가면 더 힘든데, 학창 시절만이라도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선생님 한숨이 멀리서도 크게 들렸다.
학생들 가방 무게를 체감하기 위해 몸무게에 맞게 가방 무게를 늘려봤다. 평소 가방 무게(4.2kg)에서 두꺼운 책 3권을 더 넣으니 6.7kg이 됐다. 여기에 우산 하나를 더 넣으니 7kg 정도였다. 엄청 무거웠다./사진=남형도 기자

학생들 가방 무게를 실제 체험해보고 싶었다. 학생들 가방 무게를 기자 몸무게 기준으로 환산해보기로 했다. 학생들 몸무게 고3 여학생 평균 57.8kg, 기자 몸무게는 85kg이다. 학생들 가방 무게(4.76kg)를 이와 비례시켜 늘리면 됐다. 오랜만에 고난이도 수학을 하려니 머리가 아팠다(57.8: 85= 4.76: x, x=7). 7kg을 메면 됐다. 기자 평소 가방 무게는 4.2kg, 무게를 맞추기 위해 두꺼운 책 3개 정도를 더 넣었다. 비가 오던 날씨라 우산까지 넣으니 7kg 정도 됐다.

지난달 30일 오전 7시, 준비해 둔 가방을 멨다. 평소보다 2배 정도 어깨가 묵직해졌다. 출근하기 싫어졌다(원래 그렇긴 했지만). 학교가기 싫다던 학생들 말이 생각났다.

걸음마다 발을 잡아당기는듯 했다. 불과 10분 만에 어깨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니 그 흔들림에 따라 몸도 춤췄다. 숨이 헐떡거렸다. 가방이 크니 승객들 피하기도 쉽잖았다. 오가며 툭툭 치니 몸이 이리저리 쏠렸다. 지하철을 탄 뒤엔 선반을 차지한 누군가 가방이 원망스러웠다. 빼곡한 승객들을 피해 내리는 것도 힘들었다. 가방을 앞으로 멨는데도 애쓴 뒤에야 겨우 내렸다.
학생들 가방 무게를 기자 몸무게로 비례해 무게를 늘리니 7kg. 이를 30일 오전 출근길에 메어봤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회사에 도착해 어깨를 보니 빨개져 있었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어깨를 불가피하게 드러내 찍었다. 다소 선정적일 수 있다(19금)./사진=남형도 기자

광화문역에 도착했다. 계단이 까마득했다. 한 계단씩 오르니 뒷목 아래 묵직한 가방 진동이 느껴졌다. 뒤로 넘어갈 듯 했다. 등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기진맥진했다.

회사 화장실에 가서 보니 어깨에 가방 멘 자국이 빨갛게 나 있었다. 저녁 때 일 끝나고 지친 퇴근길은 더 힘들었다. 집에 갈 때만이라도 좀 편히 쉬고 싶은데, 어깨를 끊임 없이 짓눌렀다. 이걸 매일 메고 다니는 학생들이 얼마나 힘들지 공감이 됐다.
지난달 30일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 지명된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 본격적인 업무 시작 전 꼭 학생들 가방을 직접 메봤으면 한다. 책을 빼는 건 금지다. 학생들과 똑같이, 계단을 올라 교실로 향했으면 한다. 그 무게감을 갖고 정책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사진=이동훈 기자
지난달 30일 새 교육부 장관이 내정됐다.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프로필을 보니 1981년까지 송곡여자고등학교를 다녔다. 37년 전 마지막 책가방을 멨고, 무게는 까먹었을 것이다. 꼭 제안하고 싶다. 그럴싸한 취임사를 하기 전에, 첫 업무 보고를 받기 전에 학생들 가방부터 메보라고.

아마 어깨가 꽤 묵직할 것이다. 그걸 메고 학생들은 만원 버스·지하철을 타고 휘청거린다. 5층짜리 학교 계단을 오르고, 학원을 간다. 책은 쌓이고 가방은 더 무거워진다.

그 무게감을 임기 내내 잊지 말고 교육 환경을 바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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