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승진을 포기한 판사, '승포판'을 아시나요?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 2018.09.11 04:01

[불량판사]② 사법신뢰 갉아먹는 '승포판'들…법원행정처 "사법부 경쟁력의 급격한 약화 우려"

편집자주 | 법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사법 농단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불성실하고 고압적인 일부 ‘불량판사’들에 대한 얘기다. 사건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처리하는 판사도 적잖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다. 직접 법정을 찾아가 이런 ‘불량판사’들의 모습을 취재해 가감 없이 전달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해봤다.


"3000만원 이하 소액사건 재판의 항소심(2심)은 변론이 단 한 번만 열리고 바로 선고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선고도 대부분 원심대로 나온다. 1심 판결을 뒤집으려면 수차례 변론기일을 진행해야 하고 판결문도 처음부터 다 새로 써야 하는데, 판사들이 그걸 귀찮아 하는 것 같다."

서울의 한 중견로펌 소속 A변호사의 하소연이다. A변호사는 "대개 소액재판의 판결문은 사실이나 쌍방 주장을 나열하지 않고 원고 승·패소에 대한 주문 한줄만 담긴다"며 "이 때문에 항소를 하려고 해도 왜 패소했는지 몰라 항소 이유서를 쓰는 것 자체도 어려운데, 그렇게 항소를 해도 판사가 재판을 대충 끝내면 맥이 빠진다"고 했다.

◇무조건 '항소 기각' 판결 내리는 판사

소송가액이 작다고 억울함이 덜한 건 아니다. 금액이 크지 않은데도 소송비용을 감수하면서 항소심까지 갔다면 그만큼 절박하단 얘기다. 그런데 판사가 제대로 얘기도 들어주지 않고 곧장 원심대로 판결을 내리면 심정이 어떨까?

문제는 소액사건 또는 민사단독 사건의 항소심을 맡는 지방법원 민사 합의재판부의 일부 판사들이 불성실한 재판 진행으로 사법신뢰를 갉아먹고 있다는 점이다. 법조계에서 '승진을 포기한 판사', 이른바 '승포판'으로 불리는 이들이다. 올해로 '고법 부장판사 승진' 제도는 폐지됐지만, 서울 등 선호하는 지역과 좋은 보직으로의 전보는 판사들 입장에서 승진과 다름없다. 이런 '영전'을 포기한 판사들 입장에선 재판을 열심히 할 유인이 없는 셈이다.

1심에서 합의부에 배당된 큰 사건과 단독재판부에 맡겨진 상대적으로 작은 사건은 이후 2심 절차가 다르다. 1심이 합의부에서 이뤄진 사건은 해당 지방법원을 관할하는 고등법원에서 항소심 재판을 받는다. 반면 1심이 지방법원의 소액재판부나 단독재판부에 배당된 사건의 경우는 항소심을 해당 지방법원의 합의부가 맡는다.

둘 다 대법원까지 3심을 받을 수 있는 건 마찬가지지만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은 2심 단계에서 끝난다.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 기각되는 경우가 많은 작은 사건의 경우엔 사실상 2심이 제대로 다퉈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그러나 일부 변호사들은 민사 단독사건의 2심을 맡는 지방법원 민사합의부에 대해 불신을 갖고 있다. 재판부의 불성실한 재판 진행 사례들을 직접 경험하면서 생긴 인식이다.

대형 법무법인(로펌) 소속 B변호사는 "경험칙상 지방법원 민사합의부에 소위 '승포판'들이 많아서 재판 진행이 심드렁하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한 승포판은 1심에서 어떤 결과가 나왔든 제대로 심리하지 않고 무조건 '항소 기각'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분명 쟁점이 있어서 1심에서의 문제를 충분히 지적해도 소용이 없다"고 토로했다.

사건을 신속히 처리하지 않고 시간을 질질 끄는 경우도 있다. 다른 대형 로펌 소속 C변호사의 한 의뢰인은 2016년 1월 피고에게 토지인도를 요구하는 소송과 관련, 서울 모 지법의 1심 단독재판부에서 패소하고 그 해 2월 항소심 단계에서 C변호사를 찾아왔다. C변호사의 검토 결과, 1심에서 의뢰인이 패소한 데에는 한 전문가가 쓴 감정서의 영향이 컸다. 그런데 이 감정인은 자격을 갖고 있는지 여부를 놓고 논란에 휘말려 있었다.


C변호사는 "1심 전문가의 자격에 문제가 있으니 해당 감정인을 기피하고 싶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1심에서 의뢰인에게 패소를 안겨준 해당 감정서의 효력 자체를 탄핵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시간만 보냈다. 결국 해당 재판장은 항소심이 제기된 지 2년 후 정기인사를 통해 다른 법원으로 발령이 났다. 새 재판장이 오고 난 후 C변호사의 의견이 일부 받아들여져 토지 재감정이 실시됐지만 의뢰인은 2년 넘게 애를 태운 뒤였다.

A변호사는 "승포판들의 황당한 행태는 언론의 감시가 상대적으로 심한 서울에서는 덜한 편이지만 지방 소재 소규모 법원에 가면 말도 못 한다"고 했다.

◇법원행정처 '승포판 좌천성 전보'까지 검토

'승포판' 문제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도 이 '승포판'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최근 공개된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문건 중에는 '승포판'들의 문제로 "출퇴근 시간 미준수, 재판 업무의 불성실한 수행, 배석판사에 대한 부적절한 언행" 등을 꼽으며 "사법부 경쟁력의 급격한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담은 보고서도 있었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이 보고서에서 '해당 법관의 의사에 반하는 전보 등 인사조치'까지 내릴 필요가 있다고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이 같은 불량판사들의 문제는 재판 등 사법절차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갉아먹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된다. 사회가 민주화되고 투명화됨에도 불구하고 사법신뢰가 크게 개선되지 않는 원인이란 지적이다.

2015년 11월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이 발간한 '국민의 사법절차에 대한 이해도 및 재판에 관한 인식 조사의 결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에서 실제 재판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214명의 국민들은 '재판을 통해 법원에 대한 신뢰도가 어떻게 바뀌었는가'라는 질문에 최하 1점(상당히 낮아졌다)에서 최고 5점(상당히 높아졌다) 중 평균 3.28점을 줬다. 3점은 '변화가 없다'는 점수였다.

'재판을 통한 사법절차에 대한 이해 상승 정도'를 묻는 질문에 대한 점수는 3.44점에 불과했고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인식도'에 대한 점수도 3.29점에 그쳤다. '재판에 대한 만족도' 점수는 3.29점, '재판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결과를 얻은 정도'에 대한 점수는 3.58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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