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됐어요. 알아서 하세요"…법정의 폭군 '불량판사'들

머니투데이 황국상 , 손소원 인턴, 원은서 인턴 기자 | 2018.09.11 04:00

[불량판사]① 소액·단독 재판 천태만상

편집자주 | 법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사법 농단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불성실하고 고압적인 일부 ‘불량판사’들에 대한 얘기다. 사건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처리하는 판사도 적잖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다. 직접 법정을 찾아가 이런 ‘불량판사’들의 모습을 취재해 가감 없이 전달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해봤다.


판사 : 묻는 말에나 답하세요. 원고가 피고한테 자재를 공급하고 456만원을 피고에게서 받는 건 어떠세요?
피고 : 그걸 다시 팔지 못하는데 무슨 의미가 있나요?
판사 : (말을 끊으며) 됐어요. 팔든 못 팔든 알아서 하세요. 딴 얘기할 필요 없어요. (중간 생략) 피고가 원고에게 줘야 할 부당이득금은 250만원으로 하시죠. 얘기는 더 하지 마세요. 양쪽 동의하면 이대로 진행하고, 동의 안하면 판결하겠습니다.
원고·피고 모두 : 동의 안합니다. 왜냐면...
판사 : (말을 끊으며) 이유 설명 안해도 됩니다. 결심(변론 종결)하고 나중에 판결합니다. (원고·피고가 말을 하려고 하자) 그만 하세요. 그 정도로 하세요.

최고 기온이 37도에 육박한 지난달 14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한 소액재판에서 판사와 원고·피고 사이에 오간 대화다. 원고가 600만원을 청구한 사건에서 판사는 처음에 456만원의 배상액을 인정했다. 그러다 돌연 "원고·피고 둘 다 과실이 있다"며 윽박질렀다. 판사가 배상액을 250만원으로 정해 조정을 권했지만 원·피고 모두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원고 김모씨의 이번 재판은 이렇게 단 3차례의 기일만에 변론이 종결됐다.

김씨는 "처음 456만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 피고가 항의한다고 해서 250만원으로 합의를 보라고 하더라"며 "판사가 일관성이 없다. 재판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토로했다. 며칠 후 선고에서 김씨에게 인정된 배상액은 단 198만원이었다. 김씨는 "합의하라고 했는데 안해서 괘씸죄 때문에 판사가 제시한 합의액보다도 50만원 이상 깎인 것 같다"며 "결과가 당혹스럽지만 짜증이 나서 항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같은 날 단독재판부 심리로 진행된 서울중앙지법의 한 민사법정. 분양대금 반환 청구소송에서 원고 측 대리인(변호사)이 증인에 대한 신문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증인이 불성실한 답변으로 일관하자 변호사는 판사에게 "증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겠다"고 호소했다.

판사는 턱을 괴고 신문 과정을 지켜보다 고개가 휘청일 정도로 졸고 있었다. 겨우 졸음을 쫓고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천장에 달린 전등을 쳐다보던 판사는 "나는 다 알아 듣는다"며 변호사의 호소를 무시했다. 약 400명에 달하는 판사들이 속한, 대한민국 최대 법원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된 재판의 모습이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한 해 1심 법원에 접수되는 민사·형사 소송사건의 수는 124만9400건에 달한다. 그러나 이 가운데 1명의 부장판사와 2명의 배석판사가 참여하는 합의부 재판은 5%에도 못 미치는 6만1000여건에 불과하다.


소송가액이 2억원 이상일 경우 등 일정 요건에 해당하는 민사사건이나 사형·무기징역 및 형기의 하한이 1년 이상인 징역·금고에 해당하는 형사사건만 합의부에 맡겨진다. 그 외의 모든, 사실상 법원에 새로 접수되는 대부분의 사건이 단독재판부에 의해 다뤄진다. 그 중에서도 3000만원 이하 사건은 소액재판으로 진행된다. 소액재판을 포함해 단독재판부 관할 민·형사 사건은 2016년 기준으로 118만8000여건에 달했다.

그러나 최근 머니투데이 '더엘'(the L) 기자들이 직접 서울중앙지법 단독·소액재판 법정에 들어가 취재한 결과, 다수의 단독·소액재판부 판사들이 불성실한 태도로 재판에 임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한 민사단독 재판에서 판사는 원고와 피고가 모두 출석해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음에도 법정에서 10여분 동안 기록만 읽었다. 그 시간 동안 원고·피고 모두 멀뚱멀뚱 판사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판사가 원고 측 변호사에게 "청구원인이 이상하다"고 지적하고 새로 주장을 정리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 이후 시간대에 재판이 잡힌 당사자들이 꾸역꾸역 법정으로 밀려 들어왔고 재판은 줄줄이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소액재판정에서는 판사가 원고와 피고에게 피상적인 질문을 던진 후 "조정에 응하겠냐"고 수차례 물었다. 재판을 받고 싶어 소장을 내고 기일에 출석해 옳고 그름의 판단을 받으려던 이들에게는 맥 빠지는 순간이다. 서울 한 중견 로펌의 A변호사는 "소액 재판 현장에서는 재판하기 전부터 판사가 '2층 가서 조정하고 오세요'라고 마구 올려보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며 "법정이 아니라 완전 시장통이나 마찬가지"라고 씁쓸히 말했다.

판사가 시급한 사건을 내팽개치고 자리를 비워 당사자가 재산상 피해를 입을 뻔한 경우도 있다. 한 변호사는 "법원에 강제집행정지를 신청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결정이 안 나와서 확인했더니 담당 판사와 대직(代職) 판사가 모두 휴가를 갔더라"며 "다행히 강제집행 전에 인용 결정이 났지만, 이런 시급한 사건을 두고 담당 판사와 대직 판사가 한꺼번에 휴가를 간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토로했다.

불량판사는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지만, 특히 단독·소액재판에서 불성실하고 독단적인 재판 진행 사례가 자주 보인다는 게 변호사들의 증언이다. A변호사는 "특히 소액사건의 경우는 당사자들이 제대로 쟁점을 다퉈보지도 못하고 승·패소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판결문도 주문 한 줄만 적혀 있는 게 대부분"이라며 "항소를 하려고 해도 무엇 때문에 진 건지 모르니 항소 이유서를 쓰는 자체가 곤혹스럽다"고 했다.

'불량 판사'들 때문에 변호사 업계에선 웃지 못할 관행도 생겼다고 한다. 한 대형로펌의 B변호사는 "의뢰인의 사건이 단독재판부에 배당됐다고 하면 소송가액을 일부러 올려서 합의부에서 1심을 받도록 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소송가액이 높아지면 법원에 내야 할 인지대도 많게는 수백만원씩 늘어날 수 있지만 불량판사에게 배당될 위험을 고려하면 그 정도 부담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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