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위의 편지]봉곡사 소나무 숲길에 가면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 2018.08.25 07:34
봉곡사 소나무숲길./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
길의 역할은 단순히 사람이 오가는 통로에서 그치지 않는다. 때로는 풍경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붓질이 된다. 아무리 삭막한 풍경이라도 길 하나가 들어서는 순간 온기가 깃들기 마련이다. 그 길에서 누구는 옛사람을 만나고 누구는 오래 전 두고 떠난 추억을 만난다.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길을 걷기 위해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자체들은 그런 수요에 맞춰 부지런히 길을 내고 있다. 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지워진 옛길을 복원하는가 하면, 풍광이 좋은 바다나 호수 주변에 새로 길을 연다.

내게 걷기 좋은 길을 추천하라고 하면, 잠시 막막해 하다가 봉곡사 소나무 숲길을 꼽을 것 같다. 나름대로 전국의 많은 길을 다녀봤지만, 가장 마음 깊이 들어온 길 중 하나였다. 그 길에 들어서면 든든하면서도 푸근하다. 그리고 세월이 기워놓은 연륜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 길의 공식 이름은 '천년의 숲길'이다. 숲에게 1000년이 그리 길 리야 없지만, 거기에 '길'이 붙으면 무게가 달라진다. 1000년 동안 사람이 오가며 남긴 흔적이니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스며있을까. 늦여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진 틈을 타서 봉곡사 소나무 숲길을 찾아간다.

숲 속으로 들어서자마자 서늘한 기운이 몸을 감싼다. 언뜻 봐도 100년은 넘게 서 있었을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서 있다. 그 무엇도 두렵지 않을 것 같은 기세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눈에 거슬리는 흉터를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춘다. 소나무 밑동마다 V자 모양의 흠집이 깊게 파여 있다. 어느 것은 나무가 자라면서 ♡모양으로 변하기도 했다. 분명 누군가 도구를 이용해서 벗겨낸 자국이다. 보기 흉할 뿐 아니라 나무의 고통이 전이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안내판에서 쓰라린 역사를 확인한다. 일제가 패망 직전에 연료용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 주민들을 동원해서 낸 상처라고 한다. 70년이 지나도록 가시지 않은 상처. 민족의 상처이기도 하다. 소나무들이라고 그 치욕을 어찌 쉽사리 잊을까. 하지만 원망의 기색 하나 없이 청정한 숲을 만들어주고 있다.

그런 슬픔 때문일까? 아니면 얼마 전 비가 내린 까닭일까? 이 숲은 솔 향이 유난히 짙다. 길은 부지런히 숲을 열고 앞장서서 간다. 주차장에서 봉곡사까지 이어지는 700m의 이 길은 산림청 주최 '아름다운 거리 숲' 부문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생명의 숲 국민운동에서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그만큼 걷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숲길이다. 다만 시멘트 포장을 해놓은 게 눈엣가시다. 가까운 숲에서 꿩이 운다. 길가의 돌탑이 침묵으로 대답한다. 이런 숲에서는 말이 필요 없다. 생각마저 내려놓고 자연 속으로 스며들다 보면 저잣거리에서 입은 상처 정도는 슬그머니 치유된다.

솔숲 사이에서 늦게 핀 꽃 몇 송이를 발견한다. 거기 어디쯤에서 쪼롱쪼롱 산새가 운다. 다람쥐 한 마리가 조심스럽게 길을 가로지른다. 사랑스러운 풍경이다. 중간에 갈림길이 나타난다. 왼쪽으로 가면 봉수산 능선으로 가는 등산로고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봉곡사다.

봉곡사 전경./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
봉곡사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조용한 산사의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절이다. 신라 말인 887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도선국사가 산 너머에서 절터를 닦고 목수들을 불러 재목을 다듬고 있는데, 까마귀들이 계속 밥을 물고 가는 것을 보고 따라갔다고 한다. 그런데 까마귀는 홀연히 사라지고 터가 무척 좋은지라, 거기에 절을 짓고 석암(石庵)이라 이름 지었다는 것이다.

고려 때에는 보조국사 지눌이 중창하고 이름을 석암 또는 석가암이라 했다. 조선 세종 때 함허대화상이 중창한 데 이어 1584년(선조 17)에 화암거사가 중수하고, '봉황이 깃들이는 곳'이라는 뜻의 봉서암(鳳棲庵)이라고 고쳐 불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47년(인조 24)에 다시 중창했다. 1794년(정조 18)에 궤한화상이 중수하고 봉곡사(鳳谷寺)로 이름을 바꿨다.


봉곡사는 근대의 선승 만공스님, 그리고 다산 정약용과 인연이 깊은 절이다. 만공스님은 23세 때 이곳 봉곡사로 왔다. 2년 동안 수행에 정진하던 중 홀연히 깨달음을 얻어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고 한다. 이를 전해주는 탑이 언덕 위에 있다. 탑머리에 음각돼 있는 '世界一花'는 만공스님의 친필이다.

다산 정약용은 1795년 겨울 정3품 당상관에서 종6품 금정찰방(金井察訪)으로 좌천된 뒤, 성호 이익의 증손자인 이삼환 등 13명의 실학자와 봉곡사에서 공자를 논하고 성호 이익의 유고를 정리하는 강학회를 열었다. 그런 역사를 찬찬히 되새기며 절을 한 바퀴 돌아본다.

먼저 언덕 위에 있는 삼성각을 다녀온다. 이어서 향각전‧대웅전‧요사채를 천천히 돌아본다. 잠시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니 무더운 여름을 건너온 시원한 바람이 뺨을 간질인다. 부르는 이 없고, 가라고 등 떠미는 이 없으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지금 이 시간은 오롯이 내 것이다. 마당의 잔디 위로 산새들의 노래가 푸르게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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