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소외의 서러움…갑자기 확 눈이 돌아가"

머니투데이 이해진 기자, 서민선 인턴기자 | 2018.08.24 04:00

['외롭고 욱해서' 폭발하는 앵그리 올드]①노인들 "우린 평생 참고 희생…'에라 모르겠다' 사고치는 것"

편집자주 | 노인들의 분노가 심상치 않다. 노인 강력범죄가 급증하고 길가에서 공공장소에서 갖가지 이유로 격분하는 어르신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젊은층은 이런 노인을 이해 못해 세대간 갈등은 더 깊어진다. 이들은 왜 분노하는 것일까. '앵그리 올드'의 현상과 원인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해봤다.


"에라 모르겠다, 더러운 세상. 이러면서 갑자기 눈이 확 돌아가 사고 치는 거야"

23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만난 김호근씨(70)는 젊은 시절 30여년 간 제약회사에서 일하던 직장인이었다. 현재는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며 쉬는 날이면 공원을 찾아 술을 마신다.

김씨에게 이틀 전 경북 봉화에서 발생한 엽총 난사 사건을 물었다. 왜 이렇게 노인의 분노 범죄가 일어나느냐는 질문이다. 김씨는 "우리처럼 나이든 사람들은 젊어서 고생도 많이 했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늘 한발 뒤로 물러섰다"며 "하지만 요즘 세상은 이상하게 돌아간다. 그러니 누군가 참고 참다가 사고를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기 울음소리'가 멎은 대한민국의 빈자리를 노인들의 분노가 채우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갈수록 인구비중이 높아지는 노인들이 돌변하고 있다. 범죄 피해자, 사회적 약자로만 취급됐지만 이제는 직접 무기를 들고 범행을 저지른다.

올해 7월 경기도 분당에서는 한 60대 남성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예의 없는 태도를 문제 삼아 얼굴에 침을 뱉고 발로 신체 중요 부위를 가격해 검찰에 불구속 송치됐다.

이달 10일 부산에서는 종업원이 자신을 무시했다며 흉기로 공격한 60대 남성이 경찰에 구속됐다. 4월 서울 서대문구 한 시장에서 "폐지를 줍지 말라"는 상인 말에 화가 나 점포에 불을 지른 74세 여성은 지난달 30일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경찰은 "노인들이 가벼운 시비에도 격분해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늘고 있다"며 "대부분 초범이고 우발적인 범죄"라고 말했다.

노인범죄 급증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경찰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령범죄자(65세 이상)는 2013년 7만7260명에서 2017년 11만2360명으로 45% 증가했다.


이중 폭력범죄자(상해·폭행)가 △2013년 1만4216명 △2014년 1만5864명 △2015년 1만8261명 △2016년 1만9746명 △2017년 2만350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강력범죄자(살인·강간·방화)도 △2013년 1062명 △2014년 1208명 △2015년 1376명 △2016년 1539명 △2017년 1808명으로 늘었다.

노인들이 겪는 고립감과 좌절은 만만치 않다. 서울 서대문구 한 경로당에서 만난 이모씨(67)는 몇 달 전 버스에서 내리다 부딪힌 젊은 여성을 밀쳤다가 고소를 당할 뻔 했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순간 욱해서 밀었는데 그러고나서 나도 놀랐다"며 "아가씨한테 벌금 낼 돈도 없다고 빌어서 고소없이 넘어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출가한 두 자녀는 1년에 몇 번 겨우 볼 뿐이고 경비일로 아내와 먹고 사는데 불쑥불쑥 노엽고 서러운 맘이 올라온다"고 말했다.

탑골공원 일대 주차장에서 관리인으로 일하는 전모씨(62)의 눈에 비친 노인들은 분노가 일상화된 모습이다. 돈을 걸고 장기나 바둑을 두다 다투는 노인들을 목격하는 건 드물지 않다. 전씨는 "다들 한푼이 아쉬운 상황이니 작은 시비가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다"며 "주머니는 가벼운데 서비스나 대우는 온전히 다 받고 싶은 마음에 식당 등에서도 쉽게 분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노인들의 격분 범죄 이면에 자리한 이들의 심리상태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동귀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노인들이 가족·사회로부터 고립된 상태에서 평소 분노를 쌓아만 두다가 폭발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서 조사한 '2017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 5명 중 1명은 우울 증상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6.7%가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고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이들 가운데 13.2%는 실제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노인들이 분노를 돌볼 수 있도록 심리적 안전망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방희명 남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극빈층이 아닌 노인들이 사회복지 시스템에서 소외된 경향이 있고 이것이 좌절과 분노 표출로 이어지는 것"이라며 "이들에 대한 복지를 확충하고 다양한 문화시설 등을 통해 단절된 인간관계를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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